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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이란 말이 좀 그렇죠

김홍, 서이제, 손원평, 이서수, 임선우, 장진영, 장희원, 한정현 (지은이) 지음
은행나무 펴냄

'관종'이라는 키워드로 느슨하게 묶인 여덟 편의 소설. 좋아하는 작가도 있고, 반가운 작가도 있고, 사랑하는 작가도 있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접하는 작가는 없네. 많이 성장했다. 나 자신··· 이런 마음도 함께.)

*

김홍의 「포르투갈」. 김홍다운 소설이었다.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그렇게 마주한 마지막 문장에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지. 별안간 박상의 장편소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작가정신, 2021)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책 진짜 재미있으니까 꼭 보시길. 눈물 나. (갑자기?)

서이제의 「출처 없음, 출처 없음.」. 「#바보상자스타」(『문학동네』 2021년 봄호) 같은 느낌이기도. 이번 소설에서는 내용이 '······'로 구분되었는데, 그때마다 화자가 달라진다. 누가 누구 이야기를 하면, 다음에는 그 누구가 또 다른 누군가에 관해 말하는 방식으로. 볼드체를 도입한 방식도 흥미로웠다. 서이제 작가 이런 이야기 참 잘 쓴다. 두 번째 소설집 기다려요!

손원평의 「모자이크」. 재밌었다. 고백하자면, 장편소설 『아몬드』(창비, 2017)를 세간의 평가만큼이나 즐겁게 읽지는 못했던 터라, 작가에게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나는 백온유의 장편소설 『유원』(창비, 2020)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음··· 이번 소설은 무척 재미있었고 소설집 『타인의 집』(창비, 2021)을 기대하게 했지. "아, 근데 오해는 마세요. 제가 비참한 사람들, 불행과 가난을 짊어진 사람들을 대변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라고요. 누군가를 대변하고 대표하고 그런 거 촌스럽잖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제 얘기일 뿐이랍니다." (79쪽) 너무 공감되는 문장. 어쩌면 이 '관종' 앤솔로지를 아우르는 문장일 수도.

이서수의 「젊은 근희의 행진」. 「미조의 시대」(『Axt』 2021년 3/4월호)와 배경이 비슷한 것 같다. 못지않게 좋았고. "손편지를 써주면 뭐 하나. 아이들은 이미 이 시대의 충실한 구독자가 되어버렸는데. 어른들을 훨씬 앞질러 가버렸는데. 구독자 수가 권력이 되어버린다는 걸 알고 있고, 그 권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어른보다 잘 아는데." (124쪽) 내 말이. 작가가 여전히 '시대'라는 키워드를 쥐고 있는 게 흥미롭다. "미조야, 너 그거 아니? 인간을 육체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시대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 문장. 우리의 '시대'에 관해 이 작가가 더 써주었으면 좋겠어!

임선우의 「빛이 나지 않아요」.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민음사, 2022)에 실렸고 그때는 엄청 좋았는데 이번에는 평범했다. 아무래도 이미 읽었던 내용이기도 했고, 다른 작가의 작품과 함께 실렸기 때문이겠지. 이만 줄일게.

장진영의 「첼로와 칠면조」. 내가 정말 진짜 너무 사랑하는 장진영 작가···의 근작.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장진영 특유의 문체가 여전했다. 이번 작품은 그간 접했던 작가의 작품보다는 훨씬 라이트한 느낌이었고 음··· 이렇게도 잘 쓰시네, 얼른 소설집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오래 많이 써주세요!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작년 여름 썼던 「돌봄과 개입과 구원의 이야기 - 장진영論」을 읽었다. 음··· 잘 썼네. 궁금하면 블로그에서.)

장희원의 「남겨진 사람들」. 2020년 젊은작가상을 받았던 「우리의 환대」(『Axt』 2019년 3/4월호) 이후 처음 접하는 작품인데 음··· 인상 깊지는 않았다.

한정현의 「리틀 시즌」. 「쿄쿄와 쿄지」(『문학과사회』 2021년 봄호)와 이어지는 연작인 듯하다.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 2019)의 '한주'와 '유키노'도 등장해서 반가웠고. 한정현의 거대한 세계관의 일부분을 살짝 맛본 것 같아 더없이 궁금해진다.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 2020)을 출간 당시 사놓고 아직도 읽지 않은 나. 이제는 망설임 없이 '한정현 월드'에 입장해야 할 때인지도.

*

사실 나는 '관종'이다. 짐작하건대, 아마 우리는 모두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관심은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여덟 명의 작가는 관심이라는 것을 지금-여기의 사람들이 어떻게 주고받는지를 소설을 통해 살핀다. 근래 본 앤솔로지 중에 단연 흥미로웠다. 그리고 2022년 여름의 초입에 내게 당도한 이 '관종' 앤솔로지가 더없이 적확한 시기에 출간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게 다 꼭 내 얘기 같고, 꼭 네 얘기 같아서.
2022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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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1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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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1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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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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