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태백산맥 능선을 이제 다 넘었다.
여태 미뤄두었던 여정을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기에 늦게나마 시작할 수 있었다.
10권에서는 거제 포로수용소 사건이 자세히 나온다. 거제도에 갔을 때 아이들과 둘러보았던 곳인데 그곳에서 본 기록은 실제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공비토벌작전에 이은 잔비토벌작전으로 빨치산은 궁지에 몰리고 많은 인물들이 비극의 끝을 맺는다. 굶주림과 동상까지 더해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 없이 토벌대에 맞서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막다른길에 이르렀는데도 항복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뒷날 역사 속에서 이루는 역사투쟁으로 전환할 것을 다짐하는 빨치산들.
휴전 협정을 맺은 지 70년이 되었는데 이들의 염원과 달리 변질된 지금의 북한 정권을 보면서 살아남은 빨치산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의 목숨이 너무 허투루 버려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빨치산이었으며 인류애가 넘쳐났던 고상욱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최은영의 <밝은 밤>에서 엿본 빨치산도 떠올려 본다. 그곳의 빨치산은 <태백산맥>의 빨치산만큼 정의롭지 않았다. 힘 없는 여자를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더 사실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최근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지금까지 저항정신이 투철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너무 무기력해진 것 같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소통은 더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다.
작품 중에 손승호의 독백이 가슴에 남았다.
"자각하지 못한 자에게 역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각을 기피하는 자에게 역사는 과거일 뿐이며, 자각한 자에게 비로소 역사는 생명체인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 내적으로 큰 힘이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