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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여성과 여성 사이를 오가는 빛, 그 힘에 대한 이야기다. 힘겨워하는 이도 힘을 주는 이도 대부분 여성, 예외적 남성성 없는 남성으로, 여성이 다른 여성과의 관계로 오늘을 버텨낼 힘을 갖는 모습을 그린다. 읽고 있자면 인간이란 정말이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일어설 수 있는 존재구나, 그런 믿음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소설 속 남성이 죄다 비루하고 저열하단 점이 남성 독자로서 답답한 감상을 갖도록 하는 게 사실이다. 딸을 남의 집 부엌데기로 팔아치우고,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 딸에게만 재산을 주지 않으려하고, 뛰어난 여자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불공평한 가사노동을 강요하는 남자들. 그러나 이 모두가 누군가에겐 사실일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소설이 그린 희미한 빛의 연결이 성별을 넘어 모두에게 유효하다고 굳이 최은영이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를 나는 믿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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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이란 이름을 내건 북카페에서의 경험이 내겐 완전하여서 나는 책 한 권을 사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를 볼 때마다 여기서 맛본 감동이 떠오르리란 기대였다. 여러 권의 책 가운데 카페 이름과 같은 <바베트의 만찬>이 눈에 들었다. 나는 주인장에게 책의 제목을 가게 상호로 딴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그가 내게 이 책과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 묻더니 보고 나면 알리라고 하였다. 나는 이제 그를 안다.

처음 실린 표제작 '바베트의 만찬'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예술을 하는, 적어도 애호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이가 나와 같으리라 확신한다. 모든 걸 잃고 타국으로 흘러온 주방장, 제가 가진 모든 걸 하루아침에 태우고 난 그녀가, 그러나 조금도 비루해보이지 않다.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라니까요."

바베트의 말에 실린 자긍심이 어찌나 컸던지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등판에 쩌억 한 줄기 채찍자국이 남은 듯도 하였다.

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디네센 지음
문학동네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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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되는 여러 비판들, 이를테면 학술적으로 논란이 되는 서술이 많다거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시각이 엿보인다는 학계의 주장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한 학자가 역사학의 세부분과들은 물론이고 과학과 경제, 철학 등 다른 학문분과들을 넘나들며 제 생각을 펼친 대중서이기에 가질 밖에 없는 문제를 이 책 또한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한 출처와 실증적 연구의 부재, 무엇보다 통상의 논문과 달리 동료 학자의 교차비판을 피해 출간된 대중서란 점이 이러한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피엔스>가 오늘의 독자에게 의미 깊은 저술이란 점 또한 확실하다. 기존 역사학계가 이루지 못하였던 대중의 관심을 크게 환기했다는 점도. 인류가 오늘의 문명을 이룩하고 심지어 그 장래를 장담할 수 없는 혁신적 기술의 세계로 접어들기까지, 지나쳐온 중요 지점들을 이 책이 흥미롭게 살핀다. 그로부터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드문 우리 독자들은 인간이 저지른 무수한 잘못과 약간의 이로움에 대하여 평가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기존 통념과 다수설을 뒤집는 몇몇 주장 또한 신선하다. 이를테면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하나의 종교로 바라본다거나, 여러 지역 제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뒤처졌음이 명백했던 근대 유럽국가들이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신대륙을 정복하고 과학혁명을 이룩한 이유를 설하는 점 등이 그러하다. 하라리의 분석 그대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수많은 학자들의 비판처럼 편협하고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질문과 시각, 가설들이 독자로 하여금 지식 아래 깔린 이면을 돌아보고 스스로 사유하게 하는 힘을 준다는 점은 명백하다.

<사피엔스>는 대중서로서의 가치가 충만한 저작이다. 누구든 이 책으로부터 기존에 알지 못했고, 충분히 돌아보지 못하고 무시했던 중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다. 또 약간의 운이 따른다면 그와 같은 지식들로부터 새로운 지혜가 태어나는 순간도 맛볼 수 있을 테다. 책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게 바로 이와 같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김영사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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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소설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이미 한국에서 소설에 등장한 여러 사례가 뉴스를 탄 바 있다. 학습지 시장 뿐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갖가지 방식으로 제 노동을 착취당한다. 일부는 일터에서, 또 일부는 제 공간으로 돌아와서 생을 저버린다. 그 많은 죽음 가운데 업체가 제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본은 노동을 위하지 않고, 책임 있는 이들조차 개선을 외면하기 십상이다. 이 소설은 그 같은 비극 위에 약간의 문학적 상상을 더한 결과다.

이전 시대 노동문학의 지향은 명확했다. 법을 미준수하는 거대자본에 맞서 들끓는 민주화의 열망과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갔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문학은 제 설 자리를 잃었다. 달성된 민주화는 노동문학의 손을 놓았다. 세련된 제도는 법의 틀 안에서 노동자를 옥죄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하여 수아의 죽음과 같은 비극들이 거듭 반복되는 것이다.

소설 속 연우는 홀로 수아를 복권시키려 한다. 좀비들과 맞서 짓밟혀선 안 되는 진실을 지키려 한다. 그의 모습으로부터 오늘의 몇몇 사건들이 읽히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연우가 살아 오늘의 세상을 본다면 어떤 광경일지 생각한다. 우리는 좀비가 아닌가, 세상은 좀비시대가 아닌가. 정말 그러한가.

좀비시대

방서현 지음
리토피아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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