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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어도 된다고 했지만,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읽히길 기다리는 그 초조한 마음을.
<초록 고래>와는 다른 장르의,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고, <초록 고래>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힘 풀어, 도연 씨. 힘 풀어.
한 모금만 할까, 딱 한 모금만? 끈질긴 통증과 그보다 더 끈질기게 이어지는 갈등.
그러나 유미 씨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선 탓에 부엌으로 갈 수가 없었다. 정작 유미 씨는 자신이 나를 막아서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런 유미 씨의 얼굴을 마주하자 온갖 감정이 뒤섞였다. 수치심과 분노, 좌절감과 그에 동반되는 이상하게기대고 싶어지는 마음까지. 이해가 안 되죠? 단 몇 시간도 참지 못하는 게. 내가 물었다. 그러자 유미 씨는 특유의 커다랗고 맑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그럴리 가요. 저는 지금 낙타인데요.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의 마음이 그토록 무수히 찢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낱낱이 다른 천 개의 슬픔과 만 개의 슬픔이 생겨났다는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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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없이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니. 돌을 토하는 것이 병이라면, 나는 영원히 낫고 싶지 않았다.
그때 양하는 아주 작고 약해져 있었다. 영하가 그런 상태가 아니었더라도 나와 함께일 수 있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매번 자신이 없었다.
그럼 장국영 돌봐주는 대신에 돌을 조금만 더 줄 수 있어? 희조는 훔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잠재우는 용도로만 쓰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고민 끝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다음번에 내 머리도 잘라주라. 그래. 이번 달 월세도 좀 내주라. 적당히 해.
나는 오랜만에 보는 영하의 얼굴, 그물무늬비단밤에게 수십 번 잡아먹히고 나서도 멀쩡한 그 얼굴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봉투를 열어보자 현금 백이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작년 겨울에 영하가 들고 갔던 생활비 통장에 남아 있던 금액이었다. 그 돈을 보자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나다가, 온 몸이 추워졌다.
처치 곤란한 동물을 산호에게 넘겨준 것만 같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머리가 완성되었을 때 산호는 말했다. 친구가 비단뱀을 이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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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내가 말했다. 원래 나쁜 일은 좋게 끝나.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쁘게 끝나는 거고. 그렇게 말하는 영하 언니의 얼굴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많이 피곤해요? 시차 적응이 안 됐나 봐. 언니는 무슨 일본에서 시차를 얘기해요... ... .
그 점은 내가 영하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이자 영하 언니를 미워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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