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한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전에 먼저 마셔보라구. 우리들이 하려는 일이 무언지 위스키를 마셔보면 알 수 있으니까."
분명 라프로익에는 라프로익만의 맛이 있었다. 10년 된 위스키에는 그것만이 가지는 완고한 맛이 있었고, 15년 된 위스키에는 15년 동안 숙성된 완고한 맛이 있었다. 모두 다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경박한 알랑거림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문장으로 치자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기작에서 볼 수 있는, 예리하고 절제된 문체와도 같다. 화려한 문체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지만, 진실의 한 측면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누구의 흉내도 내지 않는다. 술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 또렷이 드러난다. 음악으로 말하면, 조니 그리핀이 참여한 셀로니어스 몽크의 4중주. 15년 된 위스키는 존 콜트레인이 참여한 셀로니어스 몽크의 4중주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둘 다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훌륭하다.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기호가 달라질 따름이다.
"어느 한쪽이 좋다고 할 수는 없겠는데. 둘 다 맛이 훌륭해. 저마다의 성격이 palpable한걸(또렷이 느껴지는걸)" 하고 나는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이안이 처음으로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머리로만 이러니저러니 생각해선 안 되는 거야. 이런저런 설명은 필요없어. 가격도 상관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싱글 몰트는 햇수가 오래될수록 맛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거든. 증류를 해서 더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덜해지는 것도 있어. 그건 다만 개성의 차이에 지나지 않아."
이야기는 거기서 끝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철학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이윤정 (옮긴이),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지음
문학사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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