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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 있어요
아오야마 미치코 (지은이), 박우주 (옮긴이) 지음
달로와 펴냄
읽었어요
“……굉장하시군요. 저는 지금껏 줄곧 같은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에비가와 씨처럼 제 삶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죠.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사회의 무용지물이 돼버렸습니다.”
그러자 에비가와 씨는 부드럽게 웃었다.
“사회란 게 뭘까요? 곤노 씨에게는 회사가 사회인가요?”
가슴에 무언가가 날아와 박힌 느낌에 나는 심장 언저리를 손으로 눌렀다. 에비가와 씨는 턱 끝을 슬쩍 창문 쪽으로 돌렸다.
“뭔가에 속해 있다는 건 참 애매합니다. 같은 곳에 있어도, 이렇게 투명한 판을 하나 끼운 것만으로 저 너머의 일은 자신과 상관없게 느껴지죠. 이 칸막이를 치우면 곧바로 당사자가 되는데도요. 내가 보는 것이든 남에게 보이는 것이든 다 똑같은 건데도 말이에요.”
에비가와 씨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곤노 씨, 저는 말이죠. 사람과 사람이 연관되어 있다면 그건 전부 사회라고 생각해요. 접점을 가짐으로써 생기는 무언가가 과거든 미래든요.”
“아아, 사키타니 씨도 회전목마에 올라타 있군요.”
“회전목마요?”
후후후, 하고 미즈에 선생님이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흔히 있는 일이에요. 독신인 사람이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결혼한 사람이 아이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리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독신인 사람을 부러워하죠.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 참 재밌어요. 저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뒤꽁무니만 쫓느라 일등도 꼴찌도 없답니다. 즉 행복에는 우열도, 완성체도 없다는 얘기죠.”
그렇게 즐거운 듯 말하고 미즈에 선생님은 컵에 든 물을 마셨다.
“인생이란, 항상 복잡하게 꼬여 있는 거예요. 어떤 환경에 있든 뜻대로 되지 않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잖아요. 결과적으로는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살았다!’라고 생각할 때도 정말 많으니까요. 계획이나 예정이 꼬여버리는 일을 두고 불운하다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렇게 변해가는 거죠. 나도, 인생도.”
나는 틀림없이 숲속에 막 들어선 참일 것이다. 뭘 할 수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나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아도,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하루하루를 가다듬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손에 닿는 것부터 익혀나갈 것이다. 준비해나갈 것이다. 깊은 숲속에서 밤을 줍는 구리와 구라처럼.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알과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법이니까.
“언젠가, 언젠가 하는 동안은 꿈이 끝나지 않아. 아름다운 꿈인 채로 끝없이 이어지지. 이루어지지 않는대도, 그 또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해. 계획 없이 꿈을 안고 살아간다 한들 나쁠 거 없어.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주니까 말이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언젠가’가 계속해서 꿈을 꾸기 위한 주문이라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하지만 꿈 저편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당연히 알아봐야지.”
고작 160년 전───.
그때까지 유럽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신이 애초부터 지금의 형태로 창조한 것이며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모습을 바꾸는 일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도롱뇽은 불에서 태어났고, 극락조는 실제로 극락에서 온 심부름꾼이라고. 모두가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윈은 발표하길 주저했던 것이다. 말 그대로 환경에 맞지 않는 생각을 지닌 자기 자신이 도태될까 두려워. 하지만 지금에 와서 진화론은 당연시되고 있다. 얼토당토않다고 여겨졌던 것이 상식이 되었다. 다윈도 월리스도 당시의 연구자들도 모두,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연구하고 꾸준히 발표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없어. 절대적으로 안정된 일은 하나도 없어. 모두들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겨우 꾸려나가고 있는 거야.” 부드러운 표정이지만 목소리는 진지했다.
“절대적으로 무사한 일 따위 없는 대신,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만한 일도 아마 없을 거야. 그런 건 아무도 모르는 거지.”
“……초등학교 때, 아빠랑 같이 게걸음 달리기 한 적 있잖아?”
“게걸음 달리기?”
내가 어리둥절해하며 되묻자 치에는 웃었다.
“기억 안 나? 3학년 때 말야. 운동회에서 엄마 아빠랑 같이 하는 경기. 등을 맞대고 게걸음으로 달리는 거. 결과는 꼴찌였지만.”
“그, 그랬었지.”
“그때 아빠가 말했었거든. ‘게걸음을 걸으니 재밌네. 풍경이 옆으로 지나가잖아. 평소보다 세상이 넓어 보여’라고. 옆으로 걸으면 와이드 뷰가 되니까.”
그런 말을 했던가, 멍하니 생각했다. 아마도 치에의 기억이 맞을 것이다. 치에는 살짝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나, 성인이 되고부터 아빠의 그 말이 가끔씩 생각나더라고. 앞만 보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잖아. 그래서 일이 잘 안 풀려 고민될 때면 문득, 관점을 넓혀보자, 어깨 힘을 빼고 게걸음을 걸어보자, 하고 생각해.”
책 선정에 있어서는 이 이용객에겐 이 책이 좋겠다고, 고마치 씨의 오랜 경력과 직감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트에서 비단게를 맞닥뜨리거나 게걸음 달리기 이야기를 하게 되리란 건 고마치 씨가 알 턱이 없다. 뭔가 엄청난 비기秘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고마치 씨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대강 고르는 거예요.”
“허.”
“있어 보이게 말하면, 영감.”
“영감…….”
“그게 그쪽을 어딘가로 이끌었다면 잘된 일이네요. 정말 잘됐어요.”
고마치 씨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저는 무언갈 알고 있지도,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모두들 제가 드린 부록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죠. 책도 그래요. 만든 이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부분에서 그곳에 적힌 몇 마디 말을, 읽은 사람이 자기 자신과 연결 지어 그 사람만의 무언갈 얻어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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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님의 인생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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