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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세

정용준 지음
민음사 펴냄

이 책은 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이 일상을 더 잘 일구어 나가게 도울 문장들로 수두룩하다. 나는 ‘쓰다’라는 동사의 목적어 자리에, 내가 나로 서 있기 위해 써 내려간 모든 글도 넣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소설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소설을 딱 한 편 써봤다. 한 창작 수업의 기말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서. 얼마나 쓰기 어려운지 몸소 깨달았다. ‘잘’ 쓰는 건 무슨, 완성하는 것도 어찌나 힘들던지.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소설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러니 부단히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남기로. 읽은 것에 관해 쓰기를 멈추지 않기로. 읽은 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치지 않고 말하기로 하자.

그러나, 읽고 쓰고 쓰고 읽어도 무엇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회의에 빠지게 되는 밤도 숱하게 있다. 그런 내게, “읽지 않고 쓰지 않으면 마음은 더 안 좋아진다”(54쪽)고 말해주는 작가의 목소리. “내 문제와 어려움을 토로하듯 말했더니, 그 고백과 일기가 끝난 곳에 가벼움과 내일이 있었다”(89쪽)고도. 이런 음성과 함께라면, 더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보편적인 개별성과 개별적인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한 삶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사람 속에 숨어 있는 특별함이 적절하게 이야기될 때”(25쪽)라는 걸 기억하며. ‘쓰기’에 갇히지 않으면서 그것으로 내 삶을 일구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으로 감상을 마무리한다.

“시큰둥하게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엔터를 누르고 단어 하나를 시작으로 새로운 문단을 시작한다.” (56쪽)

↵ Enter, 하나의 단어, 새로운 문단. 그렇게 시작하는 매일으로 영원을 쓰기.
2023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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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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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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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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