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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엘러리 퀸 지음
검은숲 펴냄

불후의 명작이란 장르의 본질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읽었을 때 그 장르에서 기대 할 수 있는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죠.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불후의 명작입니다. 아마 몇백년이 지나도 퍼즐이 착착 맞춰질 때의 쾌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모든 미친 상황엔 실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죠. 레인이 추리를 통해 혼돈에 질서를 부여 할 때 그 짜릿한 지적 쾌감이란. 너무 좋습니다. 수천년 뒤 추리 소설이란 개념이 희박해진다면, 이 책을 보여주면서 이게 바로 추리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사실 이 작품은 해답이 줄곧 코앞에 있습니다. 샘 경감은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하기도 전에 거의 결정적인 착안점을 떠올립니다. 그정도로 핵심은 코앞에 있었어요. 단지 그것이 핵심이란걸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예요. 영악한 퀸은 온갖 방법으로 독자와 등장인물들을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 쓰면서 독자들이 헛다리 짚는걸 상상하곤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저는 이 소설을 추천 합니다. 좀 과장해서 청소년 필수 문학 같은 걸로 선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명작을 써줘서 고마워요, 엘러리 퀸.
2023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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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백종원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백종원 선생님은 일반 대중의 입맛을 잘 아십니다. 어떤 음식이 팔리는지 아시는거예요. 세계 최고의 미식을 만들진 않지만 잘 팔리는 외식을 만드십니다. 요리사로선 어떤지 몰라도 외식 사업가로선 훌륭한 분이십니다.

왜 백종원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냐구요? 치넨 미키토 작가님이 그분과 비슷한 타입이기 때문입니다. 불멸의 고전을 쓰진 않으시지만 일반 독자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십니다. 이 작품도 그랬어요. 문학가로선 어떤지 몰라도 장르 소설가로선 훌륭한 분이시죠.

작가님의 뛰어난 필력 덕에 마지막 장까지 술술 잘 읽혔습니다.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도입부에서 느낀 흥미를 마지막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자를 속이기 위한 미스디렉션도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꽤 잘 돼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분명 경찰이 어떤 사실을 언론에 공표하지 않고 숨겼다고 했는데, 나중에 등장인물이 언론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았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처음엔 뭔가 단서인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그냥 오류였습니다. 다른 장르라면 모를까, 추리 소설에선 이런 오류는 치명적이지요.

중요한 부분을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도 단점입니다.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시신과 대화하라”. 이 말을 듣더니 갑자기 단서를 발견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단서를 발견하는 과정은 이 장르에선 굉장히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대강 넘어가니 아쉽습니다. 대충 멋진 말 몇 마디로 얼버무리고 넘어갔어요.

결론을 내리자면 5점 만점에 3점. 술술 잘 읽히고 합격점 이상의 재미를 주지만, 뚜렷한 단점도 있습니다. 치넨 미키토 작가님은 이제 장르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부분에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시니,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성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종이학 살인사건

치넨 미키토 지음
북플라자 펴냄

읽고있어요
2023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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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들은 얼핏 봤을 땐 현실에 있을 법합니다. 그들는 초능력도 없고, 하이테크 슈트도 없어요. 그저 뛰어난 두뇌를 가졌을 뿐이예요. 그들이 내놓는 추론을 보면 독자인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어렸을 땐 명탐정 흉내를 내면서 이런 저런 추리를 하고 놀았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 외관을 관찰해서 어떤 사람인지 추리를 하곤 했죠.

하지만 명탐정의 추리가 척척 맞아떨어지는건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해요. 작가가 짜놓은 퍼즐이기 때문이죠. 현실에선 그런 활약이 불가능 합니다. 그들의 추리가 척척 정답인건 작가가 그걸 정답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거예요. [Z의 비극]에서 명탐정 드루리 레인은 범인이 약속 시간을 바꿨던 걸 근거로, 그가 사형집행에 참석한 사람이란 추론을 합니다. 하지만 꼭 그러란 법은 없지요. 단지 그날 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레인의 추리는 정답이었어요. 작가가 그것이 정답이라고 정했으니까요.

자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죠. 명탐정이 내놓는 추리를 작가가 부정한다면? 소설 속 명탐정이 멋진 추리를 내놓지만 작가가 그걸 부정하는 새로운 단서를 내놓습니다. 그럴경우 명탐정은 속절없이 당하는거예요.

이 책의 명탐정인 트렌트가 당한 일이 바로 그겁니다. 사건 현장을 관찰하고 그럴싸한 추리를 내놓습니다만, 작가는 잔인하게 그 추리를 파괴합니다.

이런 식으로 작가가 작품 속 명탐정을 괴롭히는 경우는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컨셉의 원조는 이 작품이죠. 황금기 이전에 나온 작품이란걸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선 컨셉이예요. 과연 도로시 L 세이어스가 읽고 감탄했을 법합니다.

추리적인 면에서 평가를 하자면, 상당히 좋았어요. 트렌트가 내놓은 추리가 인상 깊었습니다. 현장의 기괴함을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 할 수 있는 추리였어요. 제겐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반면 진상은 그에 비해 조금 아쉬웠습니다. 너무 탐정의 추리를 파괴하는데 집중한 느낌이랄까요? 거외 말 싸움 할 때 설득이 아니라 그저 비방 하기위해서 싸우는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요.

굉장히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트렌트 최후의 사건

에드먼드 클러리휴 벤틀리 지음
엘릭시르 펴냄

2023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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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을 장르에 적용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청부 살인이란 컨셉과 추리 소설이란 장르가 따로 놉니다. 이 책은 청부 살인 업자가 왜 추리를 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의뢰를 받고 살인 준비를 합니다. 그러다 목표물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요. 그리곤 추리해서 그 수수께끼를 풉니다. 계속 이런 패턴이예요. 수수께끼를 푸는건 청부 살인과 전혀 관계 없습니다. 왜 굳이 추리해서 의문을 풀어야 하나요? 목표물이 물통을 들고 다니는게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나요? 어차피 죽이면 그만인데요.

그냥 죽였다간 혹시 예상 못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니까 변수 통제 개념에서 수수께끼를 푼다고 합니다. 별로 설득력 없어요. 애초에 살인을 위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칼로 푹 찌르는 방식으로 살인을 하는데 무슨 변수 통제입니까. 조심할 생각도 숨길 생각도 없어요.

추리적인 면에서도 딱히 대단할 구석이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수준이예요. 그마저도 몇몇 단편은 실망스러웠구요.

“왜 추리를 해야 해?“

읽는 내내 작은 물음표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추리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니 도저히 추천 할 수 없네요. 역시 이 작가님은 <문은 아직 닫혀있는데>를 제외하면 제 취향과 안 맞는 것 같아요.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노블마인 펴냄

2023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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