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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문학동네 펴냄

고통과 두려움만이 가득해 보이는 파멸 이후의 세계에 아직 어린 아들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부성애라기보다는 일종의 원초적인 죄책감에 가까울 듯하다.

파멸과 재앙, 그 자체보다 그 이후 생명력을 잃어버린 흑백의 세계를 그려낸 코맥 매카시의 상상력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소설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들과 서로를 약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애쓰는 선한 부자를 그린다. 아버지는 아들이 있어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있어 살아낼 수 있었던 그들.

혼자가 아니기에, 지키고 돌봐야 할 타인이 있기에, 그 미약하면서도 거대한 체온이 있어 이 식어버린 지구에서도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진지하고 담담한 드라마는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 때문인지, 작품 자체의 한계 때문인지 베스트셀러치고는 대중 일반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크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닌 작품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저 파괴된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문법까지 의도적으로 파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지만. 추가로 소설 속 유일하게 선명한 색채로 읽혔던, 아들이 코카콜라를 마시던 장면은 각별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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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걸어온 길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대하는 시각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기자 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기자 또한 길러내는 것이다.

저널리즘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겐 실망이 따를 수도 있겠다. 다루고 있는 많은 주제가 어떤 관점에선 흔한 것이고, 다루는 시각 또한 새롭지는 않다. 인용한 여러 서적을 고려하면 과연 이 정도 문제의식을 위하여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그와 같은 쉬운 평가가 나올 법도 하다.

왜 김애란이 '추천의 말'에서 다 아는 말을 전하는 일의 미덕을 거론했는지 알겠다. 내게는 아니었지만 다른 누구에겐 좋은 독서일 수도 있으리라고, 그런 생각에 이르렀으니.

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낮은산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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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표현하는 김나리의 글 가운데서 한국의 오늘이 읽힌다. 독일에선 자연스러운 것이 한국에선 그렇지 않을 때다.

글로써 뒤따른 저자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부모의 이혼, 십대 학창 시절부터 홀로 꾸려나가야 했던 삶, 가난이 가난인 줄도 몰랐던 오랜 시간들, 다른 성적 지향으로 고통 받아야 했던 나날까지가 버겁게 다가선다.

그러나 그는 제 고통을 등짝에 진 채로 한걸음씩 나아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글에선 제 삶을 지탱한 어른만의 기개가, 끝나지 않은 삶을 기꺼이 마주하는 이의 진취성이 읽힌다. 그리하여 나는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다는 김나리의 말에 공감한다. 납작하지 않다. 이런 삶은 납작할 수가 없다.

흔해빠진 납작한 인간들 사이에서 납작하지 않은 인간이 저기 하나쯤 더 있구나. 그런 감상만으로도, 내게는 가치가 없지 않았다.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

김나리 지음
책나물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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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였고, 보좌관이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황보람의 기록이다. 수시로 소속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가리키는 '저니맨'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명함을 가졌다가 놓아버린(때로는 잃어버린) 작가 자신의 '저니' 이야기를 담았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써내려간 저니의 어느 순간에 저 유명했던 전시의 뒷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부당함을 목도하면서도 그저 침묵했던 나를 반성한다. 책임 있는 이들의 비겁과 무지성적인 비판 가운데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던 귀한 이가 무릎 꿇고 마음을 다치는 과정이 안쓰럽게 보인다.

다만 <황보람의 저니>를 훌륭한 책이라고 추천하긴 민망한 구석이 있다. 저니맨이란 성격과 꼭 맞게 실린 글들이 응집력 있게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대목이 있었단 건 기록할 만하다.

개중에선 아직 아물었다 할 수 없는 상처와, 그리하여 충분히 깊이 열고 따져볼 수 없었던 기억들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어느 기자, 또 보좌관의 절실한 발버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황보람의 저니

황보람 지음
편않 펴냄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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