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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의 표지 이미지

훌훌

문경민 지음
문학동네 펴냄

그 정도면 죽을 만큼이나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독한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더라. 일단 우리는 전쟁도 겪고 있지 않잖아. 지독한 곳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겪은 일로 죽어 버리겠다고 말하기는 나는 좀 그래. 하지만 유리야.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p. 207)


우리 독서 모임에는 아무래도 문과가 많았는지, 지난달 독서 모임 때 “다음 책은 술술 읽히는 책”을 원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포함. 지난 독서 모임 책 -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그렇게 선정된 9월 독서 모임의 책은 『훌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 책은 『훌훌』이라는 가벼운 느낌의 제목과 달리, 온 마음을 꾹꾹, 여러 감정을 툭툭 건드린다. 그뿐인가. 술술 읽히는 수준을 넘어,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기 전까지 책을 덮을 수 없다. 묵직하지만 무겁지 않고, 가뿐하지만 가볍지 않은 놀라운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를 『훌훌』 털고 가뿐해지고 싶은 유리에게는 두 명의 가족이 있다. 자신을 입양해놓고 책임지지 못해 할아버지에게 버리듯 방치해버린 엄마와 언제든 보낼 사람처럼 마음을 주지 않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유리는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적막하리만큼 평화롭던 그들의 일상이 깨진다. 갑작스레 엄마가 죽었고, 엄마의 다른 아이가 유리 네 집에 오게 된다. 수많은 사건을 듬뿍 안고 찾아온 동생이지만 유리는 그 아이로 인해 할아버지와도 더 가까워지며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훌훌』를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주제나 상황이 묵직한데, 작가는 판단이나 개입 없이 그저 바라보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에게 많은 감상을 안긴다. 또 유리와 세윤의 성장과 깨달음을 보며 너무나 명료하게 '그래, 산다는 것이 그렇게 내 맘처럼 딱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 가치가 있어.'하고 느끼게 한다. 『훌훌』은 분명 소설 그 이상의 가치와 생각을 주는 책임을 새삼 느낀다.

정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세윤이었다. 18살 미성년자 엄마에게 태어나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던 아이. 하지만 다행히 좋은 부모님을 만나 그 부모님과 싸울 수도 있는 아이. 소설 속 짓궂은 아이들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주제에 부모님과 싸운다며 세윤을 욕하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며 세윤이 엄마와 언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고 다행이라 느껴졌다. 또 버려진 아이에게 남긴 친모의 편지를 코팅까지 해 보관하다 성인에 가까워진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세윤 엄마의 넉넉함도 닮고 싶었다. 때때로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에게도 마음을 다 터놓지 못해 슬퍼하고 하지 않나. 『훌훌』을 읽는 내내 아이에게 생물학적, 법적 가족뿐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한 가족이 되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했다.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혹자는 『훌훌』의 유리처럼 과거를 딛고 성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리의 엄마 서정희 씨처럼 아팠던 과거에 발목 잡혀 여전히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그 누구에게도- 고통이 진행 중인 사람을 탓할 자격이 없다. 그저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을 뿐, 아직 훌훌 털어버릴 시간이 되지 않았을 뿐이니. 부디 그들에게도 언젠가는 홀가분해지는 날이 오기를 그저 응원하자고, 그렇게 선한 눈으로 바라봐주자고 세상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2023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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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겠지만, 이미 여러 차례 전쟁터에 나갔다가 살아 돌아왔으니 그 무엇도 당신을 건드리거나 무너뜨릴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이 또 간발의 차로 버스를 놓쳐도 자포자기하거나 큰 소리로 불평을 늘어놓기는커녕,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평소처럼 정류장 벤치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낼 뿐이다. 그렇게 꾹 참았다가 두 시간 후, 마침내 집에 도착하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지를 것이다. (p. 129)

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구아시마라가 싫어졌고, 앞으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절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당신의 인생 이야기는 네 부분으로 나눠질 거예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일하다. 죽겠죠. 끝. (p. 522)

『짜증 나니까 퇴근할게요』. 제목부터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사실 나는 오늘 이 문장을 10번쯤 떠올렸다. 정신 나간(과격하지만 지금의 솔직한 마음이다) 상사들 몇이 결정하지 못한 사소한 문제를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어 '상의'(를 가장한 지시)했기 때문. 그러나 나는 오늘도 퇴사하지 못했다. 대신 집으로 돌아와 샐러드를 입에 구겨 넣으며 『짜증 나니까 퇴근할게요』를 마저 읽었다.

『짜증 나니까 퇴근할게요』는 500p가 넘는 두께지만 제목 덕분인지, 미치도록 공감되는 내용 때문인지 몰입해서 읽게 되더라. 사실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이 분류는 그녀가 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책은 다큐로 느껴졌다. 주인공의 이름까지 작가와 동명이다 보니, 선명한 현실감에 나 역시 그때로 돌아가 신입사원 시절을 생생히 떠올리게 되었다. 직장생활 십여 년 차의 '중간다리'가 된 지금에도 『짜증 나니까 퇴근할게요』가 무척 공감되었던 까닭은 여전히 고생만 잔뜩 하는 직장인의 애환, 사회생활을 길게 하며 나도 모르게 바뀐 나의 모습, 회사 안에서 여자라는 성별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내게 되는지 등을 쉼 없이 떠올렸다. 『짜증 나니까 퇴근할게요』 속에는 mz인 메리엠이 있고, 그 시절의 내가 있으며, 지금의 나도, 지금 나와 생활하는 후배들의 모습도 있었다.

『짜증 나니까 퇴근할게요』를 읽는 동안 잊고 살았던 사회초년생의 애환을 떠올렸고, 존재감 없는 이에서 직장에 찌든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저 소설이라기엔 현실을 너무 잘 담고 있어서, 조금 서글프고 조금 짠해졌으며, 또 조금 누그러지기도 했다.

오늘 거친 월요일을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모든 직장인이 읽어보면 좋은 책, 『짜증 나니까 퇴근할게요』 였다.

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달 펴냄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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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건교사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학교의 보건실은 언제나 방문자가 없고 가끔 호출이 있는데, 이때는 주로 외근이다. 병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학교의 보건실은 언제나 방문자가 넘쳐난다. 초등학교의 보건실은 언제나 북적북적한데, 상담과 간식, 중재 등 다양한 이유로 찾아 온다.”
선생님은 아니지만, 너무 맞는 말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었다. 그런데 만약 보건쌤이 냥이라면? 아마 남학교, 여학교 할 것 없이 보건실이 터져나가지 않을까?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은 정말 귀여운 냥이가 보건쌤이다. 그리고 보조...쌤이 귀...신?
표지만으로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은 돌핀북의 신간으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귀여운 동화책이다. 냥과 욜(그 귀신)의 출근춘비 풍경부터 아이들을 치료하는 모습까지 무척이나 귀엽고 웃음이 터져나오기 때문에 아이들은 절로 책이 읽고 싶어질 수 밖에 없다.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의 중간 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또 왜 이렇게 웃긴지! 엄마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 재미있고 웃겨서 연신 웃음이 나더라. 사실 초등학생들의 책은 일단 귀엽거나 재미있어야 어러번 펼쳐지기 마련!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은 그런 점에서 이미 출발부터 “도서관 인기도서”가 될 가능성이 가득한 책이었다.

그렇다고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이 마냥 웃기고 귀엽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힘든 친구의 마음을 보듬어주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또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 등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응급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기에, 보건지식을 얻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미리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을 읽은 후 넘어지거나 하는 등의 사고를 겪는다면 보건실에 가기 전까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해야할 행동 등을 알 수 있어 사고의 범위를 좁히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아이의 학교에는 따로 상담실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보건실은 많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아주는 따뜻한 곳이 아닐까? 그런 보건실처럼 아이들이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을 읽으며 몸은 아프지 않고, 마음은 따뜻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의 다음 활약을 기대해보며, 꾹꾹 꾹꾹꾹!

미스터리 보건실 냥쌤 1

주미 지음
돌핀북 펴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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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보니 너무 슬프게 느껴지는 동요가 하나 있다.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쉬지 않고 일해요” 이놈 노동자의 삶은 참으로 끝도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프거나 지치거나 할 것 없이 쉬지 않고 일해야 했던 것. 거기에 엄마이기까지 한다.? 그러면 정말, 돌아서면 할 일, 돌아서면 할 일이다. 그런 마음을 작가님도 아는지, 권정민 작가님의 새 그림책, 『시계탕』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집 아이가 나를 안아주며 “고장 나지만”라고 위로해주던 그림책, 때때로 고장이 나는 엄마들을 위한 그림책, 『시계탕』을 소개한다.

사실 『시계탕』의 첫 장은 양심이 콕콕 쑤셨다. 나도 자주 하는 말, “10분 내로 가방을 메야 해”, “5분 안에 먹지 않으면 배고픈 채로 학교에 가야 해”. 아마 다른 엄마도 비슷할 것이다. 정해진 24시간 안에 우리는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학교나 유치원에도 보내야 하니까. 『시계탕』 속 엄마도 역시 시간을 똑똑 쪼개어 잔소리한다. 아이가 속으로 '제발 저 소리 좀 멈췄으면' 하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르고. 다음 날, 아이의 소원대로 엄마의 잔소리가 멈춰버린다. 엄마가 시계가 되어버렸기 때문. 아이가 느긋하게 준비하고 천천히 밥을 먹어도 엄마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아이는 지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엄마가 시계인 채로 있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엄마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연 엄마는 시계에서 돌아올 수 있을까?

대부분 책은 아이와 내가 함께 읽는 편이지만, 『시계탕』은 아이가 먼저 읽게 되었다. 나보다 먼저 집에 온 아이가 택배를 정리해주다 그림책임을 발견하였기 때문. 아이 혼자 만난 『시계탕』이 어떤 감상을 주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선 나를 꽉 안아주는 아이의 눈이 그렁그렁했던 거로 보아 아이에게도 꽤 찡한 내용이었나보다. 나도 한밤중 『시계탕』을 읽다가 엉엉 울어버렸다. 3월 내내 지친 상태였기 때문일까. 고장 나 멈추어버린 시계도 슬펐고, 시계를 고치고자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도 슬펐다. 시계처럼 쉼 없이 바쁘게 돌아간 우리 집의 3월이 겹치며 온 마음이 요동을 쳤다. 나도 나지만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과연 나는 우리 엄마를 『시계탕』에 데려가는 딸이었나 수없이 생각했다.

우리는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하고, 어떨 땐 가진 것을 잃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챙겨야 할 것이 많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많아 늘 종종걸음을 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잔소리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성가셔한다. 그래서 권정민 작가님의 『시계탕』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계탕』 가장 뒤 페이지에 작은 글씨로 적힌 말, “시간이 있다면 엄마와 시계탕으로 여행을 떠나보세요”.

이 말을 약간 고쳐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시간을 내어, 엄마와 『시계탕』으로 가보라고. 또 시간을 내어 아이와 『시계탕』 가는 길을 연습해보라고. 우리의 엄마들이 고장 나지 않도록 함께 『시계탕』을 향하기를. 또 훗날 혼자 『시계탕』에 가며 두려워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무서워할 수 있도록 함께 연습해주기를.

하지만 진짜 마음은- 당신도, 당신의 엄마도, 당신의 아이도 고장 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마음이 한 박자씩 쉬어갈 수 있기를. 오늘도 수고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를 주는 그림책, 『시계탕』이었다.

시계탕

권정민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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