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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사상사 펴냄

"저, 오시마 상. 혼자 있을 때 상대를 생각하며 서글픈 마음이 된 적이 있어요?"
"물론." 하고 그는 말한다. "이따금 있지. 특히 달이 창백하게 보이는 계절에는. 특히 새들이 남쪽으로 건너가는 계절에는. 특히....."
"어째서 물론이죠?" 하고 나는 묻는다.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 기분은 네가 발명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특허 신청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얼굴을 든다.
"멀리 있는 낡고 그리운 방?"
"맞았어." 하고 오시마 상은 말한다. 그리고 포크를 공중에 세운다.
"물론 메타포지만."

푸르니에의 유려하고 기품 있는 첼로 연주에 귀를 기울이면서, 청년은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매일 근처의 강에 가서 물고기나 미꾸라지를 잡던 시절의 일을.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어떤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점점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 참 이상한 얘기로군. 인간이란 살기 위해 태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잖아? 그런데도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알맹이를 잃어간다, 그저 텅 빈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더욱더 텅 비고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런 사고의 흐름을 어디에선가 바꿔놓을 수는 없을까?

나카타 상은 깊은 잠 속에서, 아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조용히 죽어갔을 것이다. 얼굴도 평온해서, 겉보기에는 괴로움도 없고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는 것 같았다. 나카타 상다워서 좋군, 하고 청년은 생각했다. 나카타 상의 인생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어떤 사람의 인생이나 그렇게 뚜렷한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정말로 무게를 갖는 것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다, 하고 청년은 생각했다. 어떻게 죽느냐에 비한다면, 어떻게 사느냐 같은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죽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역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카타 상의 죽은 얼굴을 보면서 청년은 그런 생각을 했다.
2023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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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결과'의 관계는 주사위 굴리기와 같다. 죽도록 노력하면 한 번 굴릴 기회가 주어지는 다면체 주사위. 100만큼 노력해도 1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저는 끝까지 노력해볼 거예요, 선생님. 노력은 주사위 굴리기 같은 거라, 뭐가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잘못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굴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나온다는 거."

도토리 문화센터 1

난다 지음
문학동네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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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 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 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거. 그걸 빛나 언니한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

"내가 회사 생활 십오년 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루바 공연 건 때문에 특진 취소되고, 팀 옮겨지고, 강남에서 판교로 짐 싸서 올 때도 눈물이 안 났어요.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구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속한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억지로 출근해서 하루를 보낸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거북이알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포인트로 모닝커피 마시고, 포인트 되는 식당에서 점심먹고, 포인트로 장 보고, 부모님 생신선물도 포인트로 결제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더 보내고 나서 그녀는 모든 것을 한결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원래 내가 받았어야 하는 건 포인트가 아닌 돈인데......사실 돈이 뭐 별건가요?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어떻게요?"
"포인트를 다시 돈으로 바꾸면 되는 거잖아."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음
창비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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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우리에게 알려준 가장 큰 비밀은, 인간이 사건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이 인간을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간을 엄습하는 사건들은 모두 앞선 또 다른 인간들에 의해 경험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느껴졌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어떤 사건도, 심각한 혹은 유익한 사건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갖는 느낌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모든 사람은 유일한 존재이다. 한 나무에서 자란 모든 잎들이 유일한 존재이듯.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수액을 나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각자 다르게 수용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듯이, 새로운 일이 진정으로 새롭진 않더라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대, 그 다음 세대, 파도, 그 다음 파도에겐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을 찾기 위해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나치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의무를 배신하는 것이다. 이 인생의 비밀을 이해하는 자는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도 확실한 것은 없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다비드 디옵 지음
희담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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