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비트코인에 대한 분량은 매우 적은 편이고, 국제 지정학과 관련된 내용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컨데 우크라이를 침략한 푸틴은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이며 약소국을 괴롭히는 깡패 같은 놈이고, 가자지구와 시리아, 이란을 연달아 공습한 네타냐후 총리 또한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여겼었다.
이제와 고백하지만 나는 너무 순진했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국경선 안쪽, 그러니까 국민국가 안에는 정부가 존재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강제집행 수단이 있기에 질서가 유지되지만, 국경선 밖은 힘의 논리가 지배할 수 밖에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와 유사하다.
물론 UN과 같은 국제기구가 국가 간의 분쟁을 조율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강력한 국내법에 비해 얼마나 구속력이 느슨한지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듯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경 밖은 오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다.
역사이래 국경 밖을 지배하는 힘은 잠깐의 공백기를 제외하면 늘 있어왔지만, 항구적이지는 않았다.
과거 우리는 그 힘을 가진 국가를 일컬어 제국이라 칭했고, 제국이 사라진 현재 그 힘을 가진 나라는 미국이다.
바다의 해경 노릇을 하는 미국이 있기에 독재국가들이나 해적들이 무역 요충지에서 난동을 부리지 못하고, 전세계 모든 나라가 바닷길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엔 엄청난 비용이 수반된다.
얼마전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는 앞으로 공짜로 지켜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 천명했다.
우리나라도 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국경 밖을 지배하는 힘은 늘 변해왔다.
언젠가 미국의 힘이 빠지면, 지정학은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칠 것이다.
비트코인, 그리고 달러의 지정학
오태민 지음
거인의정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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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의 저자가 쓴 책이라 무척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총균쇠는 엄청난 스케일과 남 다른 시선으로 인류 문명사의 맥을 날카롭게 집어냈을뿐 아니라 인류역사에서 유럽이 중심을 차지한 이유가 단지 운에 불과하다는 논평으로 나에게 얼마간의 위로와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엔 총균쇠만큼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이 책 또한 독특한 시선으로 여러 문명의 붕괴를 파헤쳤지만 내가 기대했던 그리스•로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황하 등 인류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문명의 붕괴를 분석한 것이 아닌 까닭에 약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에 등장하는 문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문명이다.
태평양의 이스터 섬,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아나사지와 마야, 북극에 가까운 그린란드,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
이러한 문명들이 막을 내리는 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삼림훼손.
문명의 개척자들에게 나무는 가장 필수적인 자원이었다.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짓고, 배를 건조하고, 요리와 난방을 하기 위해 벌채는 불가피했고, 인구가 늘면 늘수록 삼림훼손은 더욱 더 심각해졌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자연은 이상 기후와 생태계 균열이라는 부작용을 낳음과 동시에 인간에게 질병과 기아, 전쟁과 약탈이라는 형벌을 내렸고, 이는 문명 붕괴의 단초가 되었다.
저자는 살아남은 문명과 그렇지 못 한 문명의 차이를 비교하여 위와 같은 논지를 강화하는 한편, 인류의 미래가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데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자연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대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여러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저자는 말한다.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소비자의 힘은 위대하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지갑을 열 때조차 신중해질 필요가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문명의 붕괴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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