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런 벽지
이와 같은... 누런 벽지로 가득 찬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누구라도!
파멸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작가의
현실 고발을 담은 책
이미 미쳤거나
미쳐가고 있는 중이거나
결국엔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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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고 깊어지는
월간 내로라
누런 벽지
내로라 출판사에서
한 달에 한 편
영문 고전을 번역해
단편 소설 시리즈를 출간할 당시
거의 초창기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단편 소설
원서와 번역본 나란히 수록
번역자의 생각을 더한
더 깊어지는 페이지까지
읽는 내내 흥미롭고
읽고 나면 여운 가득한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는
제가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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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이걸 읽는다면
미쳐 버릴 것이 분명하며,
그렇기에 이 소설은
절대로 출간되어서는 안 될 것!
_ 《누런 벽지》 출간 후 보스턴 주의
어느 의사가 'The Transcript'에 기고한 글
《누런 벽지》는 집안에 갇힌 채 미쳐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미쳐 있었거나 그 경계를 아슬하게 걷고 있는 중인 이 여성은 결국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요, 그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1인칭 독백만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감정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는데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랍니다. 기필코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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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책 출간 당시에는 신경 쇠약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휴식 치료법'을 적용했다고 해요.
환자의 완벽한 휴식을 목표로 6~8주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어떤 지적 활동이나 창의적 활동도 제한했고요. 영양 공급을 위해 고단백 위주로 식단을 구성했습니다. 15킬로그램 체중 증가가 치료의 성공 지표였다고 해요.
◾️◾️누구라도...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상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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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몸보신, 여행, 신선한 공기, 운동, 뭐 이런 것들을 함께 처방했고, 완전히 건강해질 때까지 모든 '일'을 절대 금지했어.
내 생각에, 그 처방은 틀렸어.
《누런 벽지》 p.27
의사 남편과
유명한 의사 오빠마저도
같은 처방을 내립니다.
✔️야외 활동 금지
✔️글 쓰는 것 금지
✔️사람들과 교류 금지
✔️아기와의 만남조차 금지
✔️오로지 침대에서만 생활하기
무척이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유서 깊은 대저택의 맨 꼭대기 층
여름 한 철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
'지금까지 맡아본 냄새 중에서 가장 은은하고 또 오래가는' '정말 독특한 악취'를 풍기는 '누런 냄새'로 가득한 누런 벽지에 둘러싸인 공간.
'그 색깔은 혐오스럽고 역겹기까지'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햇볕을 받아 변색된 것 같은, 들끓는 불결한 누런색'.
'전반적으로 칙칙한 색인데, 군데군데 폭력적일 만큼 선명한 오렌지색이 섞여 있고, 나머지 부분은 매캐한 유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누런 벽지로 둘러싸인 대저택의 최상층에 위치한 옥탑방 같은 곳.
그곳에서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합니다.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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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대저택의 아래층에는
아름다운 공간이 많이 있어요.
왜, 하필,
감옥 같은
이 방에서 지내야 할까요?
신중하고 다정한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
이런 공간에서
매일 더 미쳐가는 여주인공
몰래
글을 쓰는 것으로
심정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열한 편의
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정말이지 읽는 내내
미쳐 버릴 거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왜? 왜? 왜?라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
저는 사람들을
광증으로 밀어 넣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닙니다.
광증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썼습니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 The Forerunner 》에서 발췌
이 소설은 현실을 고발하는 책입니다.
작가 역시 심각한 신경 쇠약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의사는 책의 주인공에게 내린 처방과 같은 치료법을 작가에게 권했고 얼마간 충실히 따랐습니다.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어요. 더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홀로 방법을 모색합니다. 마침내 신경 쇠약에서 벗어난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며 이 문제를 공론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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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된 이후
신경 쇠약증에 관한
다른 치료법이 도입되었다고 해요.
이전까지는 대부분 마시지 요법과 전기 충격 요법을 병행했고요, 마약 성분을 함유한 신경 안정제 주사는 비용적인 측면 때문에 중산층 여성들에게만 적용했다고 해요.
특히, 주인공 여성에게 적용했던 무자극 무활동 처방은 신경쇠약증 환자뿐 아니라 과하게 활동적이고 사회적인 여성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도 적용했다고 해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런 시대에
출간된 《누런 벽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값진 승리이자
여성을 향한
편견에 반기를 드는
마중물 같은 책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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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가 《누런 벽지》만 읽었다면
책의 의미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혼미했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내로라 시리즈로 만난 책에는 작품을 쓴 경위와 그 당시 사회적 상황, 이 책이 일으킨 반향까지 함께 수록하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로라 시리즈를 애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작품을 슬쩍 읽고 흘려보내게 하지 않습니다. 곱씹는 동안 의미를 더하게 만들지요.
작품을 알아가고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내로라 시리즈!
📌
《누런 벽지》는
다소 기괴하고 찝찝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읽어요?라고 물으신다면
그렇기에 읽어 보세요!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사회 문제를 직시한 소설!
자기 파멸적 상황을
뚫고 나온 작가가 쓴
이 소설 덕분에
신경 쇠약증에 관한
치료법까지 바뀌게 되었습니다.
소설이 한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어떻게 바로잡아 나가는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은이) 지음
내로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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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는 청춘들에게
글쓰기의 고단함을
아직 고봉밥으로 돌려받지 못한
작가 혹은 예비 작가들에게
삶이 어질할 만큼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는 느낌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수없이 뻗어나간
관계의 가지 속에서
길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단순 생활자를 권합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전 세계 20여 개국에 판권을 수출한 황보름 작가의 신작 에세이 『단순 생활자』가 출간되었습니다.
뭔가 단순해질 것 같은 제목과 왠지 자유로워질 것 같은 표지에 이끌려 선택하게 된 책!
이즈음 제 마음이 이유 없이 분주했습니다. 뭔가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단순'과 '생활자'라는 조합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편의점과 잡화점 관련 책을 읽었고 나름의 이유로 좋았습니다. 문제는 연이어 출간된 '장소' 프리미엄(?)을 장착한 책들에 이상하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또'라는 생각 먼저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전작도 그런 이유로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았을 때 느낌이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곧 읽게 되리라는 것을요.
한두 페이지 넘기는 사이, 이미 작가님의 필력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가령 이런 문장들.
오랜만에 헐렁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27)
인간이란 타인에게 얼마나 어렴풋한 존재인지 새삼 놀라며(73)
심야의 허기. 모른 척할 수 없어도 모른 척해야 마땅한 허기.(96)
특히, 101페이지 라면에 관한 표현들은 단연코 압권입니다.
작가로서 포지션이 명확하지 않을 때, 출간 전 '휴남동 서점'을 처음으로 읽어본 세 분이 들려준 이야기 또한 책을 몹시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20여 개국에서 주목한 이유 또한 분명 있을 테고요.
'휴남동 서점'에 관한 기대는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하고, 지금부터는 '단순 생활자'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살아온 지난 1년간의 이야기
생애 첫 독립 후
스스로를 건사하며 지내온
삶의 흔적을 고루 담아낸 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출간되기까지 쉽지 않았던 여정과
읽고 쓰고 걷는 삶의 이야기를 담은
단순 생활자
삶을 단순하게 다듬어가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과하거나 넘치는 것 없는 삶 속에서 느껴지는 충만함을 동경합니다. 작가는 '단순 생활자'를 통해 그런 삶을 스스로 증명해 보입니다. 쓰레기봉투 하나 사 본 적 없던 삶에서 자신을 살뜰히 살피며 사는 삶으로!
'책을 쓰며, 단순하게 산다는 건 사는데 불필요한 것들을 되도록 걷어내고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일들에 시간을 들이며 사는 일이라는 걸 이해해갔다. 내 삶에 꼭 있어주었으면 싶은 것들을 몇 개 정해놓고 그것들을 하면서 시적시적 걷듯 생활하는 마음이 좋았다.(프롤로그 중에서)
읽고 쓰고 걷고, 밥하고 청소하고 운동하는 것 외엔 별다른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로 작가는 '단순'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자 마음먹습니다.
언제나처럼 다른 삶을 흘긋거리다 보면 유독 가슴이 반응하는 삶들이 있었다. 조용하고 단순하게 흘러가는 삶들이었다. 겉치레 없이 눈앞에 놓인 일과에 집중한 삶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는 듯했다. 그 질서를 따라 삶을 단순하게 다듬어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문득 생각하게 됐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단순 생활자』 p.252
작가는 처음부터 작가일수 없습니다.
들쭉날쭉한 수입은 생계를 이어갈 다른 직업을 찾게 만듭니다. 황보름 작가 역시 그러한 시기를 견뎌왔다고 해요. 습관적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다 마침내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 과정의 이야기들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해내고 싶은 분들께 위안과 용기를 전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첫 월급이 통장에 찍힌 날, 나는 좀 허탈해서 웃었다. 수천 권의 책을 팔아야 받을 수 있는 인세가 거기 찍혀 있었다. 월급쟁이의 노동은 임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찌 됐건 척척 밥으로 환산되고 이다는 사실이, 얼마 전까지 하루 종일 쓴 글을 밥으로 환산하지 못하던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19)
요즘 많은 분들이 책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든 글 쓰는 삶은 결국 자신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값진 일!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해 내기 위해 애쓰고 계실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점점 더 제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몽테뉴가 10년간 칩거했다는 그만의 서재 치타델레를 떠올려봅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싶다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찾는다'는 황보름 작가님처럼.
단순한 삶을 꿈꿉니다. 단조로운 삶도 제 성향에 맞을 듯합니다. 단순하고 단조로워 틈이 많은 삶. 그 사이사이 마음이 쉬어갈 자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들로만 배치하고 그 속에서 위로받는 삶. 생각해 보면 못할 일도 아닌데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들여놓을 수 있는 빈자리를 마련해야겠습니다. 그 안에서 저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생기로워질 것 같습니다. 자신을 건사하며 사는 삶! 어쩌면 단순 생활자 같은, 어쩌면 명랑한 은둔자 같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걷고 싶었습니다. 걸어야겠습니다. 이유 없이 걷고 이유를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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