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님의 프로필 이미지

새벽빛

@saebyeokbit

+ 팔로우
철도원 삼대 (황석영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창비 펴냄

읽었어요
약 620페이지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 속에서 거대한 역사가 파도친다.
한국 근현대 삼대에 이르는 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절대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처우가 지금 와 보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결국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는 작가의 말은 현실보다는 바람에 가까운 말일 터.

긴 세월에 걸쳐 노동자 이야기를 전하다 보면 우울하고, 사상 얘기는 따분하고, 수많은 사건들의 나열은 사건일지처럼 단조롭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할머니들의 옛날이야기들이 흥미를 돋는다. 덩치 크고 기운 좋은 주안댁 큰할머니, 죽은이를 보기도 하고 과거나 앞날을 맞추는 신통방통 신금이 할머니 이야기가 그렇다. 마지막 대에서 굴뚝농성 중에 죽은이들을 불러내어 대화하는 장면들도 흥미롭다. 이런 미신적인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나도모르게 자세를 고쳐잡고 책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고증도 뛰어나고 묘사도 무척 사실적이어서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돼지를 잡는 모습, 기차를 달리게 하는 모습, 고공농성 중 체력을 단련하고 숙식을 해결하는 모습, 오체투지, 고문 방식, 거리 곳곳의 묘사 등등.

다만 조선 해방 이후 복잡한 시절의 이야기들이 요약되어 빠르게 지나간 점이 아쉽다. 이일철의 월북 이후 그의아들 이진오 이야기는 전쟁의 비참함을 잘 알려주는 장이 될 수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략하게 요약하는 정도로만 지나갔다.
그리고 책에선 연락책에 한정되었지만 실제 남성만큼 치열했던 여공들의 노동 운동 이야기도 살려주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랬다면 아마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되었을지도.

그래도 이미 연로하시기에 더 바라면 나의 욕심이겠지. (ㅜ.ㅜ) 부커상이 불발되어 안타깝다. 더 많은 나라의 독자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텐데.


[617쪽 작가의 말:]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 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0

새벽빛님의 다른 게시물

새벽빛님의 프로필 이미지

새벽빛

@saebyeokbit

  • 새벽빛님의 모순 게시물 이미지
가난한 사진작가 김장우와 사랑에 빠진 안진진.
"사랑은 힘이 들어요."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시면 엄마를 폭행했던 이유는 엄마와 안진진과 안진모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니. 그래서 탈출을 꿈꾸었다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런 이유로 덜 사랑한하는 나영규를 선택한다. 나영규처럼 철저한 계획 속에서 살아가는 이모부와 결혼한 이모의 삶이 어떤 줄 알면서도.

안진진의 선택은 옳은가, 그른가?
아마도 이후에 적당히 안정적이고 적당히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영규는 안진진의 가족 문제도 다 감내해 줄 능력이 되니까.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어떻게든 삶에서 자기 영역을 만들어 간다면 가능한 얘기다.

소설의 끝엔 이런 말이 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맺는다.

김장우는 이상, 나영석은 현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글쎄, 상당히 머리 아픈 문제다. <오징어 게임>의 ○X 퀴즈가 떠오르기도.



사랑이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거리에서나, 비어있는 모든 전화기 앞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화의 구속은 점령군의 그것보다 휠씬 집요하다.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란 단 두 가지 종류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혹은 그녀일 것 같고, 오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고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버스에서나 거리에서 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유행가의 가사에 시도 때도 없이 매료당하는 것이다. 특히 슬픈 유행가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의 무늬를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으 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이별을, 그것도 아주 슬픈 이별을 동경한다. 슬픈 사랑의 노래들 중에 명작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가는 차마 이별하지는 못하지만 이별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을 위해 수도 없는 이별을 대신해준다. 유행가는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대물림되는 우리의 유산이다.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취준 그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 10장. 사랑에 관한 세 가지 메모-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한 채 살게 된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무엇이다.
- 11장. 사랑에 관한 네 번째 메모-

모순

양귀자 지음
쓰다 펴냄

읽었어요
2일 전
0
새벽빛님의 프로필 이미지

새벽빛

@saebyeokbit

청소년과 사회 초년생이읽으면 좋은 책.
얼마나 열심히 살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알겠다.
장마다 열정적인 작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작가의 진심이 가득해서 따르지 않으면 혼날 거 같다.
특히 업무용 메일 보내는 방법은 진짜 유용함.
문제는 실천!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정문정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0
새벽빛님의 프로필 이미지

새벽빛

@saebyeokbit

매력적인 두 주인공, 공상수와 박경애가 있다.

공상수는 자신도 아픔이 많은 인간인데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해 주는 '언니'이며, 팀원인 경애의 마음도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싶어 한다. 그런 상수가 경애에게 이렇게 메일을 쓴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체념적이었던 경애는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을 그저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작중에 1999년 10월 동인천 인현동 화재사건이 중요하게 언급된다. 상수와 경애의 친구가 그날 희생됐으며 각자 슬픔을 혼자서만 끌어안고 여지껏 살아왔는데 그때의 일을 얘기하며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올 한 해, 겪고 싶지 읺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오늘 무안공항 비행기 불시착 사건은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만큼 충격적이었고 슬펐다. 상수와 경애처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상처가 나아지는 걸까. 어떤 얘기들을 주고받아야 나아지는 걸까. 어떤 행동을 해야 나아지는 걸까. 모르겠다.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창비 펴냄

1주 전
0

새벽빛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