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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이사카 고타로 연작소설)의 표지 이미지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현대문학 펴냄

만일 그때 소년에게 작은 칼을 돌려주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나는 상상해보았다. 여자는 아직 살아 있고, 나는 형사의 차에 탈 필요가 없었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도쿄에서 오사카로 가야 하는 사람은 신칸센 열차 운행이 멈추어도, 비행기가 날지 않아도, 차가 고장 나도, 어떻게든 찾아간다. 경로나 수단이 바뀌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전쟁이나 사건, 사고, 질병은 어딘가에 끊임없이 존재합니다. 우는 부모들, 슬퍼하는 아이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나지만 우리는 자기의 시간을,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일을 똑바로 완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자기 생각만 하면 된다거나, 남의 일은 알 바 아니라고 개의치 않는 것과는 또 다르지만요."
"야, 못난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기지마 노리코가 상대를 존중하는 건지 모욕하는 건지 모를 태도로 묻자, 사토 와타루는 싫은 내색 하나 비치지 않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니 여러 문제를 고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작곡가가 죽기 전에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답니다. '사람은 저마다 주어진 악보를 필사적으로 연주하는 것밖에 모르고, 그럴 수밖에 없다. 옆의 악보를 훔쳐볼 여유도 없다. 자기 악보를 연주하면서 남도 제대로 연주하기를 바랄 뿐이다."
2023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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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겪든 절대 무감각해질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확신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런 말뿐인 다짐 뒤에서 타인의 죽음에 조금씩, 하지만 분명히 둔감해졌다. 에피네프가 등장하고 열 달간 전 세계에서 네 명 중 한 명이 죽었다. 4인 가족이라면 그중 하나. 여덟 명 친구 모임이라면 그중 두 명. 마흔 명으로 이루어진 학급에선 열 명이 사라졌다. 이제 누군가의 죽음이란 반드시 울거나 오랫동안 슬퍼해야만 할 일이 아니었다. 죽음의 의미나 무게가 달라져서가 아니었다. 달라진 건 우리였다. 그렇게 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카베의 죽음에 의미를 찾아주는 일 말곤 없었다.

"진행자랑 가벼운 분위기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더라고. 그러더니 뜬금없이 내 이름을 말하면서 날 좋아했는데 졸업이 몇 달밖에 남지 않은 시기여서 고백하지 못했다고. 그게 너무 후회된다고. 만약 방송을 보게 된다면 꼭 연락하고 싶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놀랐겠네요."
"그럼."
리엔 선배가 웃었다.
"내가 몇 년 동안이나 좋아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너도 알지는 모르겠는데, 사귀지도 않고 한 사람을 몇 년이나 혼자 좋아한다는 건 거의 병이나 다름없는 거야. 감정이라는 건 원래 변질되고 바뀌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계기가 없으니까 변하지도 않고, 내심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사라지지도 않아서 그 모습 그대로 냉동 상태로 영영 보존되거든. 그러다 계기가 있어서 그 냉동실 문이 조금 열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굴러 나와서... 또 병이 도져버리는 거지."
"그게 병인가요?"
"병이지."
선배가 딱 잘라 말했다.
"잘못된 거잖아.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내가 열아홉 살 때의 나와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게. 생활도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달라졌는데, 그 당시 감정의 논리만 예외로 한다는 게."

"나는 왜 그렇게 늘 불안했을까? 계속 같이 있을 줄 알았던 오빠가 나가고 혼자가 돼서? 세상이랑 사람이 무서워서? 에피네프에 죽을까봐? 아니면 그냥 어리고 젊을 땐 누구나 다 그런 거니까?"
내가 아무런 대꾸도 못 하자, 페이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한 번 죽어보니까, 인생도 없고 미래도 없는 상태로 찬찬히 돌아보니까 조금은 알겠더라고. 나는 앞날만 생각했기 때문에 불안했던 거야. 앞으로 올 날들이 지금보다 나을 거라 생각해서. 어른이 돼서 보육원을 나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지, 오빠를 찾을 수 있겠지, 언젠가는 행복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현재를 마주 보지 않아서.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서 불안했던 거야. 그래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 줄 알았어.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게."

스파이라

김아인 지음
허블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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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업무라고 말해 보기도 하고,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 실현하지 못한 기획을 '없어졌다'고 말해 보기도 하고, 사실은 미칠 듯 되고 싶으면서 '주위 사람에게서 편집자나 아티스트가 되면 어떠냐는 말을 듣는다'라고 말해 보기도 하고. 그런 사소한 표현 하나하나로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키겠다는 그런 모습, 아무도 이해 안 해.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않아."
미즈키는 아무도, 하고 말의 윤곽을 한 번 더 더듬듯이 되풀이했다.
"다카요시는 계속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과정을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 그런 말을 늘 하고 있어. 누구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얘기를 들었다, 이런 것을 기획하고 있다, 지금 이런 책을 읽고 있다, 이런 것을 고찰하고 있다, 주위는 내게 이런 것을 기대한다."
미즈키는 숨을 들이마셨다.
"10점이어도 20점이어도 좋으니 네 속에서 꺼내. 네 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점수조차 받을 수 없으니까.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멋진 말로 어필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모두에게 보여줘. 너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 끝에 네 속의 것을 꺼내 놓아 봐.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봐 주지 않아. 100점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숙성시켰다가 표현한들 너를 너와 똑같이 보는 사람은 이제 없다니까."
미즈키는 거기까지 말하다, 정신을 차린 듯이 입을 다물었다.
"미안."
미즈키는 발밑에 놓여 있던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너무나 빠른 동작이어서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다카요시는 아직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리카는 고개는 돌리지 않고 눈으로만 다카요시를 보고 있다. 고타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펫 위에 떨어져 있는 한입 크기 치즈의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에 있는 동안에는 언제든, 무엇이든 걸작이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서서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너는 줄곧 그 속에서 나오지 못할 거야."

"지금의 내가 얼마나 촌스럽고 꼴불견인지 알아. 외국 자원 봉사를 무시하는 대학생이나 어른이 많은 것도, 학생 주제에 명함 따위 갖고 다닌다고 지금까지 만난 어른들이 속으로 비웃을 거란 것도 알아."
알고 있어.
리카는 한 번 더 확인하듯이 말했다.
"비웃는다는 걸 알면서 어째서 그런다고 생각해?"
리카는 이를 악물면서 그다음 말을 쥐어짜는 듯이 보였다.
"그것 말고는 내게 남은 길이 없기 때문이야."
입술에서가 아니라 온몸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촌스럽고 볼썽사나운 나를 이상적인 나에 가깝게 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사이렌이 울리는 것 같군, 나는 생각했다.
"촌스럽고 볼썽사나운 지금의 내 모습으로 '이렇게까지 하는데?' 할 정도로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단 말이야!"
떨듯이 그렇게 말하는 리카는 마치 온몸이 울리는 것 같아 보였다.
귓속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자신은 자신밖에 될 수 없어. 아무리 유학하고 인턴하고 자원봉사를 해 봤자,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걸. 동경하는, 이상형인 누군가도 될 수 없었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만나고 낯선 땅에 학교를 세우기도 한 손으로, 남의 메일 주소로 트위터 계정이나 찾고, 남이 합격한 회사를 검색하고. 그게 블랙 회사라는 소문이 도는 곳이라면 좀 위안을 받고. 지금도 촌스럽고, 볼썽사납고, 추한 나 자신인 채로야. 뭘 하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
- 앞으로는 이제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내 이름은 바뀌지 않는구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의 나인 채로잖아, 앞으로 줄~곧.
"하지만 이 모습으로 발버둥 칠 수밖에 없잖아."
소리가 소용돌이가 되어 간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아무리 비웃어도 인턴도 외국 자원봉사도 어필할 것이고, 취업 정보 센터에도 다니고, 내 명함도 뿌릴 거야. 볼썽사나운 모습인 채로 죽을 둥 살 둥 발버둥 칠 거야. 그 방법에서 도망쳐 버리면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 10점이어도 20점이어도 좋으니 네 속에서 꺼내. 네 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점수조차 받을 수 없으니까. 100점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숙성시켰다가 표현한들 너를 너와 똑같이 보는 사람은 이제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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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 지음
은행나무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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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덤덤하게 말했다. 이젠 엄마 이야기를 할 때도 목소리가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괜찮아진 건 아닐 거다. 유년기에 받은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으니까. 딱지가 앉지도, 흉터가 아물지도 않는다. 무당이 모시는 할머니가 내 기억을 봉인시킨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지고 살아온 어른의 배려였을까. 남편의 기억을 봉인시켜주고 싶었다. 그리할 수 없기에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이 나를 볼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면 나 역시 남편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남편이 받아야 했을 사랑을 내가 대신 받은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언니와 만난 적 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언니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줌마에 대한 기억도 따라나올 테니까. 어두컴컴한 방 침대 위에 오도카니 홀로 앉아 있던 언니의 외로운 옆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은 영영 혼자 간직하기로 했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정지혜 지음
자이언트북스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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