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문학작품을 읽다 보니 번역가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문장이 좋은 외국 소설을 원문으로 읽으면 얼마나 더 멋질까 해서 원문으로 된 책도 읽어 봤다. 그러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시리즈가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음을 핑계 삼아 직접 번역에 도전해 보았다.
직접 해 보니 만만치가 않다. 영어 문장은 뭐 이리 길이가 긴지, 그리고 따옴표마다 누가 말했고 물었는지 대사마다 언급돼 있고, 'he'나 ''she' 같은 인칭대명사도 그대로 매번 해석하자니 가독성이 영 떨어지는 이상한 글이 되는 것 같았다. 제대로 잘 해 보고 싶은 맘에 '번역'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었다.
황석희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
이런, 황석희는 알아주는 영화들을 번역한 사람이었다. 글 아니고 영상을. 그리고 유명한데 나만 몰랐던 것 같아 괜히 부끄러웠다.
책엔 번역보다는 번역가로서의 일상에 관한 내용이 더 많았다. 원래 번역에 대해 궁금했던 부분은 답을 구할 수 없었지만 번역가라는 직업은 어떤 것인가 엿볼 수 있었다. 가벼운 일기 같은 화제로 시작하더니 점차 무거워져서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며 읽었다.
드라마 <런 온>일화가 인상 깊었다. 극 중 번역가 역할을 했던 신세경 대사에 이런 게 있었다고 한다.
"뭔가 부자 된 기분 들거든요. 내가 어떤 한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해해서 세상에 알려주는 그 기분이... 손에 뭔가 가득 쥐고 있는 기분? 내가 뭘 되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 꼭 부자 된 기분이더라더요 "
이런 행복감이라면 세상 어떤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온다 해도 다 마다할 것 같다.
비록 혼자 하는 번역이긴 하지만 나도 번역이라는 걸 시작하면서 새로운 범주의 일이 생긴 것 같다.
'힘든데 해야 하는 일'과 '쉽고 하고 싶은 일'이라는 기존의 두 범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새로운 범주의 일은 '힘들지만 꼭 하고 싶은 일'.
그 외에 오역, 맞춤법, 유행어, 비평 등등 번역 작업에 대한 글쓴이의 기준이나 철학에 대한 이야기들도 좋았고 아버지와의 일화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