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백종원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백종원 선생님은 일반 대중의 입맛을 잘 아십니다. 어떤 음식이 팔리는지 아시는거예요. 세계 최고의 미식을 만들진 않지만 잘 팔리는 외식을 만드십니다. 요리사로선 어떤지 몰라도 외식 사업가로선 훌륭한 분이십니다.
왜 백종원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냐구요? 치넨 미키토 작가님이 그분과 비슷한 타입이기 때문입니다. 불멸의 고전을 쓰진 않으시지만 일반 독자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십니다. 이 작품도 그랬어요. 문학가로선 어떤지 몰라도 장르 소설가로선 훌륭한 분이시죠.
작가님의 뛰어난 필력 덕에 마지막 장까지 술술 잘 읽혔습니다.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도입부에서 느낀 흥미를 마지막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자를 속이기 위한 미스디렉션도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꽤 잘 돼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분명 경찰이 어떤 사실을 언론에 공표하지 않고 숨겼다고 했는데, 나중에 등장인물이 언론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았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처음엔 뭔가 단서인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그냥 오류였습니다. 다른 장르라면 모를까, 추리 소설에선 이런 오류는 치명적이지요.
중요한 부분을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도 단점입니다.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시신과 대화하라”. 이 말을 듣더니 갑자기 단서를 발견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단서를 발견하는 과정은 이 장르에선 굉장히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대강 넘어가니 아쉽습니다. 대충 멋진 말 몇 마디로 얼버무리고 넘어갔어요.
결론을 내리자면 5점 만점에 3점. 술술 잘 읽히고 합격점 이상의 재미를 주지만, 뚜렷한 단점도 있습니다. 치넨 미키토 작가님은 이제 장르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부분에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시니,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성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종이학 살인사건
치넨 미키토 지음
북플라자 펴냄
읽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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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계에 특수 설정 미스터리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에 판타지/SF요소를 추가하는 겁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그게 무슨 추리 소설이냐 싶겠지만, 괜찮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특수 설정에 엄격한 규칙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연역 논리를 통해 진상을 추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초능력이 나오던, 독자가 머리를 굴려서 범인을 지목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마무라 마사히로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입니다. 그런데 이 작가님은 특수 설정을 활용하는 방식이 다른 작가님들과 조금 다릅니다. 특수 설정이 나오지만, 특수 설정을 이용한 트릭은 잘 안 나옵니다. 핵심은 특수 설정 그 자체가 아닌거예요. 이는 시리즈의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특수 설정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로인해 영향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요약하자면 이런거예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사람들이 영향 받고, 그로인해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작품에선 미래 예지 초능력이 그 특수한 상황이죠. 하지만 정작 사건 해결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진행 되는거예요. 고전 추리물의 재미와 특수 요소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다 잡았습니다.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사실 트릭은 미래 예지라는 특수 능력과 큰 상관이 없습니다. 평범한 위장 공작이예요. 다만 미래를 예지 받았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 했던거죠. 범인 입장에선 그 상황엔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즉 특수 능력 그 자체는 중요치 않고, 그로인해 영향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겁니다. 그게 참 재밌어요.
이 작품은 추리적인 면에선 상당히 쉬운 편입니다. 물증이 확실합니다. 물증에 해석 할 여지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어지간한 가설은 주인공들이 대화를 통해 소거해버립니다. 그래서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익숙한 분은 금방 범인을 알 수 있을거예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빨리 다음 작품인 <흉인저의 살인>도 읽고 싶어요. 추천합니다.
마안갑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은이), 김은모 (옮긴이) 지음
엘릭시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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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
이책 당근마켓에서 유명한 그 책!
2023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