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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카페 (파리에서 마주친 우연의 기록)의 표지 이미지

몽카페

신유진 (지은이) 지음
시간의흐름 펴냄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온통 장악해버린 책.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엔 눈물이 났다. 후반부의 몇 꼭지가 특히 감동적이었고, 이 책을 읽게 해준 모든 우연(우연의 총합은 필연!)에 감사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 너무 좋았던 책의 감상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구나.

그의 말처럼 뒤쪽에 진실이 있다면, 나는 나의 진실을 감추면서 남의 진실을 엿보길 원하는 뻔뻔한 인간이다. 가장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뒷모습을 읽는다. 그것이 그들의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뒤쪽에는 앞쪽에 없는 이야기가 있다. 구부정한 몸으로 커피를 드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잔을 천천히 드는 사람은 자존감을 회복해 가는 사람. 어떻게 앉아도 슬픈 사람, 헝클어진 머리부터 긴 목까지 슬픔이 묻어 있는 사람. 뒷모습은 참아도 새어 나오는 웃음이나 아무리 매만져도 삐져나오는 잔머리처럼 이야기 몇 가닥을 팔락거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이야기에서 내가 읽고 마는 것은 오늘의 나의 마음 몇 가닥. 저들의 뒷모습은 모두 나의 마음의 이야기다. (「가장자리 사람」, 23-24쪽)

이 책은 파리에 살며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의자에 앉아 흘러가는 시간을 하염없이 감각하면서. 생각을 하고 생각이 들고. 부유하는 그것(들)을 적시에 적확한 언어로 끌어당기는 일. 북적이다 수그러들기를 반복하는 카페의 백색소음과 취해버릴 것만 같은 커피 향기 속에서 종이와 활자의 세계로 편입된 신유진의 글은 정말이지 빛난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꼭지를 오래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작년 11월, 『시와 산책』(시간의흐름, 2020)을 읽은 후 나는 이렇게 썼다. “문학평론가 황예인은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문학동네, 2021)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이 이야기에는 내가 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는 완전한 방식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시와 산책』에는 내가 써나갈 글이 평생토록 추구하게 될 완전한 방식이 담겨 있다.”

이 감상을 오늘 읽은 이 책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 『몽 카페』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마음이 추구하게 될 완전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것이 못내 기쁘다.
2022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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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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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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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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