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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김병운, 위수정, 이주혜 (지은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작년 겨울 『에픽 #05』에서 「윤광호」를 읽고 너무 좋았는데 『소설 보다 : 봄 2022』에서 보게 되다니! 가보자고,의 마음으로 다시 읽었고 더욱더 좋았다. 이 소설은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사람들"(9쪽)에 관한 이야기. 즉, '윤광호' 씨 이야기.

'나'는 투병하다 끝내 숨을 거둔 활동가 광호 씨의 일생을 주변인의 목소리를 수집하여 복원한다. 그러던 중 "10년 전에는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어째서 지금은 가능해진 거지?"(35쪽) 되물을 때.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같은 쪽)라던 광호 씨의 말이 그제야 떠오르고. 그의 죽음이 개인적 차원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나'. "그(퀴어 관련 서적) 앞에서 유독 오래 머무는 손님이 보이면 괜히 말 걸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40쪽) 사람이 생겨났으니까. 광호 씨의 이야기는 마침내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는 그들과 함께 앞으로의 10년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저는 그날 받았던 청심환 포장 캡슐을 가지고 갖고 있어요. 이 못돼먹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막막할 때마다 한 번씩 손에 꼭 쥐어보거든요."(29쪽) 광호 씨가 소미 씨에게 준 '청심환 포장 캡슐'처럼, 우리에게는 이광수와 김병운의 「윤광호」가 있다. 이 소설을 가지고 이런 세상을 그려볼까. "우리가 어떤 정체성이든 거기엔 아무런 차별이 없어서 특별한 용기도 자긍심도 필요 없는 세상. 우리가 누구에게 어떤 종류의 끌림을 느끼든 그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어서 누군가의 인정도 응원도 필요 없는 세상."(36쪽) 10년 후에는 또 어떤 불가능이 가능이 될까. '우리'의 차례다.
2022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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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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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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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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