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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검찰 부패를 국민에게 고발하다)의 표지 이미지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이연주 지음
포르체 펴냄

책을 비난하는 이들은 이렇게들 말한다. 고작 1년 남짓 검사 생활한 사람이 뭘 안다고 검찰 이야기를 그렇게 해대느냐고, 제가 알고들은 이야기를 넘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짜깁기해 관심몰이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검찰 관계자들이 억울하게 매도된다는 게 이들에게 깔린 인식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 검찰개혁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럼에도 책은 희망을 말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임은정과 서지현, 진혜원과 박병규 검사를 언급하며 '핍박과 멸시와 고통을 견디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책의 마무리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다름 아닌 피노체트 반군에 몰려 대통령궁에 갇힌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이야기다. 반군에 포위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옌데 정권의 종말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든 군부와의 격전설을 언급하며 최후의 최후까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동세력에 의해 포위된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은 실제로 몹시 감동적이다. 그는 곧 라디오도, 제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도 자유와 인민, 사회변혁을 부르짖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칠레에선 영원할 것만 같았던 피노체트 헌법이 찢겨져 내려왔다. 잠들어 있던 칠레의 민중들이 거리로 나와 싸워 이룩한 결과다. 이들은 자유와 인민, 사회변혁을 부르짖으며 피노체트의 흔적을 씻어내고 아옌데가 가리킨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위대한 항해를 이제 막 시작한다.

그럼에 믿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의 민중들이 믿음을 잃지 않는 한, 고작 한 줌 썩은 곳을 도려내는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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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걸어온 길이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대하는 시각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기자 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기자 또한 길러내는 것이다.

저널리즘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겐 실망이 따를 수도 있겠다. 다루고 있는 많은 주제가 어떤 관점에선 흔한 것이고, 다루는 시각 또한 새롭지는 않다. 인용한 여러 서적을 고려하면 과연 이 정도 문제의식을 위하여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그와 같은 쉬운 평가가 나올 법도 하다.

왜 김애란이 '추천의 말'에서 다 아는 말을 전하는 일의 미덕을 거론했는지 알겠다. 내게는 아니었지만 다른 누구에겐 좋은 독서일 수도 있으리라고, 그런 생각에 이르렀으니.

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낮은산 펴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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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계인이라고 표현하는 김나리의 글 가운데서 한국의 오늘이 읽힌다. 독일에선 자연스러운 것이 한국에선 그렇지 않을 때다.

글로써 뒤따른 저자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부모의 이혼, 십대 학창 시절부터 홀로 꾸려나가야 했던 삶, 가난이 가난인 줄도 몰랐던 오랜 시간들, 다른 성적 지향으로 고통 받아야 했던 나날까지가 버겁게 다가선다.

그러나 그는 제 고통을 등짝에 진 채로 한걸음씩 나아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의 글에선 제 삶을 지탱한 어른만의 기개가, 끝나지 않은 삶을 기꺼이 마주하는 이의 진취성이 읽힌다. 그리하여 나는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다는 김나리의 말에 공감한다. 납작하지 않다. 이런 삶은 납작할 수가 없다.

흔해빠진 납작한 인간들 사이에서 납작하지 않은 인간이 저기 하나쯤 더 있구나. 그런 감상만으로도, 내게는 가치가 없지 않았다.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

김나리 지음
책나물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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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tarsky

기자였고, 보좌관이었으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황보람의 기록이다. 수시로 소속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가리키는 '저니맨'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명함을 가졌다가 놓아버린(때로는 잃어버린) 작가 자신의 '저니' 이야기를 담았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써내려간 저니의 어느 순간에 저 유명했던 전시의 뒷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부당함을 목도하면서도 그저 침묵했던 나를 반성한다. 책임 있는 이들의 비겁과 무지성적인 비판 가운데서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던 귀한 이가 무릎 꿇고 마음을 다치는 과정이 안쓰럽게 보인다.

다만 <황보람의 저니>를 훌륭한 책이라고 추천하긴 민망한 구석이 있다. 저니맨이란 성격과 꼭 맞게 실린 글들이 응집력 있게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대목이 있었단 건 기록할 만하다.

개중에선 아직 아물었다 할 수 없는 상처와, 그리하여 충분히 깊이 열고 따져볼 수 없었던 기억들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어느 기자, 또 보좌관의 절실한 발버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황보람의 저니

황보람 지음
편않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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