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컨텐츠팀에서 시리즈로 제작한 책으로 역사, 과학, 생활문화 그리고 경제로 총 4권의 시리즈인다. 이 책은 그 중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5개의 장에 50개의 이야기들로 짧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서 전혀 몰랐었던 새로운 사실들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읽으면서 놀랍기도 했고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나폴레옹은 정말 키가 작았을까?
실제 나폴레옹의 키는 작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키가 작다는 소문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나폴레옹 사후에 부검을 했는데, 그 부검 기록서에 기재된 나폴레옹의 키는 프랑스식 야드파운드법으로 5피에(pied) 2푸스(pouce)였다. 이것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5피트(feet) 2인치(inch)가 된 것이다. 즉,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것은 나라 간의 단위 차이로 생겨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1피에는 32.48센티미터이고 1피트는 30.48센티미터이므로 프랑스 피에는 영국의 피트보다 1.06배(약 2센티미터) 더 계산해야 한다. 프랑스의 5피에 2푸스를 미터로 계산하면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9센티미터이지만, 영국의 5피트 2인치를 미터로 계산하면 약 158센티미터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키가 150센티미터대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실제 그의 키는 169센티미터였고, 당시 프랑스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64센티미터 정도였으니 오히려 큰 키에 속했다. 나폴레옹이 키가 작다는 소문이 확산하는 데 한몫한 것은 주변 환경 탓일 수도 있다. 황제가 된 후에 나폴레옹은 근위대와 늘 함께했는데 당시 근위대는 평균 170센티미터대 후반의 장신들이었다. 이들로 인해 나폴레옹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던 것이다.
아이작 뉴턴의 다른 직업
우리가 흔히 아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는 독특한 직업이 하나 더 있었다. 그에겐 탐정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있었다. 53세에 오랫동안 교수로 몸담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을 떠난 뉴턴은 런던으로 와서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게 된다. 그는 사람이나 상황을 관리하는 일에 학식도 경험도 별 관심도 없었겠지만 조폐국 감사로서는 탁월했다.
그가 조폐국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당시 영국에서의 화폐문제가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전을 금과 은으로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상인들은 조폐국 내부 인사들과 공모해 무거운 동전을 사들여 녹인 후 가벼운 동전으로 만들거나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서 나온 금을 모으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당시 영국 재무장관 윌리험 라운스는 1695년 뉴턴에게 조언을 구했고 이렇게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하면서 화폐를 표준화하는 화폐 개혁을 추진했다. 위조화폐를 방지하기 위해 동전 테두리에 톱니무늬를 새겨넣게 했고 이렇게 하자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사람들이 사라져 위조화폐를 방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한 또다른 일은 위폐범들을 잡는 일이었다. 뉴턴은 위폐범들을 잡기 위해 수사관으로서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뉴턴은 1696년부터 3년간 조폐국 감사로 재임하면서 위폐범 수십명을 추적, 체포하고 기소했고 1699년부터 죽기전인 1727년까지 약 39년간 영국 조폐국장으로 일했다. 천재 과학자가 탐정으로 위페범을 추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달러는 미국의 돈이 아니다?
달러는 미국의 화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그런데 달러는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달러는 원래 유럽에서 통용되던 은화를 가리키던 용어였다. 은화의 원조는 독일에서 화폐로 쓰던 요아힘스탈러(joachimsthaler)인데, 탈러(thaler, taler)라고도 불렀다. 이 이름은 지금은 체코의 영토인 보헤미아 지방의 도시 성 요아힘(St. Joachim)에 있는 한 골짜기에서 유래했다. 1516년 이 골짜기에서 양질의 은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산골 촌락을 이루자 이 지역을 간단히 ‘골짜기(das Tal)’라고 불렀다. 몰려드는 인파로 주민 수가 약 5,000명에 달하자 루트비히(Ludwig) 왕이 이 촌락을 자유 산악도시로 격상하면서 ‘요아힘의 계곡’이라는 의미로 ‘요아힘스탈(Joachimsth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은화가 요아힘스탈을 따서 요아힘스탈러 또는 탈러그로셴(thalergroschen)이라고 부르다가 탈러로 통일된 것이다.
탈러의 품질은 전 유럽에서 호평을 받아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까지 다양한 탈러가 발행되었다. 탈러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주화로 떠오르면서 점차 화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탈러는 국경을 넘어 다른 고가 은화들의 이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에서는 ‘tallero’, 네덜란드에서는 ‘daalder’,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daler’, 영국에서는 ‘dallar’로 각국에서 발행하는 은화의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달러의 기원이 된 독일은 1873년에 탈러에서 마르크로 화폐 이름을 바꾸었다.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달러가 어떻게 미국 화폐가 되었는지는 미국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였던 시기는 물론이고 독립을 선언한 1776년 이후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될 때까지도 독자적인 화폐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1785년 7월 6일에 대륙 의회에서 “미합중국의 화폐 단위는 달러로 지정한다”는 내용을 공표했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등의 외국 화폐와 각 주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혼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92년 달러를 미국의 공식 화폐로 지정하면서 근대 국가 최초로 10진법 화폐체계를 도입했다. 그 후 1913년 미국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은행을 출범하고 흔히 달러로 일컬어지는 연방준비권을 발행하면서도 이 전에 발행된 국법은행권, 금증서, 은증서 등의 유통을 허용해 화폐체계는 여전히 복잡했다. 그러나 이후에 연방준비권을 제외한 나머지 화폐의 추가 발행이 중지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유통 지폐의 99퍼센트가 연방준비권, 지금의 달러로 단순화된 것이다.
달러가 미국 공식 화폐로 채택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 파운드화에 반감을 갖고 있었기에
당시 에스파냐의 중남미 식민지 통화로 널리 유통되고 있던 다레라 은화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다. 다레라의 영어 발음이 바로 달러다. 미국이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반감으로 달러화를 채택했던 사실은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조선시대에도 국민투표가 있었다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기록이 조선시대에 이미 등장한다. 때는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때에 있었다. 1430년에 세종대왕은 조세제도의 개혁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세종대왕은 기존의 조세제도인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공법을 도입하고자 했다. 답험손실법은 관리나 토지 주인이 직접 농작의 상황을 조사해 보고하면 작황의 손결에 따라 세금을 덜어주거나 면제하던 세율 규정법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조사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조작과 부정부패가 많이 발생했다. 세종대왕이 추진한 공법은 전국 각 도를 토질에 따라 나누고 모두 27종의 전등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해 조세하는 제도로 세종대왕은 이 공법의 제정을 두고 백성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국민투표의 결과 찬성이 57.1%로 나왔고 세종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결국 시행까지 17년이 걸리게 되지만 백성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한 세종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장점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짧고 잠깐씩 읽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루하고 긴 역사책이 아니라 흥미롭고 짧고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 출퇴근이나 이동 시 읽기에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EBS BOOKS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3
알면 똑똑해지는 과학 속 바하인드 스토리
이 책은 EBS 오디오 콘텐츠님에서 만든 4군의 시리즈 중 한권이다. 이 시리즈의 모든 책들이 50개의 주제에 대해 5개의 챕터로 나눠 이야기해준다. 50가지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처음 알게된 많은 사실들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도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
혹시 히포크라테스환이란 단어를 아는가? 히포크라테스는 환관들에게는 대머리가 없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는 탈모와 성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이다. 히포크라테스도 대머리로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머리인 사람이라도 머리가 남아있는데 옆에서 띠모양으로 뒷통수까지 이어지는 그 대머리의 머리 모양을 히포크라테스환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번식을 시도하는 식물
자살을 해서 오히려 종족을 번식하려고 하는 식물이 있다. 쉬오크와 뱅크스소나무가 그런 식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린 터전에서 불이 나기만을 기다린다. 이 식물들은 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솔방울을 열어 씨앗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불이 났을 때 온도가 높아져 상승기류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은 이 식물들은 자신들의 씨앗에 날개를 달고 불로 만들어진 상승기류에 날개 달린 씨앗을 날려보낸다. 이 식물들이 불이 난 이후 씨앗을 퍼뜨리는 또 다른 이유는 경쟁자들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불에 타 죽으면 새로운 새싹은 경쟁자들이 차지했던 햇빛을 빼앗아 올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불타 죽은 경쟁자들은 거름이 되어 새싹의 생장을 돕는다.
쉬오크와 뱅크스소나무가 종족을 번식하려고 불을 이용하는 반면, 스스로를 불태워 자살을 택하는 꽃도 있다. 북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와 지중해 연안에 서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인 '시스투스'가 그 주인공이다. 시스투스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시스투스는 자신이 서식하는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 밀도가 높아지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주위가 빽빽해지고 외부 온도가 32도 이상 올라가는 여름 무렵이면 내부에서 오일을 만들어 뿜어낸다. 이 오일은 35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불이 붙는 강력한 휘발성 오일이다.
이 오일에 불이 붙어 시스투스의 몸이 불타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던 다른 식물들도 화재로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만다. 고온 건조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가끔 자연발화로 불이 나는데 시스투스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시수트스가 자신만이 여유로운 공간에서 생존하고자 할 때 왜 자살을 선택할까? 그 이유는 바로 씨앗에 있다. 시스투스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 전에 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내화성 씨앗들을 몸속에 숨긴다. 시스투스는 알칼리 토양에 강한 식물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경쟁자들이 모두 불타서 없어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싹을 틔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고 결국 재가 되어 후손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유독 고양이가 귀여운 이유
사람들은 고양이처럼 작고 둥글둥글한 동물 또는 아기를 보면 귀엽다고 생각한다. 이는 '베이비 스키마'라는 용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베이비 스키마는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정립한 개념이다. 스키마는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인지적 개념 또는 틀을 의미하며 도식이라고도 한다. '유아도해'라고도 불리는 베이비 스키마는 사람이나 다른 영장류가 육아 행동을 일으키는 특징을 조합을 나타내는 도식이다. 육아 행동은 동물이 새끼를 기를 때하는 행동으로 젖을 먹이거나 외부 위협에서 보호하는 행위를 말한다. 포유류나 조류는 베이비 스키마의 특징을 갖고 태어난다. 태어난 후 일정 기간 어미의 보호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미에게 육아 행동을 유도하고 어미의 보호가 없어졌을 때 다른 동물에게도 보호 본능을 느끼게 하여 살아남기 위해 생긴 특징이다.
성체 포유류나 조류 또한 이런 유도에 반응하도록 신경체계가 조직화되어 있다. 그리고 성체가 되면 이러한 특징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성체가 되어도 베이비 스키마의 특징을 유지하는 동물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양이이다. 고양이가 성체가 되어도 귀여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색, 셸레 그린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색, 그 이면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당뇨, 클로드 모네의 실명, 빈센트 반 고흐의 정신병은 모두 이것을 즐겨 사용한 결과였다. 정복자 나폴레옹도 이것때문에 방 안에서 죽어갔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바로 '셸레 그린'이라는 초록색 물감이다.
셸레 그린은 19세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물감, 벽지, 옷, 장신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흔히 쓰이던 녹색 안료이다. 비소를 연구하던 스웨덴의 과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1775년 녹색 화합물 비산구리를 발견한 데서 유래했다 셸레는 이 초록색에 자신의 이름을 따 '셸레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색은 곧바로 인기를 얻어 원단, 벽지, 종이 , 염료, 음식 색소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셸레 그린을 즐겨 사용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는데 많은 인상파 화가가 당시 물감에 쓰였던 수은, 납, 비소 등에 중독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세잔은 만성 비소 중독으로 당뇨병을 앓았고 모네는 눈이 멀었다. 반 고흐는 정신병을 앓았고 그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에 그는 물감을 직접 먹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이들이 비소에 중독되었다는 견해는 신빙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런 위험한 비소가 들어간 셸레 그린을 19세기엔 많이 사용했다.
19세기 초에는 영국의 거의 모든 주택에서 녹색 벽지가 사용되었다. 또한 초록색의 드레스를 많은 귀부인들이 입으며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20세기 말쯤에 와서야 셸레 그린이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됐다. 죽음의 녹색의 충격은 그 이후로 독극물을 상징하는 색이 되어 오늘날 독극물 표시에 녹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원래 빨대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만든 것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시원한 맥주이다. 요즘은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맥주를 컵에 따라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빨대가 원래 맥주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빨대는 기원전 3000년경 최초의 문명이었던 수메르에서 처음 사용했다. 수메르 유적 발굴 도중에 수메르인이 맥주를 제조하고 나서 큰 병에 맥주를 담아 긴 빨대를 꽂아 마시는 모습이 새겨진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신의 선물이라고 여겨 주식처럼 즐겼다. 당시 생산하는 보리의 40%가 빵이 아닌 맥주 제조에 사용될 정도로 맥주는 수메르문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럼 수메르인들이 맥주를 왜 컵이 아니 빨대를 사용해 마셨을까? 그 이유는 당시 맥주를 제조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구운 빵을 가루로 만들어 물을 붓고 효모를 첨가해 맥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맥주에 침전물이나 부유물이 많았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다가 길고 가는 짚을 꺾어 중간층에 있는 맥주만을 섭취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풍습은 이집트로도 이어져 이집트의 왕들도 빨대로 맥주를 마셨고 이 빨대가 유적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우리가 빨대라고 부르지만 영어로는 짚이라는 뜻의 스트로를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다.
간단하게 살펴본대로 이 책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짧고 재미있는 50개의 이야기들은 잠깐잠깐씩 읽기에도 참 좋은 책이다.
알면 똑똑해지는 과학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EBS BOOKS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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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
알면 똑똑해지는 생활문화속 비하인드 스토리
이 책은 EBS 오디오 콘텐츠팀에서 제작한 책이다. 총 4권의 시리즈 중 한권으로 이 책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것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총 다섯개의 장에는 50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에서부터 남성과 여성의 기호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혀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고 밑줄까지 쳐가면서 읽게 되는 책이다.
가운뎃손가락이 욕이 된 이유
원래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리는 것이 욕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운뎃손가락을 펴서 가리키는 것은 그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의미했을 뿐이다. 더구나 그리스 사람들은 동성애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 가운데 하나로 바아들였으므로 가운뎃손가락을 펴는 것에 모욕이나 욕설의 의미는 들어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로마시대에 가운뎃손가락이 비로소 모욕을 뜻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나중에는 포악스럽게 낭비를 일삼아 원성을 산 3대 황제 칼리굴라가 관련되어 있다. 칼리굴라의 충성스러운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는 평생 결혼하자 않았는데 생김새가 단아하고 목소리까지 가늘었다. 칼리굴라는 이런 카시우스가 손에 입맞춤할 때마다 가운뎃손가락을 펴 보이며 그를 동성애자라고 놀렸다. 그러자 궁궐의 다른 사람들도 따라하면서 가운뎃손가락을 쭉 펴보이는 행위가 점점 성적인 모욕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로마의 세력권이 미치는 곳으로 퍼져나갔다. 칼리굴라는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결국 카이레아를 비롯한 신하들의 손에 삶을 마감하고 만다.
장례문화 속에 남아있는 일본의 잔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5년간 지속된 일제 강점기는 우리 문화속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국화로 둘러싸인 영정 사진, 유족들이 착용하는 완장이나 리본, 삼베 수의 등이 장례식을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전통처럼 인식되는 장례문화가 일제 문화의 잔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 전기 신숙주와 정척 등이 오례와 예법과 절차에 관해 서술한 책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당시에는 생전에 고인이 입었던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사용했다. 왕은 곤룡포를, 관리는 관복을, 여성은 혼례복을 수의로 사용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수의의 재료는 삼베가 아니라 비단이나 명주 등이 쓰였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삼베옷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삼베를 수의로 지어 고인에게 입히는 풍습은 일제강점기 때 시작되었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의례준칙은 조선의 전통 생활양식 중 각종 의례를 개선한다며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강권했다. 고인을 위한 수의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비단과 명주 사용을 금지하고 삼베로 수의를 만들 것을 강제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을 통제하고 전통문화를 말소하여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일본의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다.
수의가 삼베로 바뀌면서 유족이 입는 상복도 바뀌었다.
오늘날 고인이 입는 삼베옷이 원래는 유족이 입던 상복이었다. 삼베옷에는 고인을 더나보낸 죄인이라는 의미가 있었는데 그렇기에 왕을 잃은 신하나 부모를 여윈 자식이 입었다. 죄인을 상징하는 삼베옷을 고인에게 입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례문화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수의만이 아니다. 유족이 착용하는 완장과 국화로 치장한 영정 사진 등도 일제강점기의 흔적이다. 유족 완장은 삼베와 마찬가지로 의례준칙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잔재는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이 남아있다.
남성과 여성의 기호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우리가 흔히 접하는 남성과 여성의 기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를 성별의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 명명하고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다신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이다. 그는 1751년 발표한 논문에서 식물의 암술과 수술을 구분하기 위래 이 성별 기호를 사용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성별을 구분하는 용도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기호를 린네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당시 청문학에서 남성을 뜻하는 기호는 화성을, 여성을 뜻하는 기호는 금성을 나타내는 데 쓰이고 있었다. 린네가 천문학에서 쓰이던 이 기호들을 동식물의 암수를 구분하기 위해 차용하여 사용한 것이다.
화성과 금성은 로마신화의 마르스와 비너스를 의미한다. 마르스는 전쟁의 신이므로 그를 상징하는 창과 방패 모양을 본떠 화성을 나타내는 남성의 기호가 만들어졌고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의 손거울 모양에서 금성을 뜻하는 여성의 기호가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유래를 가진 기호 중에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익숙해진 블루투스 기호가 있다. 이 기호는 10세기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이었던 하랄 블로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블로탄은 푸른 이빨이라는 뜻인데 그가 평소에 블루베리를 즐겨 먹어 치아가 항상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블로탄을 영어식으로 번역한 단어가 블루투스이다. 블루투스 개발자는 당시 난립하여 여러 무선 통신 규격을 하나로 총합하기를 원하여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통일한 강력한 왕 하랄 블로탄의 이름에서 블루투스를 따왔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도 유래를 알고나면 조금 더 의미있게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바이킹 족이 바꾼 영어
원래 영어는 켈트족의 언어였다. 켈트족이 기우너전 6~4세기 무렵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로 진출했다. 기원전 55년에 로마가 브리튼 섬을 정복하여 켈트족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4세기에 게르만족이 서로마제국을 침략하자 로마는 브리튼에서 군사를 철수시켜 서로마로 향한다. 로마가 사라지고 브리튼에는 켈트족의 부족간에 전투가 계속되었다. 켈트족은 앵글로색슨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원주민들을 내쫓고 브리튼섬 남쪽을 차지해 버렸다. 앵글족이 사는 섬이라 잉글랜드라 불렸다.
앵글로색슨족은 게르만족 특유의 부족 단위생활을 유지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여러 왕국이 대립하게 되고 이런 혼란을 틈타 바이킹이 쳐들어왔다. 바이킹과 무려 871년간 아홉번의 전투를 치르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바이킹과 활발한 교류를 하게 되었다. 당시 앵글로색슨족이 사용하는 고대 영어는 독일어에 기초한 게르만어였다. 그래서 단어의 복수형태가 불규칙했다. 그래서 바이킹족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바이킹족은 복수 구조가 매우 복잡한 고대 영어를 익히기 어려우니 영어 문법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단어 복수에 s를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부 단어들, 예를들어 children 이나 teeth 등의 기억하기 쉬운 단어들은 고대 영어의 복수형을 간직하게 되었다.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화투에 담긴 역사적 사건, 더치커피를 개발한 나라, 하이힐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등등 아주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는 책이다. 가볍게 읽기 좋고 50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잠깐잠깐 이동할 때 읽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잘 모르고 있는 지식들도 쌓일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알면 똑똑해지는 생활문화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EBS BOOKS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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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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