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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텍스티(TXTY) 펴냄
읽었어요
밀리의 서재에 단독이라고 올라와 있어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이도우 작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연상되었다. 어른들의 판타지. 장소와 경험에 대한 어른 판타지 동화 같다는 느낌이 왔다. 이 소설 역시 드라마화된다면, 나름 감성 드라마로 어필되지 않을까.
동네 독립서점에 대한 판타지가 이도우의 소설에서 보여줬다면, 이 소설에서는 편지가게라는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과 행위, 펜팔이라는 설정이 감성의 정점으로 이끌고 있다. 실제 존재하는 곳이며, ‘편지 쓰기를 동시대의 문화로 만들기 위한 즐거운 시도’를 하는 곳이라는 소개를 읽고 나니, 더욱 그런 감정이 전이된다.
고교 때 친구들과 방학이면 주고받던 편지와 펜팔을 했던 추억, 아날로그적인 손글씨 편지 쓰기를 했던 학창 시절에서 디지털 시대의 포문을 열어 함께 접했던 세대의 교집학적인 감성들이 편리함과 간편함에 밀려 버렸던 편지 쓰기의 행위를 새삼 환기하게 된다.
효영은 언니 효민의 사기 사건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들과의 불화, 단편영화감독으로서의 데뷔를 포기하고, 자의반 타의 반으로 대학 선배인 선호의 편지가게 글월에 알바로 취직하면서, 현실과 가족으로부터 도피성 자립을 한다.
해피엔딩 혹은 힐링 소설이라고 요즘 이런 경향의 소설들 중 하나로 볼 수 있긴 하다. 어쩌면 너무 예상 가능한 갈등과 화해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서는 '그래도 좋네' 라는 느낌이다.
효영이 글월에서 일하게 되면서 마주치는 인연, 그 인연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자신과 언니와의 관계를,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다. 조금은 뻔한 서사 구조의 소설일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읽고 나서, 따뜻한 한 줌과 글월을 방문하고 다시 편지를 써볼까 하는 마음을 일게 했다. 이런 마음을, 되새기는 생각들을 준 소설이라면, 흔한 결말이라도 괜찮지 아니한가!
소설의 디테일이 좋았던 부분들은 업무일지를 기록하는 효영이 그날의 매출만을 쓴 것이 아니라 손님 수와 그날 매장의 느낌까지 기록한 점, sns를 통한 홍보와 마케팅에 관한 의견을 제안하고 있는 점이 숫자만 적는 차가운 매출매입기입장이 아닌 온기가 한 점 들어 있는 기록으로 다가왔던 점이다. 알바와 사장의 관계가 이리도 갑을이라는 차가움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따뜻함으로 그려진 점도 좋았다.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있을까 하는 현실성은 제쳐두고, 있길 바라는 희망의 느낌으로 선호와 효영의 관계를 본다.
책 속에 등장한 7편의 펜팔 편지가 실제로 글월의 펜팔에서 응모하여 실린 편지라는 점이 독자와 소설가가 함께 만든 협업의 세계를 구축한 점이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원철의 편지를 통해서 반려자에 대한, 곁에 있는 사람과의 일상을 놓치고 사는 일상을 보게 된다. 늘 놓치고 나서,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원철의 편지는 그래서 울림이 있었지 싶다.
효영과 영광의 관계 또한 썸인 듯 아닌 듯 은근하지만 스며드는 만남과 관계의 풍경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진다. 강렬하거나 화려한 혹은 열정적이지 않지만, 서로 창문을 통해서 상대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시작되고, 상대의 깊은 내면의 상처나 치부를 어른이라서 어렴풋이 알지만 쉬이 묻지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순간 다소 충동적인 요청으로 함께 방문한 언니 효민과의 만남과 사건 속에서 그들, 효영과 영광의 관계는 변화되어 간다. 다른 커플의 이야기도 양념처럼 등장했지만, 효영과 영광의 관계가 가장 빛나 보였다. 아마도 드라마화된다면 이 부분이 좀 더 부각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소설에서 보여주는 관계의 진도가 딱 좋다는 생각이 든다.
편지를 주고받는 물리적 관계가 만년필의 잉크가 번지지 않고 말라서 줄 수 있는 거리가 좋다는 말에서, 새삼 편지의 물리적 관계성이 편지 쓰기의 맛을, 행위의 기쁨과 만족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사이에 편지가, 한 집에서 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는 점이 소설 속 대화에서 새삼 일깨우게 되었다.
편지 쓰기를 취향 혹은 문화로 만들려 하는 곳 편지가게 글월이 현실에서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책 속의 문장>
누군가가 건넨 말에 답할 수 있다는 게, 자기만의 대답을 담은 ‘답장’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_햇빛에도 향이 있다
타인의 물건을 똑같이 소중히 여겨 주는 마음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서른이 넘지 못한 효영이었지만 그 마음이 귀한 거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의 옆에 무해하게 남는다는 것이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옆에 있어도 괜찮은 것들은 결국 나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는 것들이었다.
_편지지 위를 걷는 손들
좁은 원룸에 꼭 필요한 물건을 고심해서 채우다 보면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진정으로 필요한 것과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 이런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건 인간에게 꽤 큰 위로가 되었다.
글월에도 종종 편지지 모양이나 무늬, 색 등을 보며 자기 과거를 소환하는 손님들이 있다. 결국 글이라는 건 과거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 한 동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서툴고 부끄러워도 물 한동이를 펴내야 다음 할 말이 차올랐다. 그렇게 과거라는 우물을 정화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볼 줄 알았다.
_과거의 영광
“슬픔을 슬픔에서 멈추지 않고,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멋지지 않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돼. 그럼 좀 더디고 절룩대도 다 제 갈 길 가더라고.”
사랑한다는 건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아낌없이 시선을 보낸다는 뜻이다.
편지라는 건 결국 어느 정도는 물리적인 시공간의 거리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아요. 편지지 위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옆 사람한테 건네는 건 아무래도 멋이 없잖아요.
_에필로그: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감동을 주려 노력했다
결핍은 사랑을 만들고 사랑은 결핍은 껴안아 주지만 그 사이에 ‘주저’하는 마음이 저를 외롭게 할 때가 많거든요
‘그것이 곧 잊혀질 사소한 기억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은 아주 근사한 일이니까요.’
_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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