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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를 다룬 보통의 역사서에 비해 두드러지는 한 가지 특징이 이 책 소개에 쓰여 있었다.
바로 “서구, 백인, 남성, 권력자가 아닌 ‘거의 모든 사람’의 역사”라는 것.
이 문구 하나에 글쓴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음에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읽으며 느꼈다. 내가 찾던 역사서라고!!!
누가 전쟁을 했고, 정복했고, 왕위에 올랐고...같이 어느 역사서를 펼쳐도 쉽게 볼 수 있는 레파토리를 이 책에서는 보기 힘들다.
대신 기존 역사서에서 크게 관심 갖지 않았던 대상과 사람들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한다. 또 어떤 건 초단편 소설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기원전부터 있던 포도주가 누군가의 슬픔을 달래주었고, 누군가는 파티에서 즐기기 위해 사용했고, 또 어떤 중세의 학자이자 문학가가 작품에서 그토록 찬양한 것이라고 말한다.
📖p.145(포도주의 목소리)
오마르 하이얌은 이슬람 사원보다 술집을 더 좋아했다. 그는 지상의 권력도 하늘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느님의 자비심을 느꼈는데, 하느님은 결코 취하지 않는 분이었다. 그에게 최상의 말은 코란에 쓰여 있지 않고, 포도주 잔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 말은 눈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읽히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여자, 히브리의 여자, 동화 구연가들의 어머니, 아이샤, 하느님의 방문을 받은 성녀들, 에밀리 디킨슨 등 동서양과 고대, 근대, 현대를 넘나 들며 펼쳐지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도 볼만하다.
📖p.426(장소의 밖에 머문 여자들)
일요일의 전형적인 광경 하나는 에두아르 마네에게 명성을 안겨준 그림이다. 남자 둘과 여자 둘이 파리 근교로 소풍을 나와 잔디밭에 앉아 있는 그림이다. (……) 남자들은 뭔가 남자들만의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고, 여자들은 주변의 나무들보다 덜 중요하다. 그림의 전경에 나타난 여자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뜨악한 태도로 우리에게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지”라고 묻고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의 역사”라는 말이 붙게 된 경위도 초반에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글쓴이는 중국, 바그다드, 러시아, 에스파냐 등 어느 한 지리적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 세계를 배경으로 물질과 사람들을 말한다.
📖p.325(이크발의 생애)
이크발 마시가 네 살 때, 그의 부모는 자식을 15달러에 팔았다. 카펫 제조업자가 이크발을 샀다. 이크발은 직조기에 묶인 채 매일 열네 시간씩 일했다. 열 살이 되었을 때 이크발의 등은 곱사등이처럼 굽고, 폐는 노인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크발은 그곳을 도망쳐 나와 파키스탄 어린이 노예들의 대변인으로 변했다. 열두 살이 되던 1995년에 총알 한 방이 자전거를 타고 가던 이크발을 넘어뜨렸다.
이렇게까지 방대한 내용을 책 한 권에 담기 위해 글쓴이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역사가 어렵다고 느끼거나, 지루하다고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텍스트 형식으로 되어 있으면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이렇게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경우는 처음이다.
*알렙 도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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