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릇한쿼카님의 프로필 이미지

야릇한쿼카

@strange_quokka

+ 팔로우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의 표지 이미지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사람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누군가의 명언으로 정의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를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기 위함’이라며 인간 존재의 이유를 일축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배려라고 불렀던 모든 추상적인 가치들은 단지 나 또는 개체의 생존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함이라 주장한다. 유전자는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 오로지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한 개체의 희생도 불사하는 것이 유전자, 즉 생물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이기적 유전자’라 표현하였다. 예상컨대 이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도 그렇게 느꼈으리라. 도킨스는 이 충격적인 명제를 가지고 인간의 생존과 번식, 문화, 인간관계 등 많은 것을 설명한다. 그가 벌에 비유하여 인간의 희생 전략을 설명할 때마다 우리가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각인시켜준다. 우리는 정말 이기적인 유전자의 노예에 불과한 걸까?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인생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책을 끝까지 읽어본 이는 알겠지만 결국 「이기적 유전자」의 ‘selfish’은 도킨스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느끼게 된다. 오히려 그는 독자들이 'selfish'라는 표현에 몰입하여 지나치게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량의 2할가량이 집필 배경과 보주로 꾸려졌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가 무슨 생각으로 책의 전, 중반부를 그리 자극적으로 써 내렸는지 여전히 의문을 갖는다. 책을 읽고 무언의 반감이 생긴 이들에게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유전자의 아름다움을 공부하는 과학도로서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한편으론 본 저서가 학술적인 이야기뿐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란 이중적인 생각도 든다. 도킨스의 논리는 자극적이지만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자잘한 오류는 발견할 수 있다만 그조차 현대 과학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생명과학의 대중화란 타이틀을 달고 그보다 독보적인 활약을 보인 과학자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나 또한 과학의 대중화를 바라는 입장에서 그를 존경하는 바이다. 다만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거나 그럴 예정인 독자에게는 이 글을 빌려 전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자 한다.

단순히 책의 자극적인 부분만 골라 보면 도킨스가 가지는 관점의 편향된 일부분만 받아들이게 된다. 본 저서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만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유전자의 노예에 불과한 인간’이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유전자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것인데 무엇이 그리도 회의적이라 느끼는가? 나의 유전자가 곧 나이고, 내가 행하는 것이 내 유전자가 행하는 것이다. 낙관적인 해석이라 느낄 수 있지만 과장은 없다. 하나 수십 년간의 논쟁과 그 많은 수식어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존재 가치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로 가득하다. 도킨스의 해답도 그럴듯한 마침표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보아라. 우리는 똑똑하게 살아남았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 자명하다. 허송세월 하기엔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이지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살아남아라. 그리하여 생의 끝에서 무엇이 남았는지 우리의 이지로 판단하자.
2022년 12월 11일
0

야릇한쿼카님의 다른 게시물

야릇한쿼카님의 프로필 이미지

야릇한쿼카

@strange_quokka

지식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가장 인간스러운 욕망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인류의 문명을 찬란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러니, 불세의 천재 과학자와 매드사이언티스트는 분명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다. 결국 그 선을 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금단의 호기심을 품지만,
세상에는 생각만으로도 죄가 되는 사상이 있고,
영원히 머릿속에만 남겨둬야 할 질문들이 있다.

그래, 니나가와 교수의 창의력이 개미친 트롤링으로 변모하는 건 겨우 종이 한 장 차이고, 그건 마치 에이즈에 처음 감염된 놈과 같은 행위라 할 수 있겠지.

‘쾌락’이라고는 말했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것이 과연 쾌락이라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마약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좀비 같기도 하고.

다만, 정신착란의 원인이 원숭이로부터 기인한 기생충이라는 설정은 꽤 흥미롭고, 제법 SF적인 상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게임으로 치자면, 라오어. 웹툰으로 치자면 김규삼 작가의 하이브가 생각나기도 했고.

10년 전쯤, 나는 기시 유스케의 <신세계에서>로 처음 그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일본 문학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천사들의 속삭임>을 읽으며 그 작품이 문득 떠올랐다.
두 소설 모두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어둠을 다루지만, 그 접근 방식은 다르다.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눈에 띄는 명대사나 글귀보단,
특유의 분위기와 높은 몰입감에서 진가를 발휘하는데,
이 두 작품은 그런 그의 강점을 잘 보여준다.

정교한 세계관, 판타지적 요소, 철학적인 의미, 탄탄한 서사 구조, 서스펜스와 미스터리, 그리고 서정적인 분위기까지 고려하면 <신세계에서>가 더 완성도 높게 느껴진다.

반면 <천사들의 속삭임>은 보다 추리물에 가깝고, 스릴러적인 긴장감과 고어한 묘사, 도파민을 자극하는 몰입감,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솔직히 속은 좀 안 좋았다.
그래도 킬링타임용으론 나쁘지 않다.

천사의 속삭임

기시 유스케 지음
창해 펴냄

2개월 전
0
야릇한쿼카님의 프로필 이미지

야릇한쿼카

@strange_quokka

  • 야릇한쿼카님의 천사의 속삭임 게시물 이미지

천사의 속삭임

기시 유스케 지음
창해 펴냄

읽었어요
2개월 전
0
야릇한쿼카님의 프로필 이미지

야릇한쿼카

@strange_quokka

섹스 씬이 좀 많긴 하다만, 그래... 이 정도면 참고 볼만하다.
문학 작품에서 씬이 나올 때는 딱 두 가지 감상으로 나뉜다.
꼴리는 씬이거나, 눈꼴사나운 씬이거나.
이 작품의 경우 명백한 후자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의 상실과 방황에 대해서만 나오고, 각 인물들이 어떤 성숙의 전환점을 맞는지는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마치, 모든 상실의 끝은 암울한 미래만 있다는 것 같아서.

상실이 반드시 후회와 미련만으로 점철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실은 인간이 성숙할 계기가 되며,
어떤 상실은 그 자체로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인물들이 상실을 겪는 건 상관없다.
방황해도 좋다.
그러나 그 방황을 표현하는 방식이 only sex인 건 불만이다.

방황을 표현하는 방식이 꼭 섹스여야만 했을까?

타인의 상실에서 비롯된 우울과 그 해답을, 어찌 이리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가하는가?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철학과 확고한 주관이 없는 사람 또는 큰 상실을 겪고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은 <상실의 시대>가 더 나았다.

물론, 내가 외로움과 공허함을 육욕로 해결해본 적 없는 개ssap아싸라. 그들의 상실과 위로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오코의 상실에 대해선 유감이다.
가족과 연인이 모두 자살을 한 것에 대해서는 여타 할 말이 없다. 어쩌면, 얘만큼은 진짜 돌이킬 수 없었을지도.

개인적으론 11장이 가장 좋았다.
철학으로 똘똘 무장한 자아라 하더라도, 상실이 주는 고통이란, 어찌 이리도 무자비한지.

실제로 나오코가 죽기 전 10장의 와타나베는 썩 괜찮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오코가 죽으며, 수직하강 하는 와타나베의 행복 그래프를 느끼며 뭔가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같다.
그것을 또 계속 섹스로 해소할지, 아니면 정신적인 성장을 이룰지는 미지수지만.

그래,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은 것 같다.

그러니 그가, 혹은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는 사람들이,
방황의 끝이 꼭 낭떠러지 뿐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민음사 펴냄

👍 고민이 있을 때 추천!
2개월 전
2

야릇한쿼카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