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미친 거 아니냐고... @1000udong 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인데 조금 두꺼운 편인데도 정말 쉴 틈 없이, 숨도 못 쉬고 읽었다.
다만 아쉬운 건 표지 디자인과 책 소개. 지금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더 많이 보고 사랑할 수 있도록 바꿨으면 좋겠다. 책 소개에 나오는 설정은 얼추 맞지만 그게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니까..
사실 이건 '파쇄자와 정지자 복원자'라는 초능력의 SF 설정을 품고 있지만 결국은 관계와 사랑에 대한 깊은 이야기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사실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가는 인물 하나하나를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냈는지 머릿속에서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상상도 해봤다. 물론.. 제발 로맨스를 너무 중심으로만 가지 말고 이 결을 그대로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서형우만 빼고, 정말 모든 캐릭터가 너무 소중했다. 정여준, 윤서리, 이찬, 나정… 하나같이 잊히지 않는다.
카페에서 함께 이 책을 읽었는데, 정말 중간중간에 눈물이 났다..
특히 윤서리. "난 복원자예요. 먼저 폭발해 다가오는 게 없으면 돌려보낼 수 없어요. 그러니 이번 희망도 부서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해요. 적어도 그 전엔 되돌리지 않을 거예요" 이 문장은 책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
그 긴 시간을 사람들을 되살리며 홀로 견디던 윤서리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냥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난다. 그리고 그걸 다 알면서 마지막까지 묵묵히 윤서리를 지켜낸 정여준도.....
이건 단순한 SF 소설이 아니라는거.. 진짜, 제발 꼭 읽어달라고 말하고 싶은 책.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왜겠어요?"
아래는 기억에 남는 문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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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이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데… 왜 이렇게 당신이, 익숙하고 그리운 거죠?”
“있잖아, 방금 네가 한 말 모른 척하고 넘겨버린 게 지금까지 서른네 번째인데…. 아무리 그래도 한 번은 정직하게 대답해주는 게 좋겠지? 내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뭔가가 계속 실패하는 중인데, 네가 시도한 그 질문도 자꾸 거절당하니까 보기에 별로 좋질 않네.”
그녀는 손을 떼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그래. 나도 당신이 그리워. 당신이랑은 다른 의미로 더 많이, 더 오래 그리워했어. 내가 아직도 만나지 못한 미래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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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니야. 네가 아니라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다고.”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그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5초 전으로 시간을 돌렸다. 그가 마지막 말을 남기는 그 순간이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다시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그의 생명은 꺼져갔다. 5초 전. 지친 복원자에게 그가 말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다시 눈물 한 방울, 그리고 얕은 생명과, 그리고 또 5초 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눈물 한 방울, 죽음, 5초 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눈물, 죽음, 5초 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녀는 계속해서 같은 시간으로 돌아가 그의 유언을 반복해 들었다. 정여준은 죽기 직전 매번 단 한 방울의 눈물을 보았지만, 수십 번의 눈물방울을 쌓아가는 윤서리에게는 통곡이었다.
끊을 수 없는 애도의 굴레에 갇혀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난 널 괴롭히고 있는 걸까? 널 살리려는 게 아니라 네 비석을 더 매끄럽게 깎고 있는 걸까? 네가 수천 번 죽은 건 나 때문일까?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가 다시 속삭였다.
그녀는 진저리치며 시간을 돌렸다.
무사했을지언정, 그녀는 다행이었던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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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화해할 수 있어. 날 믿어. 부탁이야. 우린 화해할 수 있어. 그렇게 되도록 만들 거야. 비록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앞으로도 누군가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살 수도 있었던 친구가 죽는 일은 없을 거야. 믿어줘. 우린 반드시 화해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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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 삼촌 왔다!” 멀찍이서 나정이 외쳤다. “근데 삼촌 왜 손에 아무것도 없어요!”
나정의 말에 맞장구치며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심부름시킨 물건들은 어디에 놓고 몸뚱어리만 갖고 왔냐며 깔깔거리는 목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려왔다.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져서 이찬은 실없이 웃었다. 매일같이 들어온 목소리인데도 아주 오랜만에 듣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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