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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문체로도 말을 할 수 있음을 선명히 보여준 작품이다. 역사 속 이순신과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가 사이 의식의 교차점, 그 단순하고 순결한 의식의 흐름이 간결한 문장의 모양으로 베어져 백지 위에 나란히 펼쳐졌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이순신과 그의 전쟁에 대해 모르고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의 삶과 죽음이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에 자칫 단조롭게 흘러갈 위험이 컸을 것인데, 작가는 마치 이순신 본인의 의식을 들여다 보는 듯한 문장으로 그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어버렸다.
역사적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살려내기 위해 그의 의식을 전면에 드러내는 과감한 방법론적 선택이며, 고뇌하는 무장의 의식의 흐름을 압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솜씨의 탁월함이며,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작가 김훈의 실력에 압도되어 있었다.
바다 가득한 보이지 않는 적의, 부수고 부수어도 새까맣게 몰려오는 적들, 절로 두렵게 만드는 병질적인 임금, 그 모두를 넘어 살육당하는 존재들, 이 모든 사태를 마주하여 칼 찬 자로서 느끼는 무력함. 어디도 의지할 곳 없이 그를 둘러싼 모든 것과 싸워야 했던 무장의 고독. 그리고 허무.
아마도 나는 여기서 읽지 않아도 되었을 무언가까지 읽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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