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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태우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의 표지 이미지

책을 불태우다

리처드 오벤든 (지은이), 이재황 (옮긴이) 지음
책과함께 펴냄


지식이 대단한 힘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수집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가치 있는 일이고, 그것의 상실은 문명 쇠퇴의 조기 경보일 수 있다는 정신이다. (p.65)⁣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기분이 묘했다. 책을 불태우다니! 상징적인 말이겠지만, 늘 져버린 문화도 존중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내게 참 어려운 말이다. 아무튼 저자는 “역사의 모든 시기에 도서관과 기록관은 공격의 대상이었다. 때로 사서와 기록관리자들은 지식 보존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잃기도 했다. 나는 역사 속의 중요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탐구해 지식 보과서 파괴의 서로 다른 동기들과 그에 저항하기 위해 종사들이 개발한 대응을 제시해보려 한다.”며 몇몇 사례들이 가지는 매혹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이 책을 남긴다. 사실 역사는 “승리해서 기록물을 후세에 남긴 이들”의 관점이 많지 않나. 그래서 '파괴'된 이면은 만나기도 어렵다. 그래서 “책을 좋아한다면 흥미를 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이다혜 작가님의 서평은 이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 책을 시작했다. ⁣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격정적이다. 문서와 도서관이 보존되거나 파괴된 역사속에서 어떤 문화는 보존되고 어떤 문화는 파괴된다. 그리고 그 파괴 안에는 물리적인 굴복도 부족하여 정신이나 사상까지 굴복시키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고 싶은 잔혹함이 담겨진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격정적으로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때때로 아파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문경새재의 칼자국난 나무들을 떠올렸다면, 단 한명이라도 내가 느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

이 두 가지 가치는 그러한 수집품들을 지금 대학도서관들에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기관들 사이에 경쟁을 불러일으키며 상인들이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이유다. 그것들은 학생들에게 연구할 원자료를 제공하고 학문의 생산성을 높이며 교육 기회를 풍성하게 한다. (p.226) ⁣

도서관과 기록물을 파괴하는 동기마다 사례는 각기 다르지만, 특정 문화를 말소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p.246)⁣

도서관, 서점과 신문사 본사 파괴는 “분명히 타밀 문화에 대한 조적적인 공격”이었다. 한 타밀 정치 단체는 스리랑카 경찰에 의하 타밀 도서관 파괴가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p.261) ⁣

우리의 일상생활이 갈수록 디지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지식의 보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 역사의 통제와 사회의 기억 보존은 누가 책임지게 될까? 지식은 민간조직이 통제하면 공격에 덜 취약할까? (p.310)⁣

사실 이 책을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사색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록이 가지는 의미, 깊이를 생각했고 오늘날 “디지털기록물”들이 가지는 손쉬움과 단편성을 생각했다. 마치 그것은 고서와 오늘날 글들이 가지는 깊음의 다름같은것인가. 혹은 디지털 기록물에 대한 나의 편견일까. 가벼운 글을 싫다고 말하면서, 굳이 어려운 단어를 쥐어짜서 쓴 듯한 글은 더 싫다는 나의 치졸함인가. 이런 고민을 내내 하며, 그 와중에도 디지털로 생각을 기록하는 나의 행동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남겨진 문장의 깊이를 실감하면서도 가벼운 말을 내뱉듯 타자를 치는 나는 무얼하는 인간인가. ⁣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디지털기록물들은 태어나고 죽고를 무한히 반복중이다. 도서관이 타서 사라지듯, 수조수만개의 디지털도서관(개인사고라고 해두자)는 불에 타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이 언제까지 “지식과 정보의 홍수”라고 불릴지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것은 그것이 언제 “범람”하는 것인가이다. (사실은 이미 범람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이 누군가를 죽이고 아프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기록물들에 대한 인지가 없는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죽어서 이름이 아닌 “흔적”이나 “댓글”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슬픈가.”하고. 물론 이 질문을 내게도 던져본다. ⁣

아득한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
책의 힘을 아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고, 귀하게 기록해야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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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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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_jin

잘 있어요. 나는 이제부터 살아갈게요.
그렇게 데루코는 슈트케이스를 끌고 39년간 살아온 그 집을, 아니 45년에 이르는 도시로와의 결혼생활을 박차고 나왔다. (P.16)



사실 일본문학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일본문학 특유의 친절함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달까.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유명한 일본문학들을 줄줄이 읽어온 것은 '안 비밀'이다. 하지만, 그동안 읽은 일본 소설 중에 가장 좋았다고 말할 소설을 하나 만났다. 『데루코와 루이』. 이것은 평소 즐겨읽는 추리소설도 아니고, 판타지도 로맨스도 아니다. 심지어 두 명의 노인이 주인공이다. 일흔살의 그녀들, 『데루코와 루이』.


『데루코와 루이』는 스스로를 우선 순위에 두지 못하고 살아온 여느 여자들같다. 데루코는 그럴듯한 '사모님'처럼 보이지만 남편은 퇴직금계좌를 애인의 이니셜로 설정해두는 사람이었고, 데루코는 그럴듯한 부부의 모습을 스스로 연기하고 가두며 살아왔다. 루이는 화려한 싱글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실버타운에 사는 외로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루이가 데루코에게 “도와줘”라고 말하는 순간, 데루코의 마음에 어떤 불씨가 생긴다. 결국 그들은 남의 별장에 몰래 숨어들어 자신들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일흔이라니. 연금수령이 가능한 나이고, 실버타운에 입주할 정도의 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루이는 생각했다. 나이가 일혼이라도 실버타운을 때려치울 수 있고, 45년에 달하는 결혼 생활이라 해도 끝장낼 수 있는 법이다. 그 정도로 우린 살아가려는 열의로 가득하다. 10대나 20대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더 뜨거울지도 모른다. (P.56)



뜬금없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좀 났다. 화려한 솔로로 살아온 루이도 그럴듯한 가정을 누리며 살아온 듯한 데루코가 스스로의 과거를 박차고 나간 장면이라서였을까. 나 역시도 억누르고 살아온 시간때문이었을까. 『데루코와 루이』는 그런 책이었다. 한 장 한 장 공감하고, 울고 웃으며 읽는 책.


책을 읽으며 『데루코와 루이』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는데, 후에 돌아보니 그 과정도 나에게는 치유의 순간이기도 했다. 데루코는 반짝이는 눈이 먼저 떠올랐다. 점잖은 이미지면서도 드라이버 하나로 남의 별장을 훔질수 있는(!) 강단을 가진 사람. 지나가는 이들에게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살 수 있는 사람. 그런 상상력이 결국 누군가의 에너지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가진 소소한 능력들도 반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루이 역시 화려한 이면 사이 섬세한 영혼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각자의 삶, 모두의 인생마다 다른 포인트가 있음을 기억하게 했던 것 같다.


『데루코와 루이』를 읽는 내내 나는 사람의 삶이 언제까지 반짝일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나”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데루코와 루이』는 단순히 소설이 아닌,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필름(Feelm)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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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_jin

"완벽하려고 하지 말자!" 마치 청소년 힐링 토크쇼 같은 물렁물렁한 콘텐츠에서 들을 법한 말이다. 뮬러 터진 경쟁자들을 현재에 안주하게 해서 경쟁 구도에서 제하기에 아주 좋은 말이기도 하다.
완벽함을 지양하는 건, 두가지 면에서 아주 좋다.

1. 완벽한 결과물을 만드는 게 당연히 좋지만, 완벽에 집착하다 보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2.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때로 개성이기 때문이고 개성은 경쟁에서 아주 좋은 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완벽을 지양하는 동시에, 완성을 지향해야 한다. 결과가 나쁘든 말든 끝을 지어서 그것을 하나의 지워지지 않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p.133)



『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 독백』이라는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내 첫 느낌은 “무슨 책이 이렇게 빨개”였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도 이렇게 빨갛고, 작은 책이라니. 뭔가 낯설었다. 무척이나 긴 제목에 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했고. 하지만 『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 독백』을 몇 장 넘기며 나는 깨달았다. 이 책은 책의 정체성이 아닌, 임승원(일명 원)의 정체성을 찾는 책이구나 하고. 어떤 면에서는 일기장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관찰일지같기도 한 이 책은 작가가 사물이나 상황을 치밀하게 기록한 흔적들이다.

책의 첫장에서부터 자신은 INFP이고 ADHD자기진단을 만점받은 사람이라고, 그러니 이 책을 담숨에 읽으려고 하지는 말라 적어놓은 『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 독백』이었기에, 나도 식탁에 두고 오며가며 읽었다. 다른 책을 읽다가 몇 장- 필사를 하다가 몇 장- 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며 몇 장. 그렇게 읽다보니 어느새 다 읽었더라. 어떤 페이지는 그저 가볍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넘겼고 어떤 페이지는 '이렇게도 느낄 수 있구나'하며 신기했다. 어떤 페이지는 '맞아, 나도 이런 적 있어'하며 공감했고, 어떤 페이지는 '뭐야, 이거 내 마음이야?'하며 흠칫 놀라기도 했다. 멋지단 생각을 한 것은 성인이 된 후 매년 스스로의 생일에 와인을 샀단 것. 물론 어떤 이는 이 부분에서 허세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치즈를 사지 못했던 그 시절의 그에게 치즈를 대신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돌아보면 긴 세월, 직장생활을 유지했던 원동력은 진급이나 성과, 인정이 아닌 매 월급날마다 스스로에게 선물한 사소한 것들이었다.

아마 이 책을 만나는 독자들은 모두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 물론 놀라움과 의아함, 공감을 느낄 페이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분명 어느 페이지에서는 공감을, 어느 페이지에서는 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공감도 하고, 반대의견을 가져보기도 하며 스스로를 조금 더 아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음, 나도 이렇게 생각해.”, “아니야, 이건 나랑 다른 걸”하면서 말이다.

아. 책의 가이드에 지저분하게 줄도 긋고, 생각나는 것을 끼적이기도 하라고 적혀있지만, 나의 독서스타일과 너무 달라 작가의 말을 잘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충분히 공감하고, 나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음은 알아주시길!

원의 독백

임승원 지음
필름(Feelm)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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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_jin

어떤 말에는 모든 걸 바꾸는 힘이 있다.
이를테면 흔히들 '사랑해', '네가 싫어', '아이가 생겼어', '나 죽을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 나라는 지금 전쟁 중이야'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크나큰 혼란과 경이로움을 단번에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말은 이것이다. “부탁인데, 나 좀 도와줄 수 있어?"(p.84)



여기 어딜 가든 동물들이 모여드는 아이가 있다. 아빠와 둘이 살던 이 아이는 어딜 가든 동물들이 몰려들어 “이상한 아이”취급을 받는다. 하긴, 축구나 수영경기 중에 동물들이 난입해 경기가 중단되고, 어깨에 새들이 날아들면 평범한 삶을 살기는 어려울 터. 그러다 이 아이는 할아버지의 집에 가서 살게 되고, 도저히 현실세계의 동물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도 아이를 찾아온다.

아! 하늘을 나는 아이도 있다. 떠돌이 예언자가 갓 태어난 아이에게 비행코트를 주고는 사라져버렸다. 마을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 비웃었지만, 팔을 네번이나 걷어올린 코트를 입고 스스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운 이 아아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혼자였고, 살인자에게 쫓기기까지 한다.


“해리포터”는 진즉부터 소문날만큼 좋아했고, “반지의 제왕”이나 “신비한 동물사전”, “피마새” 등의 판타지소설도 빠지지 않고 읽은 편이기에(둘다 좋지만 굳이 따지자면 로맨스보다 판타지파다) 『임파서블 크리처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호기심이;왕성히 일었다. 얼마나 재미있기에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뒤를 잇는단 말인가 싶어졌기 때문! 사실 초반에 두개의 세계관이 따로 등장할 때에는 어느 쪽이 더 신비한 쪽인지 판단하느라 이야기에 풍덩 빠져들지 못했다. 그러다 그리핀을 고향으로 보내주고자 비밀의 언덕을 찾았다가 드디어! 두 아이가 만나며 하나의 세계관으로 합쳐질 때,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점쟁이와 스핑크스에게서부터 '불멸자'가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물약을 먹은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분명 이 아이들 중 불멸자가 있을텐데 둘 중 누구일 것이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기억을 되돌리는 약을 먹어야 할 텐데, 너무 가혹하지 않나 등의 온갖 상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멜과 크리스토퍼가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풍경묘사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에라토를 만나 물약을 마시는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며 이야기에 몰두했다. (만약 이 책이 영화화된다면, 바로 이 장면이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이야기에서는 선과 악이 존재하고, 언제나 그렇듯 나쁜놈이 존재한다. 『임파서블 크리처스』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악마의 등장이 다소 극적이지 않은 느낌이었다는 점이었지만, 이야기의 유기성을 생각하자면 가장 완벽한 배신(?)이자 극적인 등장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임파서블 크리처스』는 '신비한 동물사전'처럼, 다양한 동물들과 그에 연결된 상상력을 만날 수 있었고, '해리포터'에서처럼 극적인 서사도 만날 수 있었다. '반지의 제왕'같은 모험도 있었고. 그래서 『임파서블 크리처스』을 영화관에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 판타지 영화의 대가들이 멜처럼, 나에게 말해주면 좋겠다.
“그래, 알았어. 그래, 좋다고”

임파서블 크리처스

캐서린 런델 지음
arte(아르테)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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