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우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정아은 지음
마름모 펴냄
읽었어요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정아은 작가가 등단 이후 10년 동안 작가로서 살면서 글쓰기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실제의 경험을 함께 엮은 에세이다.
작가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먼저 읽었는데, 동년배에 글 쓰는 여성이면서 엄마이기도 한 작가의 정체성에, 당시 육아의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릴 때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과 궁금증으로 작가의 독서 에세이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후에 등단작인 ‘모던 하트’는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세태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1,2부는 쓰기의 기술 즉 작법서로 작가 자신의 글 쓰는 방법에 대해 3,4부는 글 쓰는 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1장 어떻게 시작하는가
24쪽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과한 욕심을 낳는다. 어떤 욕심인가? 여러 번의 퇴고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을 처음부터 통째로 거머쥐겠다는 불가능한 욕심이다. 세상에 단번에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있겠는가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일시적으로 존재하다 사라질 어설픈 가건물을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의 건물을 만들겠다는 불가능한 소망이다.
; 첫 장부터 쓰는 자의 마음을 간파한 문장들로 시작한다.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하고 왜 그런 심리상태가 시작되고 흐르는지를 너무 잘 집어서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잘 쓰지 않겠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끝까지 쓰겠다.’라는 작가의 말이 그냥 들리지 않는다. 끝까지 쓰는 용기의 정여울 작가의 책도 떠오르고 많은 작가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끝까지, 매일, 일정 시간을 앉아서 쓰려는 의지와 루틴을 만들어가는 직업적 태도와 실천의 무게감이 더없이 인정된다.
31쪽
글쓰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글 쓰는 주체의 개인적 특성을 잘 드러냈느냐가 관건일 뿐, 정답 같은 건 꿈에서조차 있을 수 없는 것이 글쓰기라는 장르의 본질이다. 인문학 강연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사람’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파고들어도 파고들어도 파악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의 마음을 파헤치는 데 정답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한순간도 ‘인문학’이라 불려선 안 될 것이다. 요컨대 글쓰기와 인문학은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문화유산 가운데 ‘정답’과 가장 거리가 먼 장르일 것이다.
;흔히 정답의 유무에 따라서, 이과형 문과형 유형의 사람으로 분류해 말하곤 한다. 작가의 말처럼 정답이 없는 글쓰기의 장르적 특성에도 글을 쓰기 시작하는 초반부에는 어떤 정답을 찾아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에 대해서 가차없는, 그런 한편으로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집어서 이야기를 해 주는 작가의 말이 쏙쏙 들린다.
33~34쪽
왜 자꾸 잘 쓰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는지 이렇게 길게 설명한 것은, 그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해해 보여줌으로써 그 요인을 하나하나 격파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쓰기는 혁명이다. 서서히 진행되는 혁명. 내 내면의 지층을 이루는 요소들을 들여다보고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끝내는 지층 위에 세워진 구조물 전체의 성격을 바꾸어나가는 혁명.
;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은 끝까지 쓰면서 대척점을 지나서 스스로 구조물 하나하나를 만들어 가는 혁명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글쓰기란 끝까지 쓰는 자기에 이르는 혁명이라는 것이다.
40쪽
내가 말한 도약이란, 내가 무엇을 쓰고 싶어하는지 알고, 그것을 쓰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으며, 어떻게든 써내게 만드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혹은 장악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히 ‘도약’이라고 칭할 만한 것이었다.
; 등단을 하고 청탁을 받고 원고를 쓰고, 강연도 하면서 작가는 도약의 순간을 인지하게 되는 이야기한다. 어떻게든 본능적으로 파악해서 써낸다는 지점에서는 10년을 작가 생활을 하고, 공모전에 여러 번 떨어지면서 수없이 엄청난 양의 글쓰기가 체화되어 스스로를 파악할 수 있었기에 이런 확실한 자기 인식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쓰고 싶은 분야와 써내는 능력이 함께 가야 하고, 그런 수없이 많은 시간과 양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쓰는 사람 작가가 될 수 있겠는가
대량 생산의 견인장치들
이 장에서는 블로그와 인터넷 서점, 오마이뉴스 등에서 서평을 3년 정도 했다는 경험을 말하면서, 계속해서 쓰게 하는 강력한 닻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닻은 글쓰기 모임이라고 한다.
글쓰기 모임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내 글에 대한 공개와 더불어 평을 들으면서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 평으로 인한 상처도 받을 수 있음을 말하면서 덜 상처받는 방법에 대한 이야길 넘어간다. 사실 이런 모임에서 제일 무서운 게 타인의 평가다. 질타, 비판이 연이어 제기되면 글쓰기에 대한 마음과 공개에 대한 마음은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다음 장으로 계속 읽게 된다.
다치지 않고 합평하기 1, 2
1에 실린 내용들은 내가 타인의 글에 대해서 합평을 할 때도 갖추어야 하는 예의이며, 합평을 해야 하는 태도와 지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있다.
2에서는 합평의 자리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는 없는 자리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합평의 진정성을 파악해서 수용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말한다. ‘자존감 높이기 운동 욕구’에 이른 상대방인지, 내 글에 도움을 주려는 평가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부분에서는 작가가 상담심리학을 공부했던 바탕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훈련하는 방법으로는 독서를 통해서 속성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에서는 작가로서의 생각이 드러난다.
2장
서평
80쪽
다른 사람이 쓴 책을 매개로 자기 얘기를 풀어놓는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생각을 큰 줄기로 내세워 독립적으로 글쓰기를 이끌어나가는 순간이 온다.
;작가의 말대로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글쓰기의 형태로 글쓰기를 하고 싶을 때 처음으로 접근하기에 가장 접근성이 좋다. 어느 정도 기초가 쌓인 형태 위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 저자의 사유에 대한 공감과 다른 시선의 관찰도 함께 할 수 있고,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서 쓰면 된다는 것이 다른 장르에 비해서 쉽다. 학교 과제 중 독후감은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학교 과제다. 왜일까 생각하면 독후감은 책을 읽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제로 접해지기 때문이다. 어른이 돼서 스스로 독후감 이른바 서평을 쓸 때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저자의 생각과 사유를 따라가고 있는 건지 혹은 저런 생각이나 사유의 맥락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의문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가장 진입 장벽이 낮은 서평쓰기라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칼럼
81쪽
칼럼은 난이도가 높다. 공적인 뉘앙스를 유지하면서 한정된 분량에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뻔한 윤리 담론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대체 원고지 8매 분량에 무슨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작가의 말처럼 쓰는 입장에서는 8매 안에서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다 드러내야 하는 글쓰기 장르라서 무척이나 어렵다. 그러나 읽는 독자로서는 신문 칼럼을 즐겨서 찾아 읽는 필진도 있어서 8매 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의 명료함을 만날 때, 그런 칼럼집의 책들을 만날 때 반갑기도 하고 흐름을 읽고 사회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는 글의 맛을 보게 된다. 이런 글은 어떻게 쓰는지 이 장에서 제시하고 있다. 퇴고의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85쪽
칼럼은 ‘빼기’의 기예가 중요한 글쓰기이고, ‘빼기’의 기예는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 세련미를 입혀주는 일급 병기이다.
88쪽
분량이 정해진 짧은 글쓰기는 글쓰기의 ‘테크닉’에 해당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화해 준다.
89쪽
짧은 글쓰기는 생각을 다듬고 문장을 경제적으로 추리는 유용한 훈련이 될 수 있다.
에세이
①이 글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②메시지 전달을 위해 내게 있었던 일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밝힐 것인가.
③이 에피소드를 이 정도 밝히는 것이 나 자신에게 소화가능한가.
④이 에피소드와 관련된 주변 사람들에게 이 내용이 소화 가능한가.
;네 가지의 에세이를 쓸 때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을 말하고, 작가 자신의 경우인 ‘엄마의 독서’라는 에세이를 썼던 경험을 풀어놓았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첫 책으로 읽었던 책이고 꽤 인상적이었다. 엄마이지만 나이고 싶은 욕구가 육아와 충돌하면서 나의 욕구인 책 읽기에 대한 에세이라는 지점에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같은 상황과 같은 욕구에 놓여 있는 작가의 에세이는 그래서 공감이 컸다.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 일기 같던 글이 독서 에세이로 출간될 수 있었던 흐름의 사연들을 읽다 보면 써놓은 글과 더불어 편집자와의 협업의 중요성도 보았다.
102쪽
결국 에세이는 ‘거리 두기’의 예술이라는 것. 내게 일어난 일을 기술하되, 그 일을 어느 정도까지 드러낼지를, 어떤 톤으로 드러낼지지를 저울질하는 기예라는 것. 내 이야기를 공개하되 있었던 일 그대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맞게 정제된 형태로 기술해야 한다는 것. 즉 주제에 봉사하는 선 안에서만 개인사를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104쪽
에세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 강한 장르다. 자신을 열어 보여주고, 그렇게 세계를 열어 보여준 작가에게 독자가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에세이의 출간 과정에서 내 내면에서 일어난 일을 ‘치유’라고 한다면, 에세이 출간 뒤 독자들과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소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와 소통은 어느 부분에서 연결점을 가진 친척 같은 개념이기도 하니, 에세이를 치유와 소통을 불러오는 글쓰기라 해도 좋으리라.
;박완서 선생의 작품이 문학적으로 저평가된 이유를 서술한 내용에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연신 동조하게 된다. 장강명 작가와 김현진 작가의 에세이의 인용도, 여성의 서사가, 에세이가 지금 이 시대에 왜 독자들에게 호응 받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서술한 문장은 더 할 수 없는 연대감과 공감이 들어온다.
대의를 위해 가족을 버렸던 계백의 서사가 아니라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 더러워진 집을 청소하고 돌아올 가족, 가까운 이들을 위한 일상 서사가 ‘솔직함’과 ‘디테일’로 에세이를 쓸 때 가져가야 할 것들이라고 정리해 준다.
논픽션
132쪽
논픽션은 이곳저곳 뚫린 공백이 많은 블루오션 같은 분야다.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메시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언어로 코딩해 전달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세상에 자료는 널려 있다. 손 뻗으면 도와줄 사람도 지천에 포진해 있다.
;작가의 최근작이 논픽션이다. 처음 해본 논픽션 글쓰기에 대해서 블루오션 같은 분야라는 말에 필자가 아직은 많지 않은 분야임을 확인한다. 문학 안에서도 이과적 글쓰기라는 표현이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근거와 아름다운 문장이 어우러진다면 논픽션의 최고의 책이 되지 않을까!
소설
136쪽
타인의 삶을 엿보고 내 삶의 밑거름으로 삼는데 소설은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작은 소설책 한 권을 손에 쥔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타인의 삶에 빠져들 수 있다.
137~138쪽
설명하기는 이야기의 진행 방향이나 인물의 마음, 혹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직접 말해주는 기술방식이고, 보여주기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기술 방식이다.
139쪽
소설의 표현 기법에서 ‘보여주기’가 ‘설명하기’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인간이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자유의지’ 차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내 몸과 내 몸 안에 깃든 생명, 혹은 정신이라 불릴 진한 덩어리의 주인이다.
140쪽
‘설명하기’는 은연중에 독자에게 나아갈 바를 정해준다는 인상을 준다.
사람들이 ‘보여주기’기법이 잘 들어간 소설에 감화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모든 마음의 작용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는 느낌, 독서의 경험이 ‘나’에 의해 주관되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143쪽
소설가는 전체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장면의 비중과 특성에 따라 설명하기와 보여주기를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 비율을 잘 조정해 반영한 소설이 가독성과 개연성을 확보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소설 쓰기의 흐름을 작가가 아주 자세하게 다섯 편이 장편 소설을 썼던 경험을 바탕으로 예시와 대비를 담아서 설명하고 있어서 술술 읽어 나가게 되고, 이런 구조적 흐름을 독자로서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런 구조와 문장에 끌려서 소설을 읽게 된다는 걸 역으로 깨닫게 된다.
3장 쓰는 마음
이 장은 등단 이후에 차기작을 출간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꽃길만이 있을 거라는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메일로 원고를 송고 후 거절 메일을 받기도 하고, 편집자에게 원고 거절의 대면과 메일들에 상처받기도 했다며 전한다. 그 이후 원고 거절을 극복하는 분투의 과정과 마음들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원고를 거절당한 후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다시 글로 쓴 후 자신의 원고를 읽고 스스로 만족해하다가 눈물을 흘리고는 경고음을 깨달았다는 장면은 처절하기도 하면서 작가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 동아줄 활동이라고 한 사이버대학 수강과 화분 기르기, 피아노 치기의 대한 이야기에서는 지나간 과정에 대한 묘사 이상의 뭉클함과 짠함이 함께 전해져 왔다.
2년 후 원고 거절의 상황을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감당했는지 궁금해하면서 그런 사례를 찾아 나선다. 예상처럼 작가들이 자신의 실패, 원고 거절에 대한 사례들은 쉬이 찾아낼 수 없었다. 그 사례를 찾는 과정에 대한 고백을 듣다 보면, 집요하면서도 어떤 위안과 지표를 찾고 싶어 하는 작가의 모습이 짙게 전해진다.
작가가 아니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책,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고, 직업을 바꾸기 위한 준비로 상담심리학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 진하을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어쩌면 상담심리사로 만날 수도 있었던 작가가 입학 원서를 제출하러 가려고 했던 순간 멈추고 자신의 마음의 밑바닥을 본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다시 깨닫게 되는 과정들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깨닫는 시간과 과정의 녹록지 않은 여정을 함께 느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 이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장면들이 다시 소설이 되어 장편 소설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서사는 정말이지 작가의 정체성의 재정립의 시기로, 앞으로는 쭉 쓰는 작가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은 정아은이라는 사람이 작가로서 정체성을 쌓아가는 이야기로 너무 솔직하기도 하고 기행적인 마음 상태와 당시의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프기도 하면서도 좋아하는 일 또는 인정욕구의 일을 이루는 것의 분투기로 읽었다.
228쪽
나를 존속시키겠다는 욕망은, 폼 나게 잘 존속시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절대로 꺼뜨릴 수 없고 꺼뜨려서도 안되는 ‘생명체의 핵심 욕망’이다. 내게도 있고 네게도 있는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다 근사하게 실현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더 세련된 대응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231쪽
그러니 내가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 ‘자본주의에 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결국 인정욕구에 귀속된다고 볼 수 있다.
232쪽
어찌나 세련된 방식을 취했는지 인정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애초에 행위자의 인정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이들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되는 그런 방식의 인정을.
;작가의 본심을 가감 없이 쓴 문장들을 읽으면서, 인정욕구의 멋진 발현,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박수를 치고 싶다. 인정욕구에 매달려 삶을 망치는 이들이 있는데, 작가가 말하는 인정욕구의 의식들은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박상영 작가도 팟빵에서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관종의 성향이 있다는 맥락의 말을 했다. 관종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부정적에서 재기발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인정욕구, 관종을 같은 맥락의 의미로 올려놓고 바라보니, 작가는 꽤나 힘든 업이지만 한편으로는 멋지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작가는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결과 장이 더 많아진 시대여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4장 작가를 둘러싼 사람들
편집자
편집자와의 일화들도 그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게 되는 경우, 삐걱대었던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같은 관점을 지닌 사람과의 작업이, 과정에서 오는 힘듦이나 문제를 함께 겪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쌓인다는 것이다.
일화에 등장한 편집자들의 이야기는 출판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각각의 직업적 태도에 대한 모습과 출판계 직장인들을 들여다보는 흥미도 있었다.
독자
277쪽
작가가 쓴 책을 호의적으로 읽은 독자는 작가에게 일종의 동창생과 같다. ‘같은 생각’이라는 하교를 거쳐간 동창생. 머릿속에 일정한 패턴의 사고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정신적 친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의적 독자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찬사이고, 독자로서 작가가 이런 생각으로 대해준다는 점이 내적 친밀감의 상승을 맛본다.
작가
예술의 본질은 무상성이며, 작가는 현대 자본주의 체에서 상품성과 무상성을 동시에 갖춘 존재라고 말한다.
기자
상대에게 질문할 권한을 핵심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는 직업인으로서, 인터뷰이로서 그들을 만날 때 자신이 도출한 의제를 대화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높이는 방향으로 변주해낼 줄 아는 이들이면 그런 모습의 기자를 만날 때 기쁘고 한 뼘 확장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타인의 모습을 통해서 내가 보지 못한 지점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동료작가
309쪽
같은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처지이기에, 우리는 서로 공감하고 연민한다.
불구덩이인지 뻔히 알면서도 뛰어드는 작가들에게, 동료 작가들은 그 자체로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비교 대상이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동일한 입장에 서본 자로서 깊게 보듬어 줄 수 있는 희귀한 생물들이다.
;여러 감정이 드는 동료 작가들은 그럼에도 서로 공감과 연민을 하는 존재로 동료애가 진하게 느껴진다. 어떤 분야나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동료가 있기에 경쟁과 성장이 함께 있다. 경쟁을 작가의 말로 바꾼다면 인지도의 차이, 유무라고 할 수 있다. 더 인지도 있고 대중에게 더 인식된 작가들이 있기에 질투나 부러움의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서로 애환을 듣고 나눌 수 있는 같은 업을 가진 이들로서의 공감대는 어디나 중요하지 않은가.
에필로그에 작가의 핵심 정체성을 ‘거절’이라고 말하면서 같은 정체성을 가진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와, 마지막 구절에서 이 책의 서사를 실존 서사로 칭하면서 한 조각 웃음, 한 조각 위로, 한 조각 정보, 혹은 한 조각 심정적 지지라는 문장이 유머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작가의 이번 책은, 피 땀 눈물의 실존서사가 가득하면서도 심리에 대한 분석과 작가적 관찰의 시점들이 돋보여서 읽는 내내 재미, 흥미, 집중도가 있었다.
0
이주연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