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사랑하는 소설책을 평소 친분이 두텁지도 않았던 내게 내어준 너에게 고마워. 이렇게 아름다운 인물과 문장들이 넘쳐나는 책이기에 너는 이 책을 좋아했겠지만, 나는 내가 여름을 닮았다는 너의 편지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좋아했어.
귀퉁이가 잔뜩 접힌 책을 보면 설레곤 해. ‘시간의 궤적’을 따라가며 읽는 느낌이라서. 귀퉁이가 접힌 페이지에는 어김없이 와닿는 문장이 있더라고. 물론 네 맘에 가닿은 문장이랑 다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타인을 만나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인물들이야. 이 용감한 태도를 견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목표 중 하나이지만, 관계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나는 어떤 무력감을 느껴. 우리는 이 필연적인 몰이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가 타인을 더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릴까봐 두려워.
아마 너도 이런 무력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쌓여가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오해의 숲을 함께 헤매어보자고 써주어 고마워.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앞으로도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실패하고 관계에서 넘어지겠지만 결국엔 다시 일어날 거야. 무릎을 턴 다음 넘어지는 게 당연한 것임을 깨닫겠지. 그리고는 예견된 미래일지라도 두려움을 감수하고 계속 타인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일 거야.
너의 편지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다짐을 또 해봤어. 멀지 않은 미래에 연희동에서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