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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그만두면 안 돼?
강선이 말했을 때, 은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사실 빠른 철렁은 아니고 철-렁이나 처얼-렁에 가까운 편이었다. 느린 하강을 감지하는 마음이랄까. 부러지거나 휘거나 쓰러지지 않으려면 직장과 주거지를 계속 옮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날은 그 시기가 아직 먼 것 같았고, 가끔은 그 시기가 가깝게 느껴졌으며, 우울한 날은 이미 지난 것처럼도 여겨졌다. 저승으로 가는 통로 위에 세워졌나 싶게 매번 나빠지는 오래된 학교에서 지나치게 소모적으로 살고 있었다.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은 네가 계속 나쁜 선택을 하기 때문이지 네가 속한 그 어떤 집단 때문도 아니야. 이 경멸은 아주 개별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하는 그런 넌더리야. 수백만 해외 동포는 다정하게 생각하지만 너는 딱 싫어. 그 어떤 오해도 다른 맥락도 끼어들 필요 없이 누군가를 해치는 너의 행동 때문에 네가 싫어.
"있잖아, 다음 선거에는 너희들한테도 선거권이 있어."
대흥의 설명을,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끄트머리에 그렇게 덧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홍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얻었다.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휠씬 나을 거야. 그러니까 그 바보 같은 교과서를 막길 잘했어.
두 사람은 몇 년새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어 있었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며 길게 말하지 않아도 쉽게 좋은 호흡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나 연인은 아니었다. 매주 손을 잡고 걸어도 연인은 아니었다. 은영은 살아 내는 일이 버거워서 먼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모든 상황이 임시적이라는 걸 늘 암시했다. 여기엔 잠시 있는 거예요, 라고 항상 내비치는 여자를 향해 감정적인 경계선을 넘기에는 인표가 너무 현명했다.
은영에게 아주 미약하게나마 모진 의도가 없었다 해도, 머물지 않겠다는 그 표정만으로 지난 몇 년간 인표는 신경통 비슷한 것을 않아야 했다. 쉬운 게하나도 없는 관계라면 놓아야 하는 관계겠지. 그런 말 그대로. 기운 뺏기는 관계는.
마음속에서 부실한 선반 같은 것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곳에서 눕은 나사에 매달려 있던 것들이 결국에는 내려앉는 그런 소리였다. 여기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도 있을 듯한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드럽게 용의 몸이 떠올랐다. 10센티쯤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인표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용의 콧잔등을 쓰다듬었다. 힘내, 떠 봐. 이번엔 끌어내리지 않을게. 한 번 더 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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