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우
읽었어요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많은 돌봄 케어에 관한 책 중에서 제목과 부제의 직관적 문구가 들어왔다.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 돌봄은 자식 된 도리와 효의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양육과 간병 혹은 부모 돌봄의 차이는 다른 인간의 대기조이면서도 그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57쪽에서 말하듯, 성장과 독립이 아닌 의존과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장이 한국적 시선에서는 냉정하게 비출 수도 있겠지만, 부모 돌봄의 서사가 눈물이나 후회 또는 화해의 흐름이 아닌 11년간의 자신의 경험과 감정, 삶에 대해서 가감 없이 말하고 있어서 오히려 오래된 미래를, 행운아가 아님을 그런 까닭으로 작가의 솔직한 말투가 전혀 냉정하게 들리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어머니와 발병, 발병 후 간병인과의 돌봄 과정, 어머니의 죽음, 사후의 생각들로 이야기가 나뉜다.
어머니의 발병 이후 병원을 오가고, 그들 사회의 의료시스템의 흐름을 보게 되었다. 노인 전문의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병원에서 전문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다른 나라의 시스템의 수용이라는 생각과 그만큼 노인인구의 증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이후 여러 간병인을 들인 끝에 어머니의 마지막 간병인이었던 프랜시스에 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간병인이라는 직업군과 사회적, 문화적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근래 출간되는 책들의 주요 화두로 대두되는 돌봄 노동과 간병인은 관계, 위치, 사회적 맥락은 여전히 선 밖의 이야기로 이제 선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의미나 구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고용 관계로 시작했지만, 친밀도와 개인의 도덕성에 기대야 하는 부분이 갈수록 많아지고 때로는 감시하는 입장과 갑을 관계의 역전까지도 가게 되는 관계가 상주 간병인과의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프랜시스에게 심리적인 함의_빚진 것들_는 그녀와 작가의 자매들과의 관계의 추가 변하게 하곤 했다.
8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들었던 양가감정에 대한 작가의 술회가 간병하는 자식들의 공통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상주 간병인과 함께 할 수 있던 과정에는 이런 순간도 있었다는 술회가 그래서 현실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가정 임종의 과정에 대한 기록은 병원 임종이 대다수인 우리의 현실에서는 알 수 없는 과정들에 적확한 기록들로 임종의 사실적 과정을 보게 했다. 숨이 멈춰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고통에 대한 처우를 생각해 보게 한다. 병원 임종에서는 의료적 행위로서의 죽음만이 느껴지는데, 가정 임종에 대해서 작가는 짊어지게 된 책임감의 정서적, 심리적 무게가 상상이상이라고 했지만 임종의 과정에 임할 수 있다는 지점이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더 나은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완화의료와 호스피스 케어에 대한 지점이 더 눈에 들어온다. 부모와 나의 미래이기에 이젠 먼 이야기로 흘려지지 않는다.
작가가 이 글을 쓴 여러 이유 중 의료시스템이 당사자들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당사자들은 어떤 정보들을 제공받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확고하게 들어온다.
죽음의 과정 속에서 가족의 반대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이른바 무의미한 연명치료, 존엄사에 방점을 찍게 된다.
현실적인 행동으로 자신과 배우자의 장기돌봄서비스 제공업체 등록했다는 후일담에서는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부모의 죽음 이후에는 나 자신의 죽음의 과정도 준비해야 한다는 당사자성이 각인된다.
작가는 책 곳곳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냉랭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이나 화해보다는, 현실을 수용하면서 함께 가는 과정 속에서 이런 모녀 관계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모성이나 돌봄의 감성성에 어필하지 않는 그 모든 감정과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제가 말하듯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서사는 다 보여준 것 같다.
인간 서사의 마지막이고 점점 중요한 삶의 화두인 죽음과 돌봄에 대한 직관적이고 명료한 산문 한 편을 읽었다.
책속의 문장
출처 입력
57쪽
나는 아이를 원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다른 인간의 대기조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달리 어머니는 성장하지 않을 것이다. 점점 자라면서 강해지지도 않을 것이고, 자립하게 될 가능성도 없었다. 어머니는 쇠약해지고 있었다. 가끔 좋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69쪽
내 삶이 좁아진 듯했다. 내 삶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듯했다. 나는 내 삶의 일부를 포기했고, 그런 생각을 했다. 꼭 해야만 하는 의무로 여겨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생각들을. 희생. 나는 자유의 상실이라는 현실에 저항했다. 특히 첫 이삼 년간은 크게 반항했다.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적응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106쪽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수명이 상대적으로 더 짧다. 돌봄에 필요한 노동과 인내심, 긴 근무 시간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정체된 것처럼,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시간은 사람들에게 있거나 없는 것이다.
244쪽
대개 의학계가 노인을 취급하는 방식은 사회 전반이 노인을 취급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마치 노인이 더 이상 환영받지 않는 존재, 판매대에서 치워야 하는 존재. 자신이 쇠약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젊은 사람은 상상하지 않는다. 상상해야 할 이유도 없다. 노인의 모습은 우리를 미래의 현실 속으로 날려 보내는 불손한 탄환이다.
247쪽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이 글을 썼음에도 나는 여전히 짐작만 할 뿐이다. 왜 어머니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에게도 영혼이 암흑에 빠진 순간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떤 연유로 그랬는지도.
2
이주연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