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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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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텍스티(TXTY) 펴냄

읽었어요
밀리의 서재에 단독이라고 올라와 있어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이도우 작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연상되었다. 어른들의 판타지. 장소와 경험에 대한 어른 판타지 동화 같다는 느낌이 왔다. 이 소설 역시 드라마화된다면, 나름 감성 드라마로 어필되지 않을까.
동네 독립서점에 대한 판타지가 이도우의 소설에서 보여줬다면, 이 소설에서는 편지가게라는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과 행위, 펜팔이라는 설정이 감성의 정점으로 이끌고 있다. 실제 존재하는 곳이며, ‘편지 쓰기를 동시대의 문화로 만들기 위한 즐거운 시도’를 하는 곳이라는 소개를 읽고 나니, 더욱 그런 감정이 전이된다.
고교 때 친구들과 방학이면 주고받던 편지와 펜팔을 했던 추억, 아날로그적인 손글씨 편지 쓰기를 했던 학창 시절에서 디지털 시대의 포문을 열어 함께 접했던 세대의 교집학적인 감성들이 편리함과 간편함에 밀려 버렸던 편지 쓰기의 행위를 새삼 환기하게 된다.

효영은 언니 효민의 사기 사건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들과의 불화, 단편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를 포기하고, 자의반 타의 반으로 대학 선배인 선호의 편지가게 글월에 알바로 취직하면서, 현실과 가족으로부터 도피성 자립을 한다.
해피엔딩 혹은 힐링 소설이라고 요즘 이런 경향의 소설들 중 하나로 볼 수 있긴 하다. 어쩌면 너무 예상 가능한 갈등과 화해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서는 '그래도 좋네' 라는 느낌이다.
효영이 글월에서 일하게 되면서 마주치는 인연, 그 인연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자신과 언니와의 관계를,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다. 조금은 뻔한 서사 구조의 소설일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읽고 나서, 따뜻한 한 줌과 글월을 방문하고 다시 편지를 써볼까 하는 마음을 일게 했다. 이런 마음을, 되새기는 생각들을 준 소설이라면, 흔한 결말이라도 괜찮지 아니한가!

소설의 디테일이 좋았던 부분들은 업무일지를 기록하는 효영이 그날의 매출만을 쓴 것이 아니라 손님 수와 그날 매장의 느낌까지 기록한 점, sns를 통한 홍보와 마케팅에 관한 의견을 제안하고 있는 점이 숫자만 적는 차가운 매출매입기입장이 아닌 온기가 한 점 들어 있는 기록으로 다가왔던 점이다. 알바와 사장의 관계가 이리도 갑을이라는 차가움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따뜻함으로 그려진 점도 좋았다.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있을까 하는 현실성은 제쳐두고, 있길 바라는 희망의 느낌으로 선호와 효영의 관계를 본다.

책 속에 등장한 7편의 펜팔 편지가 실제로 글월의 펜팔에서 응모하여 실린 편지라는 점이 독자와 소설가가 함께 만든 협업의 세계를 구축한 점이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원철의 편지를 통해서 반려자에 대한, 곁에 있는 사람과의 일상을 놓치고 사는 일상을 보게 된다. 늘 놓치고 나서,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원철의 편지는 그래서 울림이 있었지 싶다.
효영과 영광의 관계 또한 썸인 듯 아닌 듯 은근하지만 스며드는 만남과 관계의 풍경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진다. 강렬하거나 화려한 혹은 열정적이지 않지만, 서로 창문을 통해서 상대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시작되고, 상대의 깊은 내면의 상처나 치부를 어른이라서 어렴풋이 알지만 쉬이 묻지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순간 다소 충동적인 요청으로 함께 방문한 언니 효민과의 만남과 사건 속에서 그들, 효영과 영광의 관계는 변화되어 간다. 다른 커플의 이야기도 양념처럼 등장했지만, 효영과 영광의 관계가 가장 빛나 보였다. 아마도 드라마화된다면 이 부분이 좀 더 부각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소설에서 보여주는 관계의 진도가 딱 좋다는 생각이 든다.

편지를 주고받는 물리적 관계가 만년필의 잉크가 번지지 않고 말라서 줄 수 있는 거리가 좋다는 말에서, 새삼 편지의 물리적 관계성이 편지 쓰기의 맛을, 행위의 기쁨과 만족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사이에 편지가, 한 집에서 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는 점이 소설 속 대화에서 새삼 일깨우게 되었다.

편지 쓰기를 취향 혹은 문화로 만들려 하는 곳 편지가게 글월이 현실에서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책 속의 문장>

누군가가 건넨 말에 답할 수 있다는 게, 자기만의 대답을 담은 ‘답장’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_햇빛에도 향이 있다

타인의 물건을 똑같이 소중히 여겨 주는 마음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서른이 넘지 못한 효영이었지만 그 마음이 귀한 거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의 옆에 무해하게 남는다는 것이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옆에 있어도 괜찮은 것들은 결국 나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는 것들이었다.
_편지지 위를 걷는 손들

좁은 원룸에 꼭 필요한 물건을 고심해서 채우다 보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진정으로 필요한 것과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 이런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건 인간에게 꽤 큰 위로가 되었다.

글월에도 종종 편지지 모양이나 무늬, 색 등을 보며 자기 과거를 소환하는 손님들이 있다. 결국 글이라는 건 과거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 한 동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서툴고 부끄러워도 물 한동이를 펴내야 다음 할 말이 차올랐다. 그렇게 과거라는 우물을 정화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볼 줄 알았다.
_과거의 영광

“슬픔을 슬픔에서 멈추지 않고,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멋지지 않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돼. 그럼 좀 더디고 절룩대도 다 제 갈 길 가더라고.”

사랑한다는 건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아낌없이 시선을 보낸다는 뜻이다.

편지라는 건 결국 어느 정도는 물리적인 시공간의 거리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아요. 편지지 위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옆 사람한테 건네는 건 아무래도 멋이 없잖아요.
_에필로그: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감동을 주려 노력했다


결핍은 사랑을 만들고 사랑은 결핍은 껴안아 주지만 그 사이에 ‘주저’하는 마음이 저를 외롭게 할 때가 많거든요
‘그것이 곧 잊혀질 사소한 기억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은 아주 근사한 일이니까요.’
_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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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아이의 방학 숙제 책 중 하나였다. 여전히 독서록 쓰기를 몹시도 귀찮아하지만, 엄마도 읽고 같이 반응해달라는 투정 아닌 투정으로 읽고 아이의 말에 반응해 주었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고 읽어도 작가의 주제의식이 ‘관계’라는 점에 생각이 맴돌았다. 코로나19를 거쳐왔기에 그런 까닭일까! 유독 ‘관계’라는 키워드가 많이 들어온다. 점점 살면서 타인과 또 나 자신과의 관계에 생각이 많아지고 변한다.

소설의 화자 류담은 타인의 삶이 언제 끝나는지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부모님의 교통사고 이후로 얻게 된다. 원하지 않는 능력을 얻고, 그 능력으로 타인을 돕고자 하지만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을 열었던 친구의 ‘죽음의 디데이’를 막아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그 디데이의 초록색 링 숫자대로 죽는다. 이 사건 이후로 담은 자발적 아싸가 된다. 관계를 맺는 이의 '죽음의 디데이'가 보이게 된다는 걸 깨닫고, 그 이후로는 타인과 다시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초, 중교 시절을 지나 고등생이 된 담에게 같은 반 반장 소미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선다. 학교에서도 이미 자발적 아싸로 인식되는 담에게 미소는 반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같은 조별 과제를 하게 되면서 담의 일상에 의미를 갖게 된다. 또한 담과 같은 능력을, 같은 불행의 대가로 얻게 된 털보 아저씨 상두를 만나면서 담의 삶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털보 아저씨 상두가 불행으로 실의에 빠져 있다가 그 능력으로 무당 같은 업으로 밥벌이를 하지만, 그들의 단축된 수명을 바꾸는 방법을 알게 되고 도우면서 겪게 되는 과정 속에서 담과의 만남은 다시 한번 소용돌이를 속을 헤쳐 나가게 된다. 물론 이 방법은 타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전제가 따른다. 이런 설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만든다. 같이 읽는 이들에겐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물꼬가 된다. 타인을 위해서 얼마큼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가? 희생할 수 있는 이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일 때 가능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들.

이야기의 흐름이나 각 인물들 간의 관계가 연결되고 교차되는 구조들이 이야기 속으로 계속 빠져들게 한다. 복선과 암시가 있어서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될지도 가늠이 되긴 했다. 유일한 어른으로 나오는 인물 털보 아저씨 상두는 담과 ‘친구’가 되어서 혈연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조력자 혹은 동반자로서, 어른에 대한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고 필요한 현실적 모습으로 등장해서 좋았다.

담이 미소와의 관계가 변화되는 일련의 일들은 작은 인연의 조각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듯, 관계의 그림 또는 깊이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에서 새삼 대면의 세계가 갖는 힘을 새삼 느낀다.

담이 미소와 우정에서 설레는 첫사랑의 관계로, 그리고 목숨을 나누어주고 싶은 존재로 변화되는 관계의 변화는 담 역시 엄마의 희생으로 얻은 삶이라는 걸 깨닫고 그 덤의 삶을 자신의 소중한 존재에게 나누려 한다는 흐름이 인간의 성선설을 한껏 돋보이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담을 싫어하던 친구와의 오해 혹은 묶은 감정들이 해소되는 사건 역시 타인의 선의 혹은 본능적인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후 깨닫게 되는 담과의 대척점에 있던 소현의 변화도 그런 부분에서 이해가 된다. 담과 소현이 처음 맺는 관계에서 오는 서투름과 오해가 싫은 감정으로 변하게 되는 과정과 해소의 과정 모두 이 소설의 주제라고 느꼈던 ‘관계’를 더 생각하게 해준다.

청소년 소설다운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해피엔딩 혹은 성장과 화해,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열린 결말.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이르는 과정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 변화하는 담의 모습이 아픈 모습만 있지 않기에 엄마 마음에는 안도했다. 현실이 그토록 아름답게 완결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천진난만하지도 하고 그렇다고 상처에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체된 상태로 끝나지 않기에, 성장과 고난 또는 고통은 한묶음처럼 함께 오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너에게 남은 시간 죽음의 디데이

이혜린 지음
풀빛 펴냄

읽었어요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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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부제 전월세의 기쁨과 슬픔이 제목의 역설과 잘 어울렸다. 흥미롭게 읽었다.
건축가인 두 사람이 나뉘어서 ‘집’에 관한 개인적 시선에서부터 인문사회적인 사유로까지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들어왔다.
일견 30대들의 전월세의 이사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계속 살아가면서도 언젠가 소유하게 될 집에 대한 의미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롤로그는 이윤석이 에필로그는 김정민이 썼는데, 도입부의 글과 마무리의 글이 책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서 여는 맛과 마무리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1장 솔직하게 만들어가는 집
'여지의 여지 '편에서 공간의 여지에 대한 저자의 말에 스며들듯 수긍하게 된다.
넓은 평수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공간의 여지가 그곳에서 사는 이의 생각과 무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영향으로 더 긍정적이고 더 창의적으로 사고가 넓어질 수 있다는 증거처럼 읽혔다.
1인 가구의 최소 주거면적에 대한 논의들을 읽다 보면 자본 또는 경제적 측면으로 해석한 공간의 ‘최소성’은 생활하는 이의 동선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이 느껴졌다. 간혹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이 제품을 디자인 한 이는 이런 제품을 사용해 본 경험이나 동선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일까, 실제 사용하는 경험치가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불편하거나 참신해지는 상반되는 경우 모두 다.

17쪽
‘최소’라는 기준은 작두로 쓰인다. 시대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고안해 낸 극도로 효율적인 평면도를 칼날 삶아 삶의 여지를 도련한다. 시대라는 도곽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삶은 과정일 뿐이라 여기고, 과정이 된 삶들은 아무렇게나 최소로 방치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개념이 다시 정의되고 있는 지금, 어떤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모양은 서서히 청년이라는 틀 안에 박제되고 있다. 박제된 청년은 최소한으로 살아야만 하는, 최소한으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정붙이고 녹붙이고'편의 에피소드도 집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해 준다. 자신의 공간과 물건에 이야기를 만들어서 하나의 역사를 쌓아가는 모습들이 새삼 개인의 역사들이 모여서 시대의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취향’에 대한 김정민의 생각은 취향조차도 자본의 논리로 해석되어 평가하려 하지만, 자기의 솔직함과 생활감이 있는 인테리어가 더 좋은 취향의 인테리어라는 문장에서는 30대의 젊은 건축가의 주체성과 자유로움을 엿본다.
두 저자는 고양이를 기른다는 점과 건축가라는 직업으로 집과 방에 대한 생각과 지금까지의 전월세 이사 여정기를 말하고 있다. 책 집필을 위한 현장조사를 위해 지인들과 관련인들의 실제 살고 있는 집들을 탐방하면서 느끼고 접한 생각들도 실려 있다.

자신의 집이 싫다고 하면서 가는 내내 왜 ‘내 집이 싫은지’를 말하는 이를 통해서 집을 긍정하려고만 했던 이유를 소비가 나를 증명하는 시대인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에 젖어 있음을 말한다. 이 부분에서 또 마주친 것은 자본주의는 소비주의이고 소비가 나를 증명하고 표현하는 시대에 살기에, 나의 소유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 생각하지 않는 지점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곧 자신이 나쁘다는 또는 별 볼일 없다는 표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얼마큼의 소비를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는 문장에 새삼 환기하면서 동의하게 된다.

2장 셋방일지
아파트의 창문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창문으로 인해 계층과 사회적 구분을 읽게 된다. 동일한 크기와 효율성으로 정착한 아파트 창호의 크기의 반대편에 빌라라는 집들의 사회적 불평등과 사용의 풍경을 던져준다. 방범창과 가림막으로 막고 보완해야 하는 빌라들. 이런 논의는 자신의 경험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읽어내고 말하고 기록하면서 건축가로서 어떤 반영과 개선을 할지 궁금해지고 기대된다.
‘뷰’에 관한 논의에서도 자연을 담는 뷰, 경관도 특정 계층이 소유하게 되는 것의 불평등 지적한다. 녹지공간인 공원이나, 경관을 더 많은 계층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도시, 주거지 형성의 중요성을 말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공유하는 자연에 대한 의미를 일깨운다.

집이라고 불리는 많은 집들이 매트리스만으로 인식되는 저자의 프랑스 유학 때의 경험을 제시하면서 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최소의 집에서는 수면과 화장실 사용만이 가능하며 나머지 다른 것들, 주방과 거실의 기능은 축소 또는 축약된 채 최소한의 생활을 하게 되는 점들을 지적한다. 빨래방과 스타벅스의 방문이 일상이 되는 젊은 층의 생활 문화도 이런 주거 형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빨래를 널고 차를 마시고 화분을 키운 베란다의 공간을 갖기 힘든 구조의 주거 형태들이 가져온 공유 공간의 외주화를 만들었다.
‘안행복주택’편지글에서는 정책 입안자의 태도와 정부와 국민이라는 키워드를 들여다보게 한다. 정책이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운용과 실용이 필요한 지점을 집는다.

3장 일상의 발명가들
식탁테리어라는 말은 아마도 저자가 만든 단어가 아닐까 유추해 본다. 혼자 살면서 시작된 식탁인테리어로 식탁에서 사용하는 그릇들을 바뀌거나 모으고, 요리를 하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2장에서 언급되었던 주방 공간의 축약과 축소가 요리라는 행위를 멀게 하고 간단하게 데워먹는 간편식의 식생활을 유도한다. ‘감히, 요리를 해먹어. 그냥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라는 거친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요리는 개인 취향이다. 선호 여부에 따라서 즐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 주거의 구조는 사유의, 사고의 폭도 움츠러들게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기도 하고 실제로 기르는 이들의 집을 탐방한 경험은 건축가로서 집을 설계할 때, 기존의 인간만을 기본으로 한 설계에서 한 걸음 다가가 다양한 형태의 삶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실현성의 싱크로율은 아직 낮겠지만, 다양한 형태의 삶을 상상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현장성이 넓어질 때 주거에 대한 집에 대한 의미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4장 우리를 담을 집
어차피로 만든 세상편에서의 에피소드는 집에 관한 따뜻한 관점의 한 갈래를 마주하게 한다. 평수나 크기로만 말해지는 주거지가 아닌 동네라는 의미로 거주하고 생활했던 곳의 생활정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덕담의 메모, 깨끗한 이사 정리로 입주 청소비를 아낄 수 있고 그런 기분을 전해주고 싶다고 탐방했던 곳의 이야기는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실제 인터뷰라서 감동이 더했다.

전월세 집이라도 사는 동안은 내가 거주하므로 나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은 역설적이듯 하지만 바로 그런 지점을 짚은 것이 아닐까?
벽돌로 쌓은 집과 지푸라기로 엮은 집편의 논의처럼 늑대집만이 안전한 것이 아니라 돼지들의 집은 지푸라기 집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주거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 들어온다. 집안이든 밖이든 안전할 권리가 있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의 흐름은 그저 집에 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고 느낀다.

217~218쪽
도시는 거름망으로 걸러진 사람들끼리 사는 곳이 아니다. 도저히 서로 겹치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사는 곳이다. 이것을 억지로 구분하고 나누려고 한다면 당연히 괴상한 형태로 자라날 수밖에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다름을 계속해서 알아가는 것이지 다름을 계속해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와 성별은 같지만 국적은 달라, 나는 너와 언어는 같지만 피부색은 달라... 이렇게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세계의 크기가 얼마나 협소한지 가늠하게 할 뿐이다.
‘언어’라는 단어를 알았을때, ‘자가 주거’라는 단어를 알았을 때, ‘성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알았을 때마다 우리의 세계는 커지고 있다. 중요한 건 ‘다르게 만드는 것’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감각’을 체화하는 일이다.

즐거운 남의 집

이윤석 외 1명 지음
다산북스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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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어느덧이라는 진부한 말로 시작하는 50대의 그들은 강릉 여행을 통해 각자의 삶에 대한 겹치는 부분과 여전히 가려졌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갑 혹은 같은 또래라는 동질성의 키워드로 들어온 소설의 이야기는 세 명의 친구들이 20대를 지나 50대를 살아왔던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강릉에서, 이곳이 아닌 여행지에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왜 각자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은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여행지일까? 일탈 같기도 하면서 일탈이지 못한 중년이 된 3명의 대학 동창의 그녀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난주, 정은, 미경.
난주는 이른 결혼으로 출산과 육아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빈둥지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정은은 동창인 남편이 코로나로 인하여 퇴직 후 오픈했던 키즈카페의 폐업으로 경제적 파산에 이른 상태로 빚을 갚기 위한 생업전선에서 시달리며 살고 있다.
미경은 아픈 엄마를 홀로 돌보면서 직장인 도서관과 집만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각자의 삶이 녹록지 않다. 오랜 친구라지만 속속들이 드러내지 못하고, 공유하거나 말한 이야기들이 각각이다.

난주의 빈둥지증후군, 남아도는 시간의 공허감, 여성으로서의 성적 박탈감.
정은의 경제적 파탄, 생활고, 빚투를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경제적 상황. 요실금으로 인한 수치심.
미경의 간병 돌봄에 혼자 고립감 속에 지나가는 시간들, 관계들.

세 명의 인물들의 서사를 읽다 보면 50대에 이른 삶의 모습들이 빛나지도 안정되지도 못함을 본다. 나름 노력하면서 시절을 살아온 왔는데, 어쩌다가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다. 시절에 충실했건만, 무엇을 놓치고 살아온 것일까!

가장 측은지심이 느껴진 인물은 미경이다. 동성 연인의 결혼으로 관계가 정리되고, 어머니와의 간병 생활이 시작되고, 자매인 언니의 사라짐, 독박 간병의 고립무원 같은 생활로 이어진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중에서
미경에게는 가족은 있지만 가정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원하지 않을 때 혼자가 되는 건 별로였다. 혼자이고 싶을 때 혼자여야 혼자라는 사실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 엄마가, 집이 그립지 않았다. 그저 그리운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혼자여서 꽉 차는 곳.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자, 결국 거기밖에 없는 곳.


난주가 이른 결혼으로 출산과 육아로 인한 일시적 관계의 단절 이후 기다려준 친구들과 다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장면이 같은 경험이 있기에 공감이 된다.
난주는 입사라는 사회생활 없이 바로 결혼과 출산, 육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생활 패턴은 많은 관계들의 정리와 변화가 오는 시기다. 그때 단절된 관계가 다시 회복될 때 느껴지던 고마움과 왠지 모를 어깃장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정은은 난주가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전업주부의 안락한 삶이라고 자신의 상황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빈둥지증후군과 여성성의 상실로 허한 난주가 사업에 실패한 남편으로 인해 경제적 파산에 이른 정은이나, 독박 간병의 미경보다 누가 누구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세 명의 인물들은 다 각자의 행과 불행을 지고 오십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의 여행지가 강릉인 이유는 각자의 사연들이 있던 곳이었는데, 함께 여행을 하면서 강릉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정의된다. 허난설헌의 이야기가 강릉과 연결되면서 그녀들의 삶과 포개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중에서
그런데 오십대를 앞두고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꾸 지난 생을 되돌아보게 됐다. 50년 동안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았는데, 남은 시간마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로 헛헛했다.

오십이 된다는 것 소설의 문장처럼 지난 생을 되돌아보면서 남은 시간을 그냥 살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고 늙음을 이제 삶의 중심부로 맞아들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십을 앞두고 함께 할 친구들이 있고, 나눌 서사가 있다면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가 어떤 삶이었을지 되새기면서 앞으로의 삶을 안도하면 살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김이설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읽었어요
4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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