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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소설집)의 표지 이미지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창비 펴냄

작년에는 그의 세 번째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 2012) 읽었고, 좋았지. (아직도 마음에 남는 단편들이 몇 있다.) 이번에는 그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2003년에서 2005년 발표된 단편들을 묶었으니, 곧 2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네.

책장을 펼치니 이야기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흐른 세월이 무색할 만큼. 「달려라, 아비」,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사랑의 인사」,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에서 '나'와 아버지가 등장한다. 내게 그들은 겹쳐 보인다. '나'는 분명 '나'와 다른 '나'지만 어쩐지 나 같기도 하고, '나'의 아버지 역시 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나'는 지금, 누구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부여된 불행 앞에 서 있기 때문.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을 어떻게 내면화할 것인가.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취해야만 하는가). (형과 ‘나’의 이야기를 그리는 「스카이 콩콩」은 앞서 살펴본 부자 관계와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나'에게 형이 미치는 영향은 아버지의 그것과 같으면 같았지 적지 않을 것이니까.)

「영원한 화자」나 「종이 물고기」처럼 말하는 것과 쓰는 것에 관해 말하고 쓴 작품도 흥미로웠다. 전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되뇌는 사람이고, 후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치지 않고 써 내려가는 사람. 두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이 아닐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듯했으나(작품이 아니라 내가 힘이 빠진 걸 수도 있다) 책의 마지막은 등단작인 「노크하지 않는 집」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으로 읽은 김애란의 단편인데 읽을수록 좋은 것 같고 그래서 자꾸 읽게 된다. 다섯 방의 문을 차례로 열어젖힐 때 동일한 광경들이 역시 차례로 이어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 남는다.

이제 단편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다. 다른 모든 작품을 압도했던 「나는 편의점에 간다」. 이 작품은 분명히 2000년대 초반에 쓰였다. "세븐일레븐"은 아직까지 남아 있지만, "엘지25시"와 "패밀리마트"는 없어진 지 오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낡고 늙었나? 그렇기에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속절없이 흘렀는지, 다만 그것만을 감각하며 읽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 소설은 아직도 너무나 시퍼렇게 살아 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우리의 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직조하는지, 우리는 객체로 또한 주체로 어떻게 공간과 상호작용하는지를 너무도 명료하게 제시하는 작품을 읽으며 내내 소름이 돋았다.

이 책은 창비에서 2019년 리마스터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출간된 지 10년 이상 된 소설 중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품"(출판사 소개)이기 때문에. 정말 그렇네. 나도 이 소설을 오래 좋아하게 될 것 같다.
2022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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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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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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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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