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생물학자로서 뉴기니에서 새의 진화에 대해 연구할 당시 뉴기니 지역 정치인이었던 얄리가 그에게 한 질문, "당신네 백인은 그렇게 많은 화물(신문물)을 개발해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우리 흑인에게는 우리만의 화물이 거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했고 최초의 문명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꽃피었지만 그 이후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국가들은 이 지역 국가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구대륙 국가들이 신대륙을 압도하였고 또 인구가 수백만이 넘었던 잉카제국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는지, 백인들이 과연 지적으로 우월해서 신대륙 원주민들을 학살할 수 있었는지 등을 인류사 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로 해답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한 해답은 바로 '지리적 차이'.
첫째, 유라시아 대륙은 중심축이 동서축으로 뻗어 있어 중심축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비해 문명의 발전 및 전파 속도가 우월할 수 밖에 없는데 위도간의 차이가 크지 않아 작물과 가축의 적응이 굉장히 수월했기 때문이다. 중심축이 남북인 경우 한 지역에서 작물화에 성공한 야생식물이 위나 아래 쪽으로 조금만 이동해도 기후가 급변해 적응이 쉽지가 않았다.
둘째, 작물화 및 가축화할 수 있는 야생동식물종의 대륙별 차이다. 소빙하기 이후 많은 대륙에서 포유동물이 멸종되어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가축화된 토착 야생동물은 뿔닭이 유일하고, 아메리카 대륙은 라마와 알파카 정도였지만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소, 말, 양,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을 가축화하는데 성공했다. 야생식물의 경우에도 수백종 중에서 작물화 가능한 중은 겨우 수십종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대륙별 편차가 컸다.
셋째, 일찍 농경을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면서 가축의 분뇨 및 집단생활로 인해 지속적인 전염병을 오랫동안 겪어오며 유라시아 대륙의 집단 거주민들의 균에 대한 면역성이 높아졌다. 반면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고립되었던 원주민 집단은 가축화된 동물의 수가 많지 않아 동물에서 비롯된 각종 균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다.
이러한 차이들로 인해 각 대륙은 문명의 발달 속도에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인류의 문명이 처음으로 발달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그 영향력을 상실했을까? 그 이유는 지나친 농경과 벌목으로 인해 땅이 황폐해져 이 후 생산력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점차 비옥한 지역으로 문명은 확산되었고 서유럽쪽에서 강력한 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분량도 적지 않고 많은 사료들이 제시되어 있어 읽기에 어려워보일 수도 있지만 번역의 질이 좋고 무엇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책에서 손을 떼기가 힘들게 만든다. 인류사에 관심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교양서로도 손색없는 최고의 책.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