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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지음
민음사 펴냄

책임은 온전히 해리엇의 것이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듯, 누구도 벤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남편인 데이비드조차 점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이들도 벤을 제 형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벤의 일탈은 점점 거세지고 마침내 범죄에 이르게 된다. 해리엇은 그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모두는 마치 벤이 제 가족이며 이웃이 아닌 양 모른척한다.

도리스 레싱은 어느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채 아이에 대한 온갖 환상을 하나씩 깨뜨린다. 남과 다른 한 아이가 완전해 보였던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내보인다. 굳건해 보였던 관계가 무너지고 모든 부담이 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상황의 부조리함을 그려낸다. 어머니조차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 앞에서 독자들은 저도 모르는 채 외면하거나, 비난하거나, 제 일이 아닌 것에 안도한다. 어쩌면 이 상황의 부조리함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엔 남과 다른 많은 아이가 있다. 학업 능력이 뒤처지는 아이, 일탈하는 아이, 어쩌면 선하지 않은 아이, 아예 악하다고 부를 수 있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그런 아이를 대할 때 너무나 쉽게 그의 환경이며 가정이며 부모를 탓하는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 하지조차 않으면서 말이다.

오늘 한국에 '다섯째 아이'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또 절망하는 해리엇과 외면하는 데이비드는 얼마나 많을지를. 때로 공포스럽고 당해낼 수 없어 보이는 진실을 그러나 우리는 마주해야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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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기업 아마존을 중심으로 전 세계 온라인 쇼핑판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짚어내는 책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미래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고개를 치켜드는 기술과 그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는 쇼핑생태계의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모색한다. 특히 아무리 대단한 혁신이 이뤄진다 해도 플랫폼에 올라탄 구멍가게 신세를 벗기 어려운 대다수 리테일, 즉 군소 유통업자들의 설 자리가 급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마존이 입점 리테일러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단 사실은 그들의 독점적 지위가 강해질수록 리테일러들이 받는 압박 또한 커져온 지난 시간이 증명한다. 책이 적고 있는 구체적 사례는 소비자가 그저 눈앞의 편의만을 좇는 게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일이 아닌가를 의심케 한다. 이쯤이면 저자가 책에 '온라인 쇼핑의 종말'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것도 같다.

온라인 쇼핑의 종말

바이난트 용건 지음
지식노마드 펴냄

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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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은 있되 의도는 알 수 없는, 무엇을 안다고 해도 그 가치를 따져볼 수 없는 모호한 결말 뒤로 포세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이 따라붙는다. 나는 앞에 실린 작품 <샤이닝>보다도 뒤에 굳이 연설문을 붙인 문학동네의 감각에 감탄한다.

연설문 가운데 각별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건 그가 저의 첫 작품, 참담하게 실패한 데다 혹평까지 받은 <레드, 블랙>을 언급할 때다.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포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나 자신만을 믿고 나만의 것을 고수하리라 결심'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품은 평단에 의해 발굴되고 주목받는다. 이때도 그는 생각한다. '내 작품을 향한 혹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순풍에도 몸을 맡기지 않고 오직 나만의 글을 쓰는 데 전념해야 한다는 초기의 결심을 고수'해야겠다고.

그는 노벨상 수상 뒤에도 이 결심을 변치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와 같은 태도가 포세의 오늘을 만들었다 믿는다. 이 결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훨씬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가 되었거나, 아예 글을 쓰지 않는 이가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충실한 작가, 세상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이. 그런 태도가 누구와도 다른 저만의 작품을 쓰도록 한다. 욘 포세의 소설에 대한 호오판단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작품을 써나가는 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샤이닝

욘 포세 지음
문학동네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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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화부, 책 담당 기자로만 20년 근속한 곽아람의 에세이다. 펜기자, 또 첫손 꼽는 보수매체 기자가 제 업의 면면을 소개한다. 글 쓰는 이라면 한 번쯤 선망했을 기자란 직업, 그중에서도 책을 다루는 기자의 관심과 고충을 읽는 과정이 흥미롭다.

서평가, 기자, 또 글쟁이로 일하며 책을 다루는 기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아는 것과 상당히 다른 문화부 기자의 삶을 말하니 나는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지, 그가 거짓과 과장을 일삼는 건지를 감히 장담치 못하겠다. 재미의 상당부분이 이 지점에서 유래했단 건 내가 악취미를 가진 독자인 탓일까. 새삼 반성하게도 된다.

지난 십수 년간 '북스' 코너를 읽어본 날이 제법 있었다. 출판사의 홍보글을 그대로 옮겨적는 수많은 매체 책 소개기사 사이에서 그래도 조금은 저만의 색깔이 있는 소개를 해나가는 매체라고 여겼던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곽아람의 기사를 좋게 본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는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 이 책이 이룬 공이다.

쓰는 직업

곽아람 지음
마음산책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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