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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평소에 최신 한국소설은 잘 안 읽는다. 이 책은 소개가 흥미로워서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가출하고, 방황하고,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는 세 명의 여중생이 나온다. 명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지만 결국은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강이의 상황을 은유하는 여러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인상깊은 건 화단의 꽃과 투어(鬪魚)에 관한 내용이다. 화단의 꽃이 병들면 ‘병신’이지만, 모두 다 병들어버리면 병신이 아니게 된다. 투어는 죽도록 싸우지 않으면 지느러미가 병들어서 병신이 되고 만다.
강이도 마찬가지다. 집이 못 견디게 싫은 건 아니지만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길 수도 없지만 소영에게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차피 병신이라면 ‘최악의 병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멀리 나가다보면 원하지 않던 곳에 다다르더라도 더 멀리 나아가야한 하는,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 곳에서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더 비참한 느낌이라는 걸,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이에게 수족관은 다신 없을 것이다. 강이의 끝은 수족관이 아니었다. 죽음 직전에나 잠시 퍼드덕거리는 광어들과는 달랐다. 강이는 나아갔다. 이 폐수는 강물로 이어질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죽음이든, 아니든.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최선의 삶, 삶은 방황을 통해서 딱히 나아지지도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모든 사람은 각자 최선을 다해 자기 삶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삶이고 생명이니까. 병신이 되었다가, 최악의 병신이 되었다가, 모두가 병신이라 아무도 병신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가 하면서. 어두운 이야기지만 작가는 마냥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담담이 적어 내려간다. 그러나 죽어가던 투어 ‘강이’가 펄떡거리며 강으로 흘러가는 장면에서는 나름대로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이 소설이 말하려고 했던 생명력, 그 속의 작은 아름다움 같은 것이다.
그동안 읽은 소설 중에서는 김사과의 <미나>와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가 생각났다. 현대 사회에서 억눌린 생명력을 폭력으로 분출하는 십대들의 이야기지만 대전, 서울, 도쿄라는 배경에 따라 이야기의 스타일은 확연히 갈린다는 점이 재미있다. 생각난 김에 그 두 권도 조만간 다시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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