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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나만 불편해?
김효진 지음
이후 펴냄
드라마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장애를 다룬 드라마가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예전이었다면 장애인이 가정에 있다면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숨겨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 범벅이 이젠 대중 매체를 통해 감성팔이 식이 아니라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 가정에서부터 교육 기관까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기에 당연히 누려야 할 장애인의 권리조차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부끄럽지만, 장애인을 보면 불쌍하고 도와줘야만 하는 존재로 봤었다.
내 인식이 바뀌게 된 대학교 1학년. 이전까지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손에 꼽았기 때문에 이전의 교육 기관보다는 약간 더 많아졌다. 교양 강의 중 같은 팀이었던 지체 장애 학우가 있었다. 처음엔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에 비장애 학우들보다 장애 학우의 말과 행동에 더 집중하고 도움의 순간이 있으면 돕기 시작했다. 서로 점점 더 친해지며 장애 학우는 나에게 강의 학습 도우미가 되어주는 것은 어떤지 제안했고, 받아들였다(여기서 말하는 학습 도우미란 나라에서 실행하고 있는 근로 학생이다).
교양 강의 진행 방식은 독특했다. 같은 학번의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강의를 들은 후, 각 팀끼리 강의실로 이동해 토론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강당과 강의실에서의 이동이었다. 강의 초반까지만 해도 장애 학우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았는지 같은 건물 내에 있는 강의실이 아닌 내리막 경사로와 주차장을 건너야 하는 건물에 3층 강의실을 배정한 것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그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야 할 학생이 사용하지 못해 우리 팀의 토론 시작은 늘 10분 이상 미뤄졌다. 장애 학생 지원 센터에 상황을 설명해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같은 건물로 장소를 옮기고, 사람이 붐벼 제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3분 정도 먼저 이동할 수 있도록 말씀드렸다. 말씀드린 대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에 다행히 다음 강의부터는 원활한 이동이 됐다.
그러나 부딪히는 벽이 상당했다. 시각 장애인이 혼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현재 자신이 타고 있는 층수는 대부분 청력에 의존해 알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하며 층수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학교 건물 중 하나가 음성 기능이 없어 혼자 탄 엘리베이터가 몇 층인지를 알 수 없어 무척 곤란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렇게 비장애인 중심으로 지어진 학교와 철저히 비장애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 집단에게 도대체 장애인의 권리는 이렇게 계속 설명하고 이해시켜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더하여 장애 학우와 학교의 불편한 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강의 이동을 바라보며 이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됐다. 비장애인, 장애인 모두 다니도록 허가된 학교가 실은 장애인의 생각은 하지 않은 채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화가 났다. 그래서 다른 장애를 가진 학생의 강의 보조를 하며 그들이 느끼는 불편점을 함께 장애 학생 지원 센터에 건의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놀란 점은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휠체어를 이용한 지체 장애인(계단 이용이 아예 불가능함) 혹은 케인을 이용하는 시각 장애인(계단이 건물 내 한 군데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사람이 붐벼 서로 부딪히며 지나다닐 정도이기에 위험함)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이용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럴 때마다 양해를 구하고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지만, 생색내며 비켜주는 모습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장애인을 곁에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인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 나아갈 사회는 어느 정도일까. 장애 인식에 대한 개선이 무척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더 느꼈다. 흘러가듯 하는 대화 속에서 장애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진 않았는지, 평소 장애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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