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는 나 스스로는 절대 집어들지 않았을 주제의 책이다. 책을 읽게 된 계기에 대해 적어보자면 먼저 한 친구를 소개해야 한다.
벌써 전전전 회사의 입사 동기이자 같은 팀 동료였던 최ㅇㅇ이라는 친구는 무려 95년생의 확신의 MZ 친구다. 하고싶은 말은 무조건 해야하고 그 과정에 편집은 없다. 전남 광주 출신에, (정치 성향이) 극우파인 척 하는 좌파에, 일베충인 척 하는 혐일베충(일베충인 척 일부러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일베 돌려까기 능력자), 엄청난 골초, 그리고 온 몸을 도화지 삼아 알록달록 문신이 있는, 기분 좋을때는 존댓말, 가끔은 반말도 툭툭해서 나의 소심한 심장도 몇 번 떨어진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 친구는 문예창작과 출신이었는데, 자취집에 가면 벽 한 켠이 다 책이었다. 그리고 시, 에세이, 소설 등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두루두루 잘 알고있는 아주 독특하지만 확실하게 똑똑한 사람이다. 아무튼 소셜미디어의 콘텐츠 속에, 세상 풍파 속에 파묻혀 살아가다가 책이라는 것을 읽어야겠다고 생각이 들때면 이 친구에게 종종 연락해서 추천도서 리스트를 받는다.
이 책은 어린이책 편집자로, 그다음엔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 그렇지만 아이는 없는 딩크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에세이이다. 누구보다 아이들과 가까이 있지만 직접 낳아 기르지는 않는 (일상에서 아이들과 전쟁을 직접적으로 벌이지 않는) 제3자의 입장에서 말 그대로 ‘어린이라는 세계’를 어른들이 잃어버린 동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책을 펼쳐봤다. 어린이들은 마음이 순수하다. 순수한 마음에서는 상대방의 말이나 마음을 곡해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어른들보다 더욱 밝은 눈으로 명확하게 세상을 읽는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운동화 끈을 묶는 법을 막 배운 현성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른의 입장에서 현성이는 신발끈을 잘 묶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현성이에게 어른이 되면 신발 끈을 잘 묶을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현성이는 대답한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들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이 구절만 봐도 내 삶과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조금 지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하라는 말은 지금 못한다는 말인가?
- 내가 지금 잘 못해서 답답하다는 말인가?
- 내가 잘하든 못하든 당신에게 피해준 일은 없을텐데 저런 말은 왜 하는 걸가?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나의 컨디션에 따라 이렇게 속마음은 요동치는 날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현성이는 어떻게 반응했지?
‘그것도 맞는데’
상대방의 말을 곡해하지 않고 바로 동의를 한다. 당신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고 동의하기가 요새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이 된 내가 잃어버린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닐까.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주눅들지 않고 현재 나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남이 평가하는 나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현실에 빗대어 바라보는 모습이 멋지다. 어린이의 이유없는 당당함, 허풍, 부풀리기는 귀엽고 어처구니 없지만 어린이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 같다.
‘어른들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또한 이 책에서는 ‘어린이’를 무의식적으로 차별하고, 그 능력을 깎아내리는 어른들에 태도를 은연중에 꼬집는다.
어린이가 시간을 지체하면 꾸물거리는 것으로 보는 어른들은 아마 기다려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것일지도 모른다는,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주면, 어린이들은 우리와 다른 어른이 될 수 있을거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성인이 된 후 어린왕자를 다시 읽었을 때, 어른이 되고 잃어버린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이 먹먹해 졌던 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이따금 삶에 지쳐 마음속의 가시가 마구 돋아나는 순간이 찾아올 때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
힐링이 필요할 때
추천!
3
이 책의 장르는 현대 사회 회사원 판타지물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일을, 어떻게, 왜 해야하는지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덜컥 직장인이 되어버린 혼란하고 어지러운 리카씨의 모습이 나와 내 친구들의 사회 초년생 시절 모습과 닮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지식’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고 공부했지만, 어느 누구도 ‘지혜’를 알려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삶을 살아가는데는 지식보다는 지혜가 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현실에서는 이런 지혜를 얻기 위해 구르고 달리고 밟히고 산전수전을 겪어봐야 연단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 책의 주인공인 리카씨는 고바야시 서점이라는 곳에서 고바야시 유미코씨를 통해 보다 쉽게 삶의 지혜를 배워간다. 이게 바로 판타지.
책의 도입부를 읽을 때는 아주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분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골랐는데, 아주 예전에 읽었던 일본 자기 계발서 몇 권의 내용이 떠오르며 직장에 대한 일본식 정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기왕 할 거라면 완벽하게 하라, 99퍼센트도 부족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오늘은 어제와 같을 수 없다
<일본전산 이야기, 김성호> 남보다 두 배로 일하라, 휴일도 반납하고 일하라, 신입 사원은 쉴 생각을 하지 마라' 등
하지만 조금 더 읽다보니 소설 특유의 부드러운 접근 덕분인지 아니면 나도 조금은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결국 나도 기성세대가 된 것인지 이야기를 통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리카씨의 모습에 공감하며 대리경험을 하며 아직도 미숙한 나의 모습에 반성하게 된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될때, 딱히 다른 길이 없다면 그저 열심히 가보는 것도 삶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어본 적이 있다. 매사에 자기확신이 없던 리카씨가 유미코씨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의 단계를 넘어설 때, 지금의 나의 모습과 겹쳐 보며 위로를 받았다. 또한 이 책이 베스트셀러까지 올라간 까닭 역시 나와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삶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 책에서 주인공 만큼이나 흥미로운 인물은 고바야시 서점의 주인인 고바야시 유미코씨다.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주 씩씩한 여성이다. 단지 긍정에너지만으로 현실을 살아가기엔 과한 설정이라거나 주인공 버프로 고바야시 서점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실 이 소설은 현실과 픽션이 반반이다. 즉, 주인공 미카씨는 픽션이지만 고바야시 서점은 진짜 있기 때문이다.
서점이면서 우산을 팔기 시작한 사연, 큰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작은 서점끼리 연대하는 모습 등등 목표를 향해 욕심만 내기보다는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등 유미코씨에게 배울 점이 많다. 내 삶에서도 도전을 피하기보다 가능성을 바라보는 방법을, 나만을 위한 길을 가기보다 함께가는 길을 찾는 방법을 배워야 겠다.
또한 미카씨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그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조언과 위로를 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생각하는 옳은 길을 강요하기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삶의 고비에서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직장인들이 다시금 열정을 되찾아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때 쯤 다시 한번 기분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평화로운 책이다.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현익출판 펴냄
👍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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