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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 지음
민음사 펴냄

책임은 온전히 해리엇의 것이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듯, 누구도 벤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남편인 데이비드조차 점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난다. 아이들도 벤을 제 형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벤의 일탈은 점점 거세지고 마침내 범죄에 이르게 된다. 해리엇은 그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모두는 마치 벤이 제 가족이며 이웃이 아닌 양 모른척한다.

도리스 레싱은 어느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채 아이에 대한 온갖 환상을 하나씩 깨뜨린다. 남과 다른 한 아이가 완전해 보였던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내보인다. 굳건해 보였던 관계가 무너지고 모든 부담이 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상황의 부조리함을 그려낸다. 어머니조차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 앞에서 독자들은 저도 모르는 채 외면하거나, 비난하거나, 제 일이 아닌 것에 안도한다. 어쩌면 이 상황의 부조리함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상엔 남과 다른 많은 아이가 있다. 학업 능력이 뒤처지는 아이, 일탈하는 아이, 어쩌면 선하지 않은 아이, 아예 악하다고 부를 수 있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그런 아이를 대할 때 너무나 쉽게 그의 환경이며 가정이며 부모를 탓하는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 하지조차 않으면서 말이다.

오늘 한국에 '다섯째 아이'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또 절망하는 해리엇과 외면하는 데이비드는 얼마나 많을지를. 때로 공포스럽고 당해낼 수 없어 보이는 진실을 그러나 우리는 마주해야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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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도입을 가졌다 했다. 그런 평을 듣는 작품이 제법 있지만 솔직히 동의한 적은 없었다. 유명세가 평범한 문장조차 유명하게 하였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명문이었다. 그것도 대단한. 첫 문장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있고, 주인공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꽤나 노력을 들여 옮겨왔음을 알린다. 처음이 수평이었다면 다음은 수직, 밑바닥부터 것도 밤의 밑바닥부터 제 색을 발한다. 다음 문장에 이르러 이야기는 본격 막을 올린다. 이보다 완전한 세 문장이 또 있을까.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전한 균형. 이를 가리켜 일본문학의 정수라 한 말이 틀리지가 않다.

그러나 뒤는 오로지 이 세 문장이 쌓은 공으로 과대평가되었다. 그럴 법한 일이다. 나 또한 이 허랑한 소설을 첫 세 문장을 쓴 이의 작품이라 믿을 수 없었으니.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민음사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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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걸어온 길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대하는 시각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기자 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기자 또한 길러내는 것이다.

저널리즘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겐 실망이 따를 수도 있겠다. 다루고 있는 많은 주제가 어떤 관점에선 흔한 것이고, 다루는 시각 또한 새롭지는 않다. 인용한 여러 서적을 고려하면 과연 이 정도 문제의식을 위하여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그와 같은 쉬운 평가가 나올 법도 하다.

왜 김애란이 '추천의 말'에서 다 아는 말을 전하는 일의 미덕을 거론했는지 알겠다. 내게는 아니었지만 다른 누구에겐 좋은 독서일 수도 있으리라고, 그런 생각에 이르렀으니.

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낮은산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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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표현하는 김나리의 글 가운데서 한국의 오늘이 읽힌다. 독일에선 자연스러운 것이 한국에선 그렇지 않을 때다.

글로써 뒤따른 저자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부모의 이혼, 십대 학창 시절부터 홀로 꾸려나가야 했던 삶, 가난이 가난인 줄도 몰랐던 오랜 시간들, 다른 성적 지향으로 고통 받아야 했던 나날까지가 버겁게 다가선다.

그러나 그는 제 고통을 등짝에 진 채로 한걸음씩 나아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글에선 제 삶을 지탱한 어른만의 기개가, 끝나지 않은 삶을 기꺼이 마주하는 이의 진취성이 읽힌다. 그리하여 나는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다는 김나리의 말에 공감한다. 납작하지 않다. 이런 삶은 납작할 수가 없다.

흔해빠진 납작한 인간들 사이에서 납작하지 않은 인간이 저기 하나쯤 더 있구나. 그런 감상만으로도, 내게는 가치가 없지 않았다.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

김나리 지음
책나물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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