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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21)의 표지 이미지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김멜라, 김지연,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 (지은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어쩌다 시기를 놓쳐서 그냥 안 읽어야겠다 했는데 다시 보니 일곱 편 중 여섯 편을 이미 읽은 나.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소설 보다 : 겨울 2021』(문학과지성사)에서,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는 『소설 보다 : 봄 2021』(문학과지성사)에서, 김지연의 「사랑하는 일」은 『마음에 없는 소리』(문학동네, 2022)에서, 김혜진의 「목화맨션」은 『에픽 1호』(다산북스, 2020)에서, 박서련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민음사, 2022)에서,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소설 보다 : 여름 2020』(문학과지성사)에서 읽었어. 한정현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 2020)에 실려 있고 이 소설집은 내게 있지만 아직 읽지 않았지.

문예지나 단행본으로 이미 읽었던 작품들이 많았고, 이제는 2021 젊작 읽지 않을 수 없었지. 나 단편 다시 읽는 거 꽤나 좋아한다? 복기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

대상을 받은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 관해서(만) 이야기해보자. 이 작품 처음 읽었을 때 어땠지? 강렬한 파토스를 지닌 작품은 아니구나, 조금은 밋밋하지만 그래도 유려하게 흘러가는 소설이구나 생각했을까. 이번엔 그때보다 더 좋았다.

"내가 절대로 저 사람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없으리라는 것, 그러니까 어떤 삶은 그저 화려하고 어떤 삶은 그저 평범히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납득하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나만 모르고 있던 당연한 사실이었다." (48쪽) 이 문장이 좋았고, 요즘은 화려한 '저 사람'보다는 평범한 '이 사람'의 이야기가 끌린다. 누군가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지긋한 평범함에 개탄하겠지만, 그에게도 "가끔은 무언가 이야기 같은 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내 인생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55쪽)이 들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도 어떤 이야기가 통과하고 있을 거라고.

소설의 결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자신이 겪었던 어떤 비극이 젊은 여성 세대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구원자 여성 어른을 자처하'"(72쪽)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러나 젊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어떤 중년 남성이 아닌) 또 다른 젊은 여자였고, 두 여자아이는 "이내 방향을 틀어" "사라진다"(58쪽). 여태껏 자신의 과거를 회상해온 인물이 이제 고개를 들어 젊은 여성 세대를 바라본다. 그들은 '나'의 과거, 그러나 그들은 현재를 살고 '나'와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후술되지 않고 소설은 마무리되지만, 어째서인지 어떤 목소리가 자꾸 울리는 것 같다.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우리가 겪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거야." (56쪽)

전하영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와 그가 기록하고자 하는 목소리에 성실하게 발맞춰 나가고 싶다.
2022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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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1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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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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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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