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죽여 버린 것일까.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삶은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 아닐까. 이래서는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지금 상황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자기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프레디의 목소리와 나 자신이 겹쳐지는 것만 같아 고개를 내저었다.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나는 이런 생활밖에 할 수 없다.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일이 없으면 매일 할 일도 없다. 그래서 회사에 나간다. 하지만, 일을 해서 얻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도움을 주고 싶다.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 형태로 만들고 싶다. 일은 그런 욕구를 충족해 준다. 눈앞에 막연히 있는 시간에 일로써 다소나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약을 끊으면 괴롭고, 한 번 실패하면 고생이 더 심하다. 인터넷에서 그런 소회를 몇 번이나 보았다. 과연 내가 약을 줄일 수 있을까.
"괴롭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데......"
"누가 그러는데요?"
"그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그렇겠죠.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보통 목소리가 큰 사람이 흘리는 경우가 많죠. 야마조에 씨를 아는 사람의 의견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다음 진료 날짜는 한 달 후가 아니라 일주일 후로 잡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바로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의사는 평소의 담담한 말투로 돌아와 접수창구에서 다음 진료 날짜를 예약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약을 줄이면 발작 횟수도, 불안을 느끼는 순간도 늘지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면 두렵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것에 지레 겁을 먹고 한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있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새벽의 모든
세오 마이코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지음
왼쪽주머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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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이거. 특별할 건 없지만,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어.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의 맛이야. 그래, 내가 늘 요리를 하며 딸아이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사실은 당신의 맛있는 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야. 내 요리를 빛내주던 당신! 티나지 않게 늘 우리 가족을 뒷받침해주며 애써온 당신!
잘해야 본전이고, 잠시라도 소홀히하면 금방 티나는 집안살림. 하지만 내 옷장 서랍 속엔 깨끗한 양말과 속옷이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1.5L 병 가득 잘 우려낸 옥수수차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준비되어 있었고, 화장실의 휴지나 타월도 떨어진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딱히 보람도 없는 이런 일을 한마디 불평도 없이 언제나 따스한 마소로 해준 당신.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진 화려한 요리가 아니라, 늘 하이얀 쌀밥 같았던 당신!
돼지고기 동동
조경규 (지은이) 지음
송송책방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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