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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세계사 펴냄

낭만과 현실이 수시로 엇갈리는 가운데 변치 않는 순수를 간직한 현보가 어느 순간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기까지 나는 봄 같은 소녀에서 여름 같은 처녀를 지나 깊은 가을 낙엽 떨어지는 시절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제가 자리를 마련해준 옆집 아이는 미군 병사들의 애를 여러 차례 뗀 양공주가 되어버리고, 가혹한 시선을 견디다가 마침내는 미국으로 훌쩍 떠난 뒤 또 악착같이 제 조카들을 한국인과만 결혼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소설 속 집은 사대문 안 기풍 있는 기와집과 신발을 벗지 않고 부엌으로 갈 수 있는 일본식 적산가옥, 공간이 비할 바 없이 넓게 빠진 신형 양옥들로 변화한다. 재산은 막힘없이 불어나고 돈보다도 다른 무엇들이 훨씬 빨리 몸집을 불리는 풍요의 시대가 이어진다. 급변하는 시대상 가운데 사람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며 마음가짐 또한 변해간다. 보는 위치가, 관점이 달라지고 그로부터 태도며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녀의 작품이 인간과 삶의 본질을 슬며시 건든다고 이야기한다. 본질이란 시간이 지난다 해도 변치 않는 무엇이고, 바로 그것이 이 소설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를 특별하게 담아낸 이유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한다 해도 결코 변치 않는 것이 몇 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 그에 대한 답을 독자들은 이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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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기업 아마존을 중심으로 전 세계 온라인 쇼핑판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짚어내는 책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미래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고개를 치켜드는 기술과 그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는 쇼핑생태계의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모색한다. 특히 아무리 대단한 혁신이 이뤄진다 해도 플랫폼에 올라탄 구멍가게 신세를 벗기 어려운 대다수 리테일, 즉 군소 유통업자들의 설 자리가 급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마존이 입점 리테일러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단 사실은 그들의 독점적 지위가 강해질수록 리테일러들이 받는 압박 또한 커져온 지난 시간이 증명한다. 책이 적고 있는 구체적 사례는 소비자가 그저 눈앞의 편의만을 좇는 게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일이 아닌가를 의심케 한다. 이쯤이면 저자가 책에 '온라인 쇼핑의 종말'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것도 같다.

온라인 쇼핑의 종말

바이난트 용건 지음
지식노마드 펴냄

1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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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은 있되 의도는 알 수 없는, 무엇을 안다고 해도 그 가치를 따져볼 수 없는 모호한 결말 뒤로 포세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이 따라붙는다. 나는 앞에 실린 작품 <샤이닝>보다도 뒤에 굳이 연설문을 붙인 문학동네의 감각에 감탄한다.

연설문 가운데 각별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건 그가 저의 첫 작품, 참담하게 실패한 데다 혹평까지 받은 <레드, 블랙>을 언급할 때다.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포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나 자신만을 믿고 나만의 것을 고수하리라 결심'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품은 평단에 의해 발굴되고 주목받는다. 이때도 그는 생각한다. '내 작품을 향한 혹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순풍에도 몸을 맡기지 않고 오직 나만의 글을 쓰는 데 전념해야 한다는 초기의 결심을 고수'해야겠다고.

그는 노벨상 수상 뒤에도 이 결심을 변치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와 같은 태도가 포세의 오늘을 만들었다 믿는다. 이 결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훨씬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가 되었거나, 아예 글을 쓰지 않는 이가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충실한 작가, 세상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이. 그런 태도가 누구와도 다른 저만의 작품을 쓰도록 한다. 욘 포세의 소설에 대한 호오판단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작품을 써나가는 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샤이닝

욘 포세 지음
문학동네 펴냄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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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화부, 책 담당 기자로만 20년 근속한 곽아람의 에세이다. 펜기자, 또 첫손 꼽는 보수매체 기자가 제 업의 면면을 소개한다. 글 쓰는 이라면 한 번쯤 선망했을 기자란 직업, 그중에서도 책을 다루는 기자의 관심과 고충을 읽는 과정이 흥미롭다.

서평가, 기자, 또 글쟁이로 일하며 책을 다루는 기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아는 것과 상당히 다른 문화부 기자의 삶을 말하니 나는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지, 그가 거짓과 과장을 일삼는 건지를 감히 장담치 못하겠다. 재미의 상당부분이 이 지점에서 유래했단 건 내가 악취미를 가진 독자인 탓일까. 새삼 반성하게도 된다.

지난 십수 년간 '북스' 코너를 읽어본 날이 제법 있었다. 출판사의 홍보글을 그대로 옮겨적는 수많은 매체 책 소개기사 사이에서 그래도 조금은 저만의 색깔이 있는 소개를 해나가는 매체라고 여겼던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곽아람의 기사를 좋게 본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는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 이 책이 이룬 공이다.

쓰는 직업

곽아람 지음
마음산책 펴냄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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