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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욱의 회복 또한 아무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건강을 되찾았을 때 욱에게는 앞으로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신의 육체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고 앞날을 위해 저축을 하고 생활을 구축하는 동안 욱은 모든 것을 바쳐 질병과 싸워야 했다. 그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었고 욱은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했다고해서 긴 절망과 고통의 기억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승리는 욱에게 외로움만을 남겨주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긴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욱을 떠났다. 욱의 곁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그리고 심지어 욱의 곁을 계속 지킨 사람들도, 욱이 겪은 것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욱의 투병과 회복을 경험할 수 없었으므로 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신체의 감각과 기능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육체가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를 언어 혹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는 있으니 인간은 오랫동안 그렇게 전달하고 소통하고 공유하려 애썼으나 그 어떤 표현의 방식도 결국은 불충분하다. 완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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