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탄식하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는 중년 이후 세상 일에 대해 마음이 재처럼 되어 점차 골계(滑稽)를 일삼으며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말세의 풍속이 걷잡을 수 없어 더불어 말을 할 만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매양 사람을 대하면 우언과 우스갯소리로 둘러대고 임기응변을 했지만, 마음은 항상 우울하여 즐겁지가 못했다. 그러나 중국에 다녀온 이후 그 견문한 사실 가운데 자못 기록할 만한 것이 있어서 연암골에 왕래할 때 늘 붓과 벼루를 가지고 다니며 행장(行裝) 속에 든 초고를 꺼내 생각나는 대로 적어나갔다. 늙어 한가해지면 심심풀이 삼아 읽을까 해서였다. 그리하여 쓴 글을 수습해 몇 권의 책으로 만들었는데, 애초 후세에 전하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느냐? 책을 절반도 집필하기 전에 벌써 남들이 그걸 돌려가며 베껴 책이 세상에 널리 유포될 줄을. 이미 회수할 수도 없게 된 거지. 처음에는 심히 놀라고 후회하여 가슴을 치며 한탄했지만, 나중에는 어쩔 도리 없어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책을 구경한 적도 없으면서 남들을 따라 이 책을 헐뜯고 비방하는 자들이야 난들 어떡하겠느냐?"
p.50 나의 아버지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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