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샤인을 죽였는가” 라는 whodunit으로 볼 수 있지만, 읽어보면 범인은 중요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자리한 “제도”들과 그 제도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조명한다. 학교 내 계급을 나누고 높은 계급에서 올라가려, 내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아이들. 학생의 실력보다 가족의 자본이 더 우선이 되어 그 계급을 좌우한다. 나뉘어진 계급을 당연스레 여기며 밑의 계급을 낮추어 보고, 공공연하게 학교폭력도 일어나는 행태가 변질된 무아교에선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들이 무아교에만 일어나는 일일까? 조금 과장된 형태지만, 이런 일은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옳지 않은 계급주의가 천천히 우리들의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설 속에서 또 하나 중요한 키워드는 “진실“이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보다 더 큰 사건으로, 더 자극적으로 조작된 이야기들로 잊어버린다. 판도라를 상자를 연 여자로만 기억하듯이, 사람들은 누군가가 조작한 형태로 죽은 선샤인을 기억한다. 그들에게 선샤인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껍데기이자, 포장지, 물고뜯을 가십거리일 뿐이다.
이는 결말까지 이어지며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단히 한다. 4년의 시간이 흐른 뒤, 선장은 그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뭐 중요한가”라는 말로 통칭한다. 여기서 한 번 자문해본다. 사과의 속은 무슨 색이었을까.
선샤인의 완벽한 죽음
범유진 (지은이) 지음
안전가옥 펴냄
1
스스로를 Bad(부족한, 완벽하게 훌륭하지 못한) Feminist라고 칭한 저자의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저자는 본인이 즐겨 듣는 노래 가사 속 여성혐오적 표현들이나 tv 드라마 속 만연하게 보이는 강간 소재 등 우리 일상 속 퍼져있는 미소지니들을 지적하기도 하고, 학창시절 당한 성폭행이나 다이어트 캠프같은 실제 본인의 경험들을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소설•영화 <헝거게임>의 당찬 주인공 캣니스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판하기도 한다. 여러 작품들과 사건들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바라본 글을 읽으며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운 것 같았다.
후반부에는 흑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러 영화들을 비판했는데, 특히 <헬프>가 가장 의외였다. 보지는 않았지만 유명해서 알고 있었고 좋은 의의를 가진 잘 만든 영화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흑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 영화는 비판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흑인 인권을 위해 투쟁한 사람은 흑인인데 보통 영화는 백인 주인공이 활약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헤어스프레이>도 마찬가진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헬프>말고도 책에서 설명된 여러 영화들이 이같은 비판점이 있었고, 동양인인 내가 이때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점들을 흑인 입장에서 어땠을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팟캐스트나 친구들한테서 좋은 말만 들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역시 <장고>라는 작품을 흑인 입장에서 고려하며 만들지 않았고, 반대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라는 작품은 책을 읽으며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록산 게이가 여성혐오적인 가사를 쓰는 에미넴의 노래를 즐겨 듣고, 핑크색을 좋아하고, 출산에 긍정적인 의견이라고 할지언정 그녀는 성폭행 기사에 분노하고, 여러 여성 드라마를 보며 좋은 점과 비판거리를 이야기하고,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핑크색을 좋아하고, 외출할 때 화장을 하지 않으면 얼굴을 못 들고, 매일 매일 내 몸을 보며 다이어트 생각을 하지만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기괴하다고 생각하고, 여러 미디어를 보며 옳지 않은 점을 찾아내려한다.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려하지 않고 또 완벽하지 않음에 자책하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고 인정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하는 자세가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