사람과 사람 사이를 견고하게 만드는 일은 사람이 아닌, 동물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관계든 이어지는 줄(연결고리)이 있다. 박소영과 박수영은 '고양이'라는 줄로 아주 견고히 이어져 있다. 『자매일기』는 언니 박소영과 동생 박수영이 각자 쓴 일기를 볼 수 있는 에세이다. 언니와 동생으로 부르지 않는 박수영과 박소영이 친구처럼 지내게 된 계기, 가정환경, 집, 다이어트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모두 흩어져 있는 산만한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읽다보면 그렇지 않다. 자매는 "고양이"라는 굴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제목에 대한 기대감
『자매일기』는 제목에서 기대한 것들과 사뭇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책을 읽기 전, 기대했던 것들이 있다. 자매가 같은 이야기를 두고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게 궁금했고, 자매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이 보고 싶었다. 나 또한 위에 오빠가 있고, 아래 여동생이 있는 남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매의 시선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책을 들여다보면, 자매의 가족 형태를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만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양이 일기인지, 자매일기인지 헷갈릴 만큼. 기대한 것과 달랐지만 나에게 분명 이 책은 그 헷갈림이 사뭇 반갑게 다가왔다.
-고양이 일기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건, 반려견 몽이이다. 박소영 박수영 자매처럼 우리에겐 몽이야말로, 가족 내부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줄이다.
가끔 우리 가족은 싸우거나 기분이 나쁘다는 표시로 방문을 소리 내어 쾅 닫는다. 그런데 그 방문 앞에 몽이가 낑낑대며 앉아있다면 불과 3분도 지나지 않아 무너진다.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는 잔뜩 부리는 자존심이 모두들 몽이 앞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고양이로 이어지는 박소영과 박수영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우리 가족이 몽이를 위해 같이 살고 있는 건지, 몽이를 제외한 우리 가족이 이 집에 먼저 살았었던 건 맞는지 자주 헷갈린다. 『자매일기』 자매 역시 일상을 이야기할 때, 관계의 줄(고양이)을 빼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동생과 함께 자매일기를 쓴다면, 의도하지 않아도 몽이 이야기가 80%를 차지해 버릴 것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벅찬 존재
누군가는 고양이의 이야기가 많다고 타박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자매를, 우리를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마음들이 담아져 있다고 이해했다. 그렇기에 『자매일기』는 무척이나 솔직하고 따뜻하다.
나는 『자매일기』를 읽은 한 독자로서, 자매를 잇고 있는 줄이 길어지길 바란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벅찬 존재들이 아주 오래오래 살아있고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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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사람이랑 친해?"라고 묻는 질문에 우리는 망설인다. 친하다고 말할 수 사이인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난 걜 되게 아끼고 걜 되게 좋아해"(140813 푸른밤 종현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멈칫했던 순간들. 흔히 연애에서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우정에서도 언제나 조금씩 흔들렸고 심술 부린 날들.
『동경』은 여름에서 다시 여름으로 끝나는 시간 동안 아름, 해든, 민아의 성장과 우정을 담은 장편 소설이다. 세 명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몇 가지있다. 첫 번째는 인형 리페인팅을 하거나 했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셋은 모두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모두 각자들은 상대를 좋아한다고 확신한다. 소설은 상대에 대한 확신을 자기 자신을 통해서 채워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타인을 통해 나"를 보라는 말이 있다. 솔직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아름은 동경하는 해든과 민아를 보며 자기를 되돌아본다. 해든 또한 아버지 장례식장에 찾아온 아름과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민아를 보며 자신의 심술에 대해 생각한다. 홀로 아등바등 버텨왔던 민아는 조금씩 아름과 해든에게 기대기 시작하며 달라진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그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은 그 둘을 섞은 모습도 아니고 그저 여백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이제 나는 좀 나이고 싶어.(p.197)" 아름과 해든, 민아는 각자의 시선에서 둘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나"를 맞닥뜨린다. 이는 결국 카메라를 드는 아름이 되고, 이번 생은 최선이라고 답하는 민아가 되고, 다시 짓는 걸 찍을 거라 답하는 해든이 된다.
이를 직업적으로 조명하기도 한다. 인형 리페이팅을 하던 아름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직접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물론 이는 흔한 직업적 성장에 해당한다.
이렇게 『동경』은 뒷 이야기를 예상하게 만드는 흔한 서사가 등장한다. "아픈 가족 이야기"로 다른 장편들과 차별점이 없었다. 또한, 곳곳마다 감정이 과잉으로 느껴진 부분들(도자기 사건으로 인한 아름의 감정)도 있었으며, 후반부에 갈수록 분량을 늘리기 위한 마무리 서사(봄, 여름 편)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동경』은 오래된 카메라 속 문득 꺼내보며 웃는 얼굴들을 닮았다. 책상에 둔 액자처럼 매일 보지는 않지만, 억지로 미소 지었던 카메라의 오랜 얼굴을 보면 왠지 어렴풋한 기억을 잡아버리는 것만 같다. 『동경』 역시 예상되는 성장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계속 가는 이유는 우리가 오래된 카메라의 사진을 보고 웃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우정은 미끄럽다. 누군가와 부딪혀서 싸우고 혼자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넘어진 게 웃긴 추억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우정은 시간을 쌓아간다. 상대방을 생각하느라 그 사람과 친한 사이냐는 질문에도 편히 대답 못하지만, 이제 그처럼 소심하게나마 걜 되게 아끼고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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