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 팔로우
잿빛극장의 표지 이미지

잿빛극장

온다 리쿠 (지은이), 김은하 (옮긴이) 지음
망고 펴냄

읽었어요
그렇구나. 이런 인생도 있구나.
하나의 상념이 떠올랐다.
‘파란만장‘ 하지도 않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온 힘을 다해’ 살지도 않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인생이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한정된 시간을 사는 인생이다.
그 일회성만큼은 어떤 인생이든 마찬가지고 예외가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 인생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서서히 실감했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타고난 성격이 드러나는구나. 인격이 형성될 시기에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그리면서 스스로 모난 구석을 깎아낸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성격을 만들어가는 셈이다. 다시 말해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금하듯 본래 성격에 새로운 성격이 입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도금이 벗겨진다. 한동안 도금이 유지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벗겨진 도금을 다시 입힐 기력이 쇠해서 결국 본래 성품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때가 오면 주변에서 맨 처음의 성격이 나오는 법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일상. 참으로 불가사의한 단어가 아닐까.
‘일상’은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도, ‘인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창한 울림에 비해 하찮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의미한다. 예컨대 ‘일상’이 일기의 한 페이지나 하루 한 장씩 떼는 일력과 같다면, ‘인생’은 하나로 이어진 두루마리 그림이나 한 편의 영화와 같기 때문일까.
일상.
이 단어는 겉모습만 보고 깜박 속아 넘어가기 쉽다.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나날. 도도한 표정으로 ‘이게 보통이에요.’라고 툭 한마디 던지고는 저만치 서 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하기 그지없어서 우리를 안심시키고 선뜻 몸을 내맡기도록 유인한다. 그러다 보니 마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거기에 함정이 숨어있다. 똑같이 반복되는 듯 보여도 그 이면에는 야금야금 뭔가가 진행되고 조금씩 쌓여간다.

필요한 무언가가 ‘없다’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듯 보여도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고 안정감을 빼앗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마음이 술렁이지 않았을까?
동시에 일상은 자질구레한 일들로 채워진다는 점에 놀라는 한편 무언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일상'이 흔들리기도 한다는 점에 두려움을 느꼈다.
따라서 일상을 유지하려면, 삶을 살아가려면 무언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빈자리를 메워야 하고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하나하나 채워 넣어야 한다.
아마도 사람은 온갖 자질구레한 일상을 통틀어 현실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절망’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고 짐작했다.
2022년 3월 27일
0

Lucy님의 다른 게시물

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너는 하늘에서 떨어졌어. 수많은 것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어.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게 너라는 게 중요해. 땅에서 솟았어도, 바람에 실려 왔어도, 아무 상관 없어.”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

전미화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0
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이 새가 왜 멸종했는지 아세요?”
“그거야 날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물론 그렇지만요. 천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땅 위에서 살았다고 해요. 알을 낳아도 어딘가에 숨겨 놓지 않고 땅 위에 그냥 낳은 채로 두고요.”
“아! 지금 같으면 리스크 헷지를 하지 못한 거네요. 이렇게 말하면, 혼날 것 같지만.”
무쓰코가 웃는다.
“하지만 그만큼 안전했다는 뜻이죠. 그러다 인간이 찾아왔고 인간이 데리고 온 개와 쥐들이 알을 먹어버리고..... 그러다 결국은 멸종하고 맙니다.”
소로리가 슬픈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지금도 목초지가 사막화되어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그 또한 인간이 과도하게 토지를 개간한 탓이다.
“목초지가 사막화돼버린 것도 도도를 사라지게 한 것도 우리 인간이군요.”
왠지 모를 미안한 기분이 들어 무쓰코는 고개를 떨구었다.
“도도는 아둔하고 날지 못하는 새지만 그 덕에 자기 페이스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삶의 방식을 찾고 싶다고, 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 가게 이름을 카페 도도라고 지었고요.”

밤에만 열리는 카페 도도

시메노 나기 지음
더퀘스트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0
Lucy님의 프로필 이미지

Lucy

@lucyuayt

우나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연속성과 의미를 추구할 테지만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들을 포착해 즐기기도 할 터였다. 세월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아예 흘러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시간도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일도 끝나기 마련이었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즐길 뿐이었다. 우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었다.
리프할 때마다 그게 몇 년이든 중요한 누군가가 그녀의 삶에서 사라지게 될 터였다. 데일이든 매들린이든 켄지든. 매년 씁쓸하면서 달콤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분명 나쁜 날들도 있을 터였다. 그것도 늘. 하지만 그녀는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 좋은 날들을 하나씩 모아 한데 엮을 터였다. 사방에 거울이 달린 방의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환하게 빛나도록.
“다시 안에 들어가서 네 기타 솜씨 좀 보여주지 그래? 보나마나 잘하겠지만.” 데일이 눈을 찡긋거리며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어쩌면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소용없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젊은이들은 젊음을 제대로 쓰는 법을 알고 있을지도.

아웃 오브 오더

마가리타 몬티모어 지음
이덴슬리벨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0

Lucy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