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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의 표지 이미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

인간으로서 결코 침해당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권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있다. 생명과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생명과 자유를 기본적 권리로 규정하고 구체화하여 이 중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설령 그것이 공동체의 이익과 충돌한다 할지라도 훼손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덕분에 민주주의 국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틀을 어느정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사회계약론에 기초한 개념이기에 사회계약에 참여하지 않은, 즉 사회공동체의 바깥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 있는 한 사람이 먹지 못해 심각한 기아에 처해있다면 나라가 거두어서 그를 먹여야 할 것이지만 저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한 사람이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그 누구도 나설 의무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선진국으로부터 시혜적인 도움이 베풀어질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책임은 외부의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공리주의는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는 우리와 연관된 외부적인 요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종일 일하는 이들이 가난을 면치 못하는 데는 국제사회의 식량가격 조정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대체 상품을 수입하는 국가의 정책, 그리고 이를 강요하는 기업의 존재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그들의 국가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은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을 짚어나간다. 책은 먼저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가 굶주림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아프리카 외에도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동유럽 등지에서 살고 있는 도합 8억 28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만성 영양실조 및 심각한 기아상태에 처해 비타민A 결핍으로 인한 시각장애와 구루병, 뇌기능 장애 등으로 고통 속에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인류가 이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한 식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과 그에 따른 기술 혁신으로 다른 분야에서처럼 농업분야의 생산성도 눈부시게 향상되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FAO의 1984년 통계에 따르면 120억의 인구까지도) 충분히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식량 생산량이 달성되었음에도 여전히 지구에는 기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아 문제가 단순히 생산성과 결부된 것이 아니라 어떤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전쟁과 환경문제, 국제식량가격 형성과정의 부조리, 여러 나라들의 이기주의 같은 문제들 때문에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 상황을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모든 문제들은 매우 강렬한 사례들을 통해서 지지되고 있지만 동시에 복합적이고 미묘한 성격의 것들이어서 서로 간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에필로그에 이르러 저자는 기아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영역의문제가 되었으며 그 배후에는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과 시장원리주의가 있다고 규정짓고 이를 세차게 비판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세계여론의 연대의식 형성과 경제지배자들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같은 결론이 다소 빈약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제안한 대안 없이는 기아의 극복 역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또 기아의 극복을 위해서 그 배후에 감춰진 진실과 거대한 위선을 모두가 알아야만 하기에 이 책이 나름의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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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은 있되 의도는 알 수 없는, 무엇을 안다고 해도 그 가치를 따져볼 수 없는 모호한 결말 뒤로 포세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이 따라붙는다. 나는 앞에 실린 작품 <샤이닝>보다도 뒤에 굳이 연설문을 붙인 문학동네의 감각에 감탄한다.

연설문 가운데 각별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건 그가 저의 첫 작품, 참담하게 실패한 데다 혹평까지 받은 <레드, 블랙>을 언급할 때다.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포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나 자신만을 믿고 나만의 것을 고수하리라 결심'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품은 평단에 의해 발굴되고 주목받는다. 이때도 그는 생각한다. '내 작품을 향한 혹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순풍에도 몸을 맡기지 않고 오직 나만의 글을 쓰는 데 전념해야 한다는 초기의 결심을 고수'해야겠다고.

그는 노벨상 수상 뒤에도 이 결심을 변치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와 같은 태도가 포세의 오늘을 만들었다 믿는다. 이 결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훨씬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가 되었거나, 아예 글을 쓰지 않는 이가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충실한 작가, 세상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이. 그런 태도가 누구와도 다른 저만의 작품을 쓰도록 한다. 욘 포세의 소설에 대한 호오판단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작품을 써나가는 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샤이닝

욘 포세 지음
문학동네 펴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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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화부, 책 담당 기자로만 20년 근속한 곽아람의 에세이다. 펜기자, 또 첫손 꼽는 보수매체 기자가 제 업의 면면을 소개한다. 글 쓰는 이라면 한 번쯤 선망했을 기자란 직업, 그중에서도 책을 다루는 기자의 관심과 고충을 읽는 과정이 흥미롭다.

서평가, 기자, 또 글쟁이로 일하며 책을 다루는 기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아는 것과 상당히 다른 문화부 기자의 삶을 말하니 나는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지, 그가 거짓과 과장을 일삼는 건지를 감히 장담치 못하겠다. 재미의 상당부분이 이 지점에서 유래했단 건 내가 악취미를 가진 독자인 탓일까. 새삼 반성하게도 된다.

지난 십수 년간 '북스' 코너를 읽어본 날이 제법 있었다. 출판사의 홍보글을 그대로 옮겨적는 수많은 매체 책 소개기사 사이에서 그래도 조금은 저만의 색깔이 있는 소개를 해나가는 매체라고 여겼던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곽아람의 기사를 좋게 본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는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 이 책이 이룬 공이다.

쓰는 직업

곽아람 지음
마음산책 펴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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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도입을 가졌다 했다. 그런 평을 듣는 작품이 제법 있지만 솔직히 동의한 적은 없었다. 유명세가 평범한 문장조차 유명하게 하였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명문이었다. 그것도 대단한. 첫 문장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있고, 주인공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꽤나 노력을 들여 옮겨왔음을 알린다. 처음이 수평이었다면 다음은 수직, 밑바닥부터 것도 밤의 밑바닥부터 제 색을 발한다. 다음 문장에 이르러 이야기는 본격 막을 올린다. 이보다 완전한 세 문장이 또 있을까. 덜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전한 균형. 이를 가리켜 일본문학의 정수라 한 말이 틀리지가 않다.

그러나 뒤는 오로지 이 세 문장이 쌓은 공으로 과대평가되었다. 그럴 법한 일이다. 나 또한 이 허랑한 소설을 첫 세 문장을 쓴 이의 작품이라 믿을 수 없었으니.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민음사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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