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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은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으면서 많은 실망을 했다. 뭐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생각했고 정확히 그렇게 흘러갔나. 물론 나는 한 번 집어 든 책은 웬만해서 끝까지 읽는 사람이기에! 그냥 읽었다. 이 책은 너무 조악하게 쓰였다.

새내기였을 때 동인천에 간 적이 있다. 당시 국문과 전공기초 수업에서 한국근대문학관으로 답사를 갔지. 나는 친구와 뒷문으로 슬쩍 빠져나와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을 활보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찾아보니 대불호텔전시관은 지척에 있었다. 그때는 거기 그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점심으로 짬뽕을 먹고 인천역에서 송도로 돌아왔다. 그게 다였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그때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번은 가보았던 곳이라서, 소설의 배경을 상상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 거길 거닐면서 여긴 한 번은 더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상하게도 그 감각이 아직 뚜렷하고 명징하다. 이 소설을 통해서 거길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다만 이 ‘여행’을 완수하고 싶어서 끝까지 읽은 것인지도.

*

이 책은 소설가인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가-소설’이다. 책은 프롤로그, 1장, 2장, 3장, 에필로그, 작가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가-소설’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작가의 말이 될 수밖에 없나? 이 책의 진짜 작가의 말은 되려 참고문헌 같다. 1장과 3장 역시 소설가 ‘나’가 등장하며, 2장에서만 화자와 중심인물들이 달라진다(본격적인 ‘대불호텔의 유령’ 이야기). (내용 혹은 흐름의 명시적 구분이 이야기가 진행되며 조금씩 무화되는 지점들이 흥미로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소설가-소설’을 읽을 때면 이 소설 혹은 소설가에게 특이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소설을 써 내려가는 과정 자체가 소설이기에, 독자인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 내려갈 때 무언가를 함께 완성하고 완결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이 담지한 이야기가 이런 형식과 방식으로 쓰여야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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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고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2022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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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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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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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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