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우
우리가 혹하는 이유
존 페트로첼리 (지은이), 안기순 (옮긴이) 지음
오월구일 펴냄
읽었어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신념을 지니며, 그 신념은 곧 그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 때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된다고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직관적인 사고방식을 자주 선호하는데, 좀 더 공식적인 추론 체계와 비교할 때 더 신속하고 수월하게 맥락에 맞춰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상, 직관과 느낌은 정확하지 않고 따라서 이성적이지 않다. 실제로 자신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유를 제시할 때,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기 가장 쉬운 이유에 의존할 때가 많다. 문제는 말로 표현하기 가장 쉬운 이유가 자신의 판단과 느낌을 설명하는 진짜 이유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이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개소리라는 점이다.
아마도 개소리 때문에 실질적으로 치러라 하는 가장 큰 대가는 주로 달갑지 않은 영향을 제거할 때 드는 시간과 노력이 애당초 그 영향을 생성할 때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소리는 몇 초면 생성할 수 있지만, 잘못이라고 입증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대중 방송을 개소리로 채우면 신념과 태도를 효과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진행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알아내려면, 자신이 신뢰하는 소식통의 정보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믿을 때보다 훨씬 시간과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나는 개소리를 무해하다면서 물리치기 전에, 개소리 때문에 우리가 어떤 심리적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개소리는 우리의 기억, 태도와 신념, 결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오류적 진실 효과’는 거짓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 진실일 리 없는 허황된 말을 반복하고, 이를 주류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퍼뜨리면 유권자들은 거짓을 사실로 믿기 시작한다.
불행한 현실이지만 우리의 기억, 믿음, 태도 결정에서 많은 부분은 증거에 근거한 추론보다는 개소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개소리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지적 사회적 과제의 하나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개소리에 쉽게 흔들린다. 이 점을 인정하는 태도가 대단히 중요하다. 개소리가 그토록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이유는 개소리를 쉽게 탐지할 수 없다고 명백히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는데도 자신은 개소리를 탐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소리는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심령술사나 점괘 신봉자들에 국한되지 않으며, 우리가 생각지도 못할 출처를 포함해 어디든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사항을 알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또 어떤 자동차를 살지, 어떤 경력을 추구할지, 어떤 상대와 결혼할지, 아이들을 어떤 학교에 보낼지,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선택할 때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때는 안전감을 느낄 때이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이기를 간절히 바라더라도, 실제로 모르는데 아는 척을 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합리적으로 정보에 입각한 접근 방식을 따랐는데 달갑지 않는 진실이 도출된다면 비이성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말에 말려들기 쉽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을 진실 그 자체보다 선호할 때, 우리는 개소리가 번성하는 풍토를 만든다.
때로는 판단과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영역이 비교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황의 맥락이 개소리 취약성에 영향을 미친다. 달리 말하자면, 상황이 만든 기준에 따라 인식이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개소리 취약성에서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는 확실성의 정도이다. 설득과 영향은 불확실성이라는 조건에서 가장 잘 가동한다.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대답과 명료성을 찾으며, 솔직히 대개는 개소리를 탐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진실이라는 증거가 없는데도 특정 주장을 믿는다. 이러한 태도가 논거를 증거인 양 생각하는 경향을 부채질해서 문제를 악화시킨다. 논거와 증거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소리에 취약해지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논거를 증거로 간주하는 경향은 간단한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왜?”라는 질문을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대체하면 된다. 사람들은 어째서 무언가를 진실이라 생각하는지, 어째서 무언가가가 통한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의견과 단순한 논거를 제공하는 상대적으로 더 쉬운 목표를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언가가 통한다거나 진실인지 어떻게 아는지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증거를 제공하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목표를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논거를 생성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증거를 제시하기보다는 논거를 생성하는 방향으로 기울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우리는 “이것이 사실인지 어떻게 아나요?”라고 묻는 것은 개소리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밟아야 할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페니 쿡이 주장하는 관점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짜 뉴스와 개소리를 믿는 것은 거짓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동기부여 추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소셜미디어에서 보고 들은 내용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게으른” 사고방식 때문이다.
사고 과정에 따르는 수많은 함정은 인지적 착각처럼 작용한다. 또 동기부여가 부족해서든, 비판적 사고에 필요한 정신적 자원이 부족해서든, 이런 함정들은 개소리 취약성을 증가시킨다.
사람들이 개소리에 속아 넘어가는 또다른 이유는 때로 진실을 무시하도록 동기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사회적 동기부여는 소속의 욕구,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일관성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욕구, 자기 행동이 정당하다고 느끼려는 욕구 등이다. 이러한 무언의 욕구들 때문에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누가 먼저 버튼을 누를지 어색하게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개소리에 속아 넘어갈 수 있다.
최선의 증거를 근거로 신념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적 개소리 취약성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증거 뿐이고, 그러한 증거를 확인하면 더 이상 개소리를 믿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실수를 자주 한다. 인지적 이유나 맥락적 이유로 개소리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증거를 확인하면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지만, 동기부여적 이유로 개소리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개소리를 믿고 싶어 하므로, 아무리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동기부여적 개소리 취약성을 탐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상대방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한 점의 의심도 없이 A는 정확하지 않고 B가 정확하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B가 진실이라고 믿겠습니까?” 이때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상대방은 동기부여에 근거해 개소리를 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당신이 아무리 설득해도 헛수고일 뿐이다. 사실을 제시해도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오히려 더 황당한 개소리에 불필요하게 노출될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모면하려고 할 때 개소리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자신의 설명이 사전 지식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평가받으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즉 개소리를 납득시키기 쉬울 때) 참가자가 개소리할 확률은 41퍼센트로 훨씬 더 컸다. 하지만 사전 지식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평가받으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즉 개소리를 납득시키기 어려울 때) 참가자가 개소리할 확률은 29퍼센트로 줄었다.
프랑크푸르트 이론에서 밝히듯,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말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더욱 기꺼이 개소리를 한다. 내 경우에는 내 차에 대해 자동차 정비사에게 개소리를 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차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는 고작 차에 휘발유를 넣어야 한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볼보 스테이션 웨건의 브레이크가 어떻게 작동하느냐고 묻는 딸에게는 개소리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개소리를 통과시키기 쉬우리라 신호를 보내는 것은 어떤 신호이든 개소리꾼에게 진실을 마음껏 농락하라고 허용하는 셈이다.
시험 결과를 보면 참가자들이 사회학 교수의 의견을 모르거나, 교수와 의견이 다르다고 믿는 경우에는 무책임 조건 집단보다 개소리를 줄였다. 하지만 교수의 의견이 자신과 같다고 믿는 경우에는 무책임 조건 집단의 참가자들만큼이나 개소리를 했다. 달리 말해서 자신이 표현하는 생각과 의견의 타당성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예상하면 개소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리라 스스로 예상할 때조차도 다른 사람들이 동의해주리라 기대하는 경우에 책임감은 사람들이 얼마나 개소리를 하는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때 자주 나오는 것이 개소리다.
개소리하는 성향이 강한 개소리꾼들은 진실과 증거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제시된 증거에 우호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냉정하고 확실한 증거에 대해 계속 비이성적으로 반응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개소리꾼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개소리꾼들은 누구라도 자신의 주장은 반증하는 증거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비클렌은 촉진된 의사소통의 효과를 부정하는 모든 증거를 사람들이 무시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노련한 개소리꾼들은 부정적 증거를 제거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는다.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믿으려는 사람들의 동기를 이용한다. 만약 사람들에게 개소리꾼의 주장을 믿겠다는 동기가 없으면 개소리꾼은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켜 부정적 증거를 보지 못하게 하고, 일화적인 증거를 제시해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의구심을 제거한다.
일화적인 증거에 의존하는 방법은 편리하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주장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일화적 증거만 가지고 추론하기 때문에, 개소리꾼들이 내리는 판단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개소리꾼은 자기 신념은 뒷받침하는 증거는 무엇이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자신이 “명중”시킨 것에 가치를 두고) 반면에 자기 신념에 거스르는 증거는 무엇이든 무시하는(자신이 “놓친”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경향을 보인다. 모든 사람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몇 가지 관찰에 근거해 대담한 가정을 내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아마도 통계학 교수들이 가장 실망할 사실인데, 개소리꾼들은 수탉 울음소리와 일출처럼 대상 사이에 관찰된 관계(상호관계)를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발생시키는 개념(인과관계)과 결합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결국 개소리, 엉터리 주장, 사이비 과학, 괴짜 과학, 철저한 사기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지금처럼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심지어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우리는 비판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한 설로 같은 개소리꾼에게서 잘못된 정보를 계속 소비할 것이다.
근거를 명확히 밝혀달라고 요청했을 때 대답으로 훨씬 심한 개소리를 듣더라도 놀라지 마라. 사람들이 품는 신념의 토대는 대개 인식론적 근거나 경험적 근거보다는 도덕이나 동기부여 같은 이유이다. 개소리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해서 더없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추론에서 이해 가능한 오류를 밝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난하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다음처럼 온화한 표현을 써서 질문해보자. “나는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당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5
Lucy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