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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생활

송지현 (지은이) 지음
민음사 펴냄

2022년 5월 21일 일기를 살펴보자.

"토요일 오전 한의원에서 나는 어제 빌려온 『동해 생활』 읽는다. 읽으면서는··· 내가 언제까지 송지현을 좋아하게 될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고 당장 동해에 가고 싶었지. 1월에 동해를 가려고 했는데 못 갔다. 어제와 오늘 내가 대구에 가지 못한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는··· 동해에도 대구에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함께.) 한의원에서 나와 마트를 들렀다가 집에 돌아온다. 할 일을 하다가 송지현의 산문을 읽는다. 아···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네. 점심 간단히 먹고 설거지하고 다시 송지현을 읽는다."

*

송지현의 소설집 두 권을 다 읽고는, 산문집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째 소설집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쓰지 않을 이야기」가 무척 자전적인 소설처럼 읽혔기 때문. '송지현 월드'에 관한 모종의 힌트 혹은 에필로그가 절실했던 나는 망설임 없이 마지막 책을 빌렸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송지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어도 그랬을까? 일단 난 그럴 수 없게 된 사람이라 모르겠고, 그의 단편 열여덟 편을 다 읽고 나서 읽으니까 정말이지··· 이만큼 재미있는 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동해에서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생활기가 스물일곱 편. 그의 성실하고 안온한 친구들의 추천사 세 편. 모두 합해서 서른 편을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빨리 읽으면 분명 후회할 걸 알면서도··· 끝이 없는 것처럼 달려. 왜? 재밌으니까. 재밌으면서 눈물 나니까. 눈물 나면서 웃기니까. "이제는 우리 삶 속에서 동해라는 곳을 대여하는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188-189쪽) 작가는 이렇게 '동해 생활'을 마무리하지만 나는 아쉬워 죽을 뻔했다. 제발··· 누가··· 대여 시간 좀··· 연장해줘···

*

2022년 5월 21일 일기를 마저 살펴보자.

"송지현을 읽기 전에 나는: 나는 블로그에 정말 많이 쓴다. 나에 관해 많이 쓴다. 솔직히 이게 100% 나라고는 말 못 하지만 (왜냐면 나도 나를 모르니까) 열심히 나에 관해 쓰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전부 내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말은 쉽다. 쉬우니까 자꾸 하면 된다. 이건 내가 아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송지현은 분명 자신에 관한 글을 쓴다. 모든 글이 그의 경험을 경유한 것만 같다. (내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 글을 모두 읽는다고 해서 송지현을 전부 알 수는 없다. 아니, 털끝만큼도 알 수 없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내가 아무리 많이 써도, 당신들은 나에 관해 하나도 알 수 없다.

이건 내가 아니니까!!!!!!!!!!!!!!!!!!!!!!!!!!!!!!"

​*

에필로그

여기까지 읽어주신 감사한 분들에게 고합니다. 송지현을 읽으세요. 여러분, 송지현을 읽으셔야 합니다. 비로소 현대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면요. 순서는 중요합니다. 암. 순서는 중요해요. 순서가 중요하다는 말이 송지현 소설에도 나오는 것 같은데 밑줄을 안 쳐서 인용은 못 하겠고 암튼: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문학과지성사, 2019) →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문학동네, 2021) → 『동해 생활』(민음사, 2020). 제발 읽어주셔요.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 진짜로. 한 번만 믿어 봐.
2022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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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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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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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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