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프로필 이미지

:)

@eudaimoniaaa

+ 팔로우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의 표지 이미지

적을수록 풍요롭다

제이슨 히켈 (지은이), 김현우, 민정희 (옮긴이) 지음
창비 펴냄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었던 폭력의 순간들을 단지 일탈로 경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순간들은 자본주의의 기반이다. 자본주의하에서 성장은 새로운 개척지를 필요로 하며 늘상 개척지로부터 가치를 뽑아내고는 가치에 대한 지불은 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식민주의적이다.'
처음 읽을 때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식민지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착취가 재산이 되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파괴가 신산업이 된다는 것을.
'남반구의 기후 붕괴로 인한 트라우마는 식민통치로 인한 트라우마와 맥을 같이한다. 남반구는 두번이나 고통을 겪었다. 첫번 째는 북반구의 산업 성장을 촉진했던 자원과 노동력의 착취였다. 이제는 북반구의 산업에서 나온 배출로 대기 커먼즈가 전유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분석하면서 식민주의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는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원자재 개발로 지구 곳곳을 뚫어대고 있는 현상을 보면 어쩌면 인간은 크게 성장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이상적으로 성장했더라면 결과까지 생각하고 행동할텐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와 우주개발을 꿈꾸고 있지만 이 또한 새로운 파괴를 만들어 낼뿐이다.
’100퍼센트 청정에너지 시스템을 갖춘다면 우리는 그 에너지로 무엇을 할까? 우리가 화석연료로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할 것이다. 숲을 더 많이 파괴하고,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더 많이 잡고, 더 많은 산을 채굴하고, 도로를 더 많이 걸설하고, 산업형 농장을 확장하고, 더 많은 쓰레기를 매립지에 보낸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이 국면을 타개할 정책들을 쏟아놓곤 한다. 언제까지 고성장 시대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미 이룬 성장에서 분배하며 사는 삶도 있는데 말이다. 성장과 개발만이 인류의 목적인 것처럼 살아간다. 탈성장은 게으르고 안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GDP를 줄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불평등의 균형을 찾고, 소득과 자원을 배분하며, 불필요한 노동에서 해방하며, 공공재에 투자하는 것이 탈성장에 관한 것이다.
2

:)님의 다른 게시물

:)님의 프로필 이미지

:)

@eudaimoniaaa

“곤충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 인간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극은 인간존재와 무섭게 닮아 있는 곤충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들을 보여 주며 진행된다. 무가치한 똥에 일생의 욕망을 투자하는 쇠똥구리들과 타자의 목숨을 빨아 부와 권력을 누리는 피범벅의 맵시벌이 있는가 하면, 무책임한 성적 놀음으로 청춘을 탕진하고 문학과 시인을 패러디하며 능욕하는 나비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과학으로 무장하고 종족 학살을 위해 구령에 맞춰 전진하는 전쟁 중독자 개미들이 있다. 차페크의 벌레들은 혐오스럽고 치졸하지만 속속들이 인간적이다. 그들의 욕망과 잔악한 악행들은 곧 흉측하게 일그러진 인류의 초상이다. 다만 카프카와 달리 차페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 속에서 위기를 맞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찬란히 불타고 삶의 끝맺는 하루살이들의 아름다움과 같다는, 휘발성 그 자체의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한다. 금세 사그라지는 것, 너무나 힘없이 짓밟히고 피 흘리는 것,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나 짧고 어리석은 존재, 이 유한성과 한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을 흥미롭고 신비스럽게 한다. “

곤충 극장

카렐 차페크 (지은이), 김선형 (옮긴이) 지음
열린책들 펴냄

4일 전
0
:)님의 프로필 이미지

:)

@eudaimoniaaa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작은정부, 규제완화 등 자유시장의 모토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딱 한번 사용하였고, 그 의미는 완전한 자유시장 체제의 이상적인 세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상적인 세상이라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이익을 추구하여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의미했다. 하지만 이후 보수 경제학자들은 국부론에서 본인의 입맛에 맞는 내용들만 발췌하여 사용하면서 규제 없는 자본 시장을 주장했고, 아담 스미스는 그렇게 자본주의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 아담 스미스가 내가 알고 있던 아담 스미스이다. 오해하고 있어서 죄송한 마음뿐이다. 아담 스미스의 이상은 인간의 도덕적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시장체제였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덕적 범위란 존재할까. 이 시대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아담 스미스가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직도 복지와 성장이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경제 공부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다같이 잘 사는 게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수요 없는 공급은 결국 공황이다. 또한 복지는 단순히 약자를 돕는 것을 넘어서 창의성과 국가의 미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배려와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에서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사회에 대한 이해와 공부라고 생각한다. 경제에 국한된 공부가 아닌 국제, 사회, 정치, 복지, 문화 등 우리 생활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자본가, 은행, 정부를 위한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의 혜택은 이제 99%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때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그 강력한 성장엔진을 우리 모두를 위해 나누어 써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EBS 자본주의 제작팀 지음
가나출판사 펴냄

6일 전
2
:)님의 프로필 이미지

:)

@eudaimoniaaa

개똥 밭에 굴러도 지구 🌏

구르브 연락 없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민음사 펴냄

2주 전
0

:)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