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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사람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누군가의 명언으로 정의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를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기 위함’이라며 인간 존재의 이유를 일축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배려라고 불렀던 모든 추상적인 가치들은 단지 나 또는 개체의 생존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함이라 주장한다. 유전자는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 오로지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한 개체의 희생도 불사하는 것이 유전자, 즉 생물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이기적 유전자’라 표현하였다. 예상컨대 이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도 그렇게 느꼈으리라. 도킨스는 이 충격적인 명제를 가지고 인간의 생존과 번식, 문화, 인간관계 등 많은 것을 설명한다. 그가 벌에 비유하여 인간의 희생 전략을 설명할 때마다 우리가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우리는 정말 이기적인 유전자의 노예에 불과한 걸까?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인생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책을 끝까지 읽어본 이는 알겠지만 결국 「이기적 유전자」의 ‘selfish’은 도킨스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느끼게 된다. 오히려 그는 독자들이 'selfish'라는 표현에 몰입하여 지나치게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량의 2할가량이 집필 배경과 보주로 꾸려졌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가 무슨 생각으로 책의 전, 중반부를 그리 자극적으로 써 내렸는지 여전히 의문을 갖는다. 책을 읽고 무언의 반감이 생긴 이들에게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유전자의 아름다움을 공부하는 과학도로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한편으론 본 저서가 학술적인 이야기뿐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란 이중적인 생각도 든다. 도킨스의 논리는 자극적이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자잘한 오류는 발견할 수 있다만 그조차 현대 과학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생명과학의 대중화란 타이틀을 달고 그보다 독보적인 활약을 보인 과학자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나 또한 과학의 대중화를 바라는 입장에서 그를 존경하는 바이다. 다만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거나 그럴 예정인 독자에게는 이 글을 빌려 전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자 한다.

단순히 책의 자극적인 부분만 골라 보면 도킨스가 가지는 관점의 편향된 일부분만 받아들이게 된다. 본 저서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만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유전자의 노예에 불과한 인간’이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유전자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것인데 무엇이 그리도 회의적이라 느끼는가? 나의 유전자가 곧 나이고, 내가 행하는 것이 내 유전자가 행하는 것이다. 낙관적인 해석이라 느낄 수 있지만 과장은 없다. 하나 수십 년간의 논쟁과 그 많은 수식어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존재 가치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로 가득하다. 도킨스의 해답도 그럴듯한 마침표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보아라. 우리는 똑똑하게 살아남았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 자명하다. 허송세월 하기엔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이지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살아남아라. 그리하여 생의 끝에서 무엇이 남았는지 우리의 이지로 판단하자.
2022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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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문체로 삶을 토로하는 구와 담의 이야기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같았다. 글은 두 주인공의 시점으로 서술되지만, 독자는 그들에게 이입이 된다기보단 제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별생각 없이 읽다 보면 가끔씩 기억의 편린을 건드리는 문장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곤 한다. 책의 부제가 있다면 후회일까? 구와 담은 서로의 운명이었을까 그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었나. 하지만 후회와 연민, 애착과 죄책감으로 점철된 감정을 나는 사랑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작품의 분위기나 색채가 묘하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글의 여운이은 후자가 더 짙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분된다. 특히 후반부(구와 담 재회 이후) 구의 독백은 마치 인소를 보는 것처럼 지나치게 단조로우면서도 난해하여 아쉬웠다. 책의 결말과 첫 장이 수미상관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그나마 흥미로웠다.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고, 누군가의 인생 책이라는 소리에 그저 호기심이 동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 정도의 특별함은 없는 소설인데 아마 초반의 식인 행위가 강렬한 인상을 줬기 때문에 유명해진 게 아닌가 싶다. 당장 제목만 검색해도 ‘식인’ 키워드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언급된다. 설명이 필요할까. 온갖 자극적인 소재가 뇌의 전두엽을 자극해 심취해 있는 걸지도.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지만 킬링타임용으론 나쁘지 않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은행나무 펴냄

2023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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