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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열린책들 펴냄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104페이지의 책.
채 2시간안에 읽어버릴 책이지만 한 편의 이야기가 진행되거나 끝날때마다 상상속의 머리위 뭉게구름 영화관 화면 중단은 했지만 상영종료는 못 했다. 심상을 관통하는 생각거리가 던져지기 때문에
#1 깊이에의 강요
전도유망한 여류 화가와 평론가의 이야기. 평론가의 한 마디는 창창한 미래를 위해 살던 한 사람을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다.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비단 작가, 화가 같은 예술인만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사례란 느낌. 한 마디 말은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일이기에 객관화와 그에 더불어 신중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화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 이후 평론가는 “의도가 없었다” 고 하며 이제서야 ‘깊이’가 보인다고 한다.
대체 한 분야의 깊이의 척도는 누구의 잣대란 말인가?
#2 승부
탑골공원과 같은 곳에서의 바둑 대신, ‘체스’ 승부 이야기.
고인물 동네 체스 고수와 이름 모를 한 젊은이의 진검승부(?).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며 승부를 승리로 이끄는 노년의 체스 고수와 내면 심리묘사없이 행동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젊은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지금껏 고수에게 진 체스 패배자들의 묘한 복수의 응원과 부러움이 뒤섞인 모습이 그려졌다. 젊은이는 과감함을 포장한 초짜였다고 느껴졌지만 그 과감함이 주변 패배자 관객들에게 불러 일으키는 희열감은 동네 체스 고수에게 일타를 가하는 쾌감을 주지만 결국 체스 고수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 이후 젊은이는 낯빛의 변화없이 그 자리를 떠난다. 승리자가 되었지만 승리한 쾌감이 느껴지지 못한 노년의 고수는 앞으로 체스를 관두기를 결심한다. 왜? 젊은이의 그 결단성 없이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는 자신의 안정성을 탓하기 위해? 늙어버림의 슬픔? 아니면 젊은이에게서도 자신에게 패배한 관객들처럼의 승부의 인정과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점에서 일까?
#3 장인 뮈사르의 유언
이 내용은 ‘조개’로 시작해서 ‘조개’로 끝난다. 그것도 돌조개. 그냥 단순히 조개 대신에 읽다가 대체할 단어만 찾으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은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늬앙스랄까? 그 ‘흙’이 ‘조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돌조개가 된 사람은 그 조개 파편 더미에 덮히고 또 다른 돌조개(?) 사람들이 층층이 쌓여 올라간다는 이야기인데, 돌조개가 되는 과정은 당연히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를 멈춘 것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러니 돌조개가 되기 싫다면, 돌조개 더미에 깔리기 싫다면 본인의 사유를 잃지말라는 조언이지. 돌조개 대신 대체할 자신의 무지성 단어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일 듯.
#4 문학적 건망증
문학적 건망증 이란다. 문학적 소양 보다는 책의 내용의 건망증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 기억의 부분을 불러일으키려고 책의 내용을 메모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방법이 읽은 뒤 잊어버리는 건망증의 대처법이 아닐까? 나 외에도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건망증을 이겨내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다만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책 말고도 인생에서. 이야기 말미에서 나의 고민이기도 한 작가의 고민은 이렇게 말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넌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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